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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훈 감독의 애잔한 추억…고(故) 한만성을 그토록 못잊는 이유

최종수정 2022-03-18 06:00

한국가스공사는 16일 KCC와의 경기에 앞서 고 한만성의 유가족을 초청, 추모행사를 가졌다. 유가족과 유도훈 감독(맨왼쪽), 채희봉 사장(맨오른쪽), 전창진 감독(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제공=KBL

[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한만성 선배, 보고 싶습니다."

16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대구 한국가스공사-전주 KCC의 경기 전, 뜻깊은 행사가 마련됐다.

1980∼1990년대 농구대잔치, 프로농구 초창기의 농구 인기를 이끌었던 잊혀진 스타 고(故) 한만성을 기억하는 자리였다.

한국가스공사 구단주인 채희봉 사장(57)이 '대구의 신생 구단으로서 널리 알려진 유명 선수보다 숨은 스타를 찾아 기억하고, 팬들과 공유하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추모 행사였다. 고인은 용산고-연세대를 나와 기아자동차(기아 엔터프라이즈 전신)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00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용산고 시절 동기인 허 재 이민형 이삼성 등과 함께 고교 무대를 휩쓸었고, 기아자동차에서도 허 재 전 대표팀 감독과 함께 '명슈터'였다. 기아자동차 시절 '허 재가 40점을 넣으면 한만성이 4점을 넣고, 다음날 한만성이 40점을 넣으면 허 재가 4점을 넣는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고.

이날 행사는 때마침 상대팀이 KCC여서 의미를 더했다. 유도훈 한국가스공사 감독(55)은 고인의 용산중·고-연세대 2년 후배이고, 전창진 KCC 감독(59)은 용산중·고 2년 선배다. 전 감독은 원정팀인데도 추모행사에 참여해 초청된 유가족에게 위로 꽃다발을 전달하기도 했다. 고인은 '올드팬'들이나 기억할 만한 인물이었지만, 요즘 농구팬들에게 이런 '전설적인 선수'도 있었음을 알려주는데 부족함이 없는 행사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한국가스공사는 무서운 슛감으로 3점슛을 17개나 터뜨리며 116대88로 크게 승리했다. 이른바 '그 분이 오셨다'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였다. 유 감독은 "추모행사로 인해 한만성 선배가 오셨던 모양"이라고도 했다.

유 감독은 이날 추모식 인사말에서 목이 멘 채 "너무 보고 싶은 형이다. 대학 1학년에 내가 방황했을 때 저를 지켜주셨다"고 말했다. 이후 유 감독은 왜 이런 추모 인사를 했는지 애잔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유 감독은 용산고 3학년 때 동기 장 일(전 중앙대 감독) 조성태(전 용산고 코치) 등과 함께 고교대회를 모조리 석권하며 '용산고 천하'를 부활시켰다. 이를 발판으로 연세대에 진학했지만 고교 시절의 영광은 통하지 않았다. 유 감독은 "식스맨 아니, 세븐맨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승부욕, 자존심이 강했던 유 감독은 농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한동안 농구에 대한 열정을 잃었고, 겉도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방황만 하고 있을 때, 아무도 내밀어 주지 않았던 '따뜻한 손'을 뻗어준 이가 고인이었다. 유 감독은 "만성이 형이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꼬리곰탕을 사주더라. 곰탕 국물만큼이나 뜨겁게 나를 보듬어 주던 위로와 충고를 잊을 수가 없다"면서 또 눈시울을 붉혔다.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나도 없었을 것"이라는 유 감독은 고인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있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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