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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류동혁 기자] 역대급 반란이다. WKBL 역사에 남을 0%의 '업셋' 기록이 세워지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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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전부터 심상치 않았다. 김정은이 빠졌지만, 정규리그 2연패를 달성했던 우리은행이 맞대결 상대. 우리은행은 우리은행이다.
1차전, 삼성생명은 승부처를 넘기지 못했다. 역전패를 당했다. 하지만, 2, 3차전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2승1패로 챔프전에 진출했다. 한마디로 힘에서 압도했다.
KB는 박지수를 중심으로 강아정 김민정 심성영 등 객관적 전력에서 최강이다. 올 시즌 고전하긴 했지만, 플레이오프 4강에서 돌풍의 주역 신한은행을 2전 전승으로 일축했다. 역시 PO에서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4강전에서 단 2경기만을 치렀기 때문에 체력적 우위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챔프 1차전 삼성생명은 KB마저 힘에서 압도했다. 속공(8대2), 리바운드(33대31), 어시스트(17대15), 스틸(9대6), 턴오버(11대15) 등 승리에 필요한 주요 지표에서 모두 삼성생명의 우위. 야투율도 51.6%대46.6%로 우위. 골밑의 절대적인 박지수의 존재감을 고려하면, 야투율까지 앞섰다는 것은 삼성생명이 경기를 지배했다는 의미.
2차전도 세부 지표에서는 삼성생명이 대부분 앞섰다. 특히 속공(8대1), 턴오버(12대22)에서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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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리그에서 삼성생명은 지지부진했다. 배혜윤과 김한별이 있었지만, 에이스로서 책임감이 부족했다. 김한별은 흥분했고, 배혜윤은 고비마다 어이없는 실책을 범하거나 5반칙 퇴장으로 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객관적 전력은 좋았지만, 우리은행, KB와 같은 강호를 만나면 승부처를 매번 넘지 못했다. 게다가 두 선수가 골밑에서 정적인 농구를 하면서, 삼성생명의 또 다른 강점인 외곽의 신예들의 위력을 극대화하지 못했다. 트랜지션도 좋지 않았다. 때문에 삼성생명의 3점슛 성공률은 리그 최하위권이었다. 또 다른 코어인 박하나마저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 아웃이 되자, 삼성생명의 한계는 더욱 명확해지는 듯 했다.
임근배 감독은 팀 시스템을 4라운드 이후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김한별이 무릎 부상으로 빠지자, 많은 선수를 기용했다. 팀 중심으로 윤예빈으로 이동시키고, 김단비 신이슬 김보미 등에게 좀 더 활발한 움직임과 미스매치 활용을 시도했다. 결국, 김한별과 배혜윤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에서 벗어났다. 윤예빈은 실질적 에이스로 성장했다. 트랜지션이 빨라지면서 속공이 많아졌고, 골밑 돌파 이후 만들어지는 3점 오픈 찬스에서 3점슛 성공률이 극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은퇴를 앞두고 있는 김보미의 '좀비'같은 활동력은 선수단을 하나로 모은 강력한 구심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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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에서 임근배 감독은 '플레이오프 화법'을 거부했다. 보통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넓은 여자농구에서 PO에서는 6~7명 정도로 총력전을 펼친다.
하지만, 우리은행과의 1차전에서 김한별과 배혜윤을 로테이션. 신인 조수아까지 쓰면서 10명 정도를 폭넓게 로테이션시켰다. 체력전을 유도하면서, 우리은행 선수들의 체력을 고갈시켰고, 강력한 활동력으로 수비 약점을 보완했다.
4강 통과로 기세가 오른 삼성생명은 거칠 것이 없었다. 챔프전에서는 박지수를 대비, 김한별과 배혜윤에 좀 더 집중하는 로테이션을 돌린다. 하지만, 활발한 트랜지션과 디테일한 패싱 시스템을 만든 삼성생명. 두 선수는 우직한 포스트 플레이보다는 오프 더 볼 무브를 좀 더 날카롭게 가져가면서 받아먹는 득점을 생산했다. 박지수를 외곽으로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 뒤, 과감한 돌파를 하거나, 2~3차례 패스를 해서 3점슛 찬스를 만들었다. 여의치 않으면 두 선수가 하이-로 게임으로 미스매치를 활용했다.
상대적으로 경기력이 좋지 않은 정규리그 1, 2팀을 만난 이득도 있었다. 우리은행은 김정은이 빠지면서 객관적 전력에서 삼성생명을 압도하지 못했다. 결국 체력전에서 패했다.
또, KB의 경우 시즌 막판부터 이어진 부진이 PO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4강 신한은행전에서 2연승을 거뒀지만, 경기력 자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실책이 많았고, 활동력이 떨어지면서 공수 전환이 상대적으로 느렸다.
결국, 삼성생명은 기적같은 PO 4연승을 달리면서 우승반지에 1승만을 남겨놨다. 더욱 무서운 점은 단순한 반란이 아닌, 시스템 변화로 인한 힘의 차이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정규리그 4위가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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