진퇴양난이다. 시즌 개막이 두달도 남지 않았는데 프로농구를 둘러싼 분위기는 무겁기만 하다.
경찰이 21일 전창진 KGC감독에 대해 승부조작, 스포츠 불법베팅 혐의로 영장청구를 한다고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문경은 SK감독에 대한 참고인 소환, 나아가 피의자 신분 소환까지 거론했다. 문 감독은 말도 안된다며 펄쩍 뛰었다. 승부조작 혐의가 있는 경기에 앞서 전화통화한 것이 의혹의 전부인데 어제 하루 문 감독은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프로스포츠 전체를 통틀어 농구 감독들 만큼 개인적으로 끈끈한 정을 과시하는 조직이 없다. 경기전날 전화 뿐만 아니라 경기전후로 만나 식사도 하고 농담도 주고받는다. 이런 개인적인 만남에는 빛과 그늘이 있지만 경찰이 이런 농구판의 속성을 속속들이 알았을 리는 만무하다.
전창진 감독과 문경은 감독의 혐의는 수사과정, 재판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사실확인이 되기 전까지 필요이상의 흥분은 금물이다. 때로는 소문이 실재를 덮는다. 가장 큰 문제는 팬들의 실망과 프로농구의 추락하는 인기, 구겨진 이미지다.
KBL 이사회는 시즌 개막일을 9월 12일로 한달 가까이 당겼다. 매년 10월에 프로농구는 개막했다.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9월이면 찬바람은 커녕 늦더위를 걱정해야할 때다. 표면적인 이유는 촘촘한 경기 스케줄을 느슨하게 만들어 경기력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지만 진짜 이유는 야구 때문이다. 10월 개막을 하면 야구 포스트시즌과 부딪힌다. 온국민과 미디어의 관심이 야구에 쏠려 있을 때다. 또 챔피언 결정전이 열리는 4월이 되면 야구 개막과 맞물린다. TV중계를 잡기도 쉽지 않다.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 2차전을 오후 5시로 당긴 것도 TV중계를 잡기 위해서였다. 이 모든 것이 농구 인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KBL 김영기 총재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KT 전창진 감독, 전 현직 선수의 승부조작 및 불법도박 가담 혐의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또 "재발 방지를 위해 지속적인 관리 감독을 강화해 나가겠다" 고 밝혔다. 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2015.06.29/
아직도 농구대잔치 시절 '오빠 부대'를 몰고 다녔던 이상민 삼성감독이 최고 인기인이고, 연고지를 쉽게 쉽게 옮겨다니는 팀들은 해당지역 팬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지 못한다. 연고지가 있어도 선수들이 그곳에 사는 것도 아니고, 훈련을 그곳에서 하는 것도 아니다. 농구팀이 있는 대학들이 수도권이 밀집돼 있어 연습경기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곤 해도 이런 식이면 팬들과 겉돌게 된다.
올시즌 경기력 향상을 위한답시고 프로농구는 용병제도를 손보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팬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이 와중에 승부조작 논란까지 불거졌다. 전창진 감독은 KBL이 배출한 명장 중 한명이다. 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또 다수의 선수들이 불법 스포츠도박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다.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조만간 경찰의 대대적인 공식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몇몇 선수들은 주위에서 너도나도 하니 별다른 죄책감없이 불법도박에 손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 시즌을 치러도 되나 싶다. 경기장을 찾을 팬들의 실망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A구단 단장은 "시즌 축소나 중단은 안된다.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겠지만 시즌에 손을 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시즌 축소는 그 후유증이 너무 크고, 시즌 중단은 재개 시점을 잡는 것도 불투명할 뿐더러 농구를 자멸로 이끈다는 의견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시즌을 치르자니 낯뜨겁다. 2013년 강동희 전 동부감독이 승부조작과 연루됐을 때 영구제명을 하며 특단의 조치를 언급했던 KBL이지만 사실 사후약방문 말고 뾰족한 수가 없다. 일벌백계를 해도 뿌리뽑히지 않고, 교육을 강화해도 별소용이 없다. 늘 법이 있어도 불법은 자행됐고, 배운 이들이 더 큰 도둑질을 하곤 했다.
이번 일은 전개 양상에 따라 외부 개혁으로 이어질 개연성도 크다. 문체부는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때 승부조작 재발시 해당구단의 리그 퇴출, K리그 중단 검토 등을 언급한 바 있다. 또 스포츠토토 대상경기에서 K리그를 제외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승부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프로농구 심판진의 독립까지 요구했던 문체부다. KBL은 이번에 심판부를 따로 독립시켜 운영키로 했다. 문체부는 승부조작에 대해선 무관용 원칙으로 일관했다. 농구관계자들은 22일 미국에서 올시즌 뛸 외국인선수들을 뽑고 기념사진을 찍었지만 지금 그들의 마음은 황무지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