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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한만성 선배, 보고 싶습니다."
한국가스공사 구단주인 채희봉 사장(57)이 '대구의 신생 구단으로서 널리 알려진 유명 선수보다 숨은 스타를 찾아 기억하고, 팬들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추모 행사였다. 고인은 용산고-연세대를 나와 기아자동차(기아 엔터프라이즈 전신)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0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용산고 시절 동기인 허 재 이민형 이삼성 등과 함께 고교 무대를 휩쓸었고, 기아자동차에서도 허 재 전 대표팀 감독과 함께 '명슈터'였다. 기아자동차 시절 '허 재가 40점을 넣으면 한만성이 4점을 넣고, 다음날 한만성이 40점을 넣으면 허 재가 4점을 넣는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고.
유 감독은 이날 추모식 인사말에서 목이 멘 채 "너무 보고 싶은 형이다. 대학 1학년에 내가 방황했을 때 저를 지켜주셨다"고 말했다. 이후 유 감독은 왜 이런 추모 인사를 했는지 애잔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유 감독은 용산고 3학년 때 동기 장 일(전 중앙대 감독) 조성태(전 용산고 코치) 등과 함께 고교대회를 모조리 석권하며 '용산고 천하'를 부활시켰다. 이를 발판으로 연세대에 진학했지만 고교 시절의 영광은 통하지 않았다. 유 감독은 "식스맨 아니, 세븐맨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승부욕, 자존심이 강했던 유 감독은 농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한동안 농구에 대한 열정을 잃었고, 겉도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방황만 하고 있을 때, 아무도 내밀어 주지 않았던 '따뜻한 손'을 뻗어준 이가 고인이었다. 유 감독은 "만성이 형이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꼬리곰탕을 사주더라. 곰탕 국물만큼이나 뜨겁게 나를 보듬어 주던 위로와 충고를 잊을 수가 없다"면서 또 눈시울을 붉혔다.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유 감독은 고인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있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