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헐렁한 티셔츠와 시원스러운 맨발,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슬며시 흘러나오는 여유. 오랜만에 만난 배우 류승범은 세상을 표표히 떠도는 방랑자 같은 모습이다. 채식의 영향으로 살도 많이 빠졌다. 반항, 똘끼, 양아치, 힙스터 등 과거의 그의 이름 앞에 붙던 수식어들은 지금의 그와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다. 삶의 군더더기를 모두 덜어낸 듯, 그는 무척이나 가벼워 보인다.
지난해 여름 영화 '나의 절친 악당들' 촬영차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도 여행을 했다. "황당하리 만큼" 끝 없이 펼쳐진 사막의 지평선을 거닐었다. "태어나 처음 느끼는 생경함, 살면서 처음 갖게 된 생각들, 사막에서 보낸 2주간의 시간이 이번 작품에 큰 도움이 됐어요."
류승범은 촬영을 하며 자신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그동안 연기했던 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했기 때문이다. "어떤 배우에게든 '연기하지 마라'는 말처럼 차가운 칼날은 없을 거예요. 이 영화는 그 칼날을 저 자신에게 스스로 들이밀었던 작품이에요. 연기로 발산하는 것보다 그걸 참아내는 데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그걸 해낸 거 같아서 저 자신이 대견하기도 합니다."
'하녀', '돈의 맛' 등 여러 영화를 통해 자본과 권력을 통렬하게 조롱했던 임상수 감독과의 작업이란 점도 류승범이 이 영화를 택한 이유다. "상류사회를 바라보는 감독님의 시선이 재밌었어요. 감독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영화를 통해 돈을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었다고. 감독님은 세상을 순환시키려는 분 같아요." 완성된 영화를 본 뒤 류승범은 임상수 감독에게 "뜨거운 동지애를 느낀다"는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는 "99명이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서 나머지 1명의 목소리가 무시받아도 되는 건 아니지 않냐"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임상수 감독님은 존경받아 마땅한 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류승범의 연기 인생이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다만 그 변화는 천천히, 억지스럽지 않게, 느긋하게 진행될 것 같다. 3년간 달라진 그의 삶처럼 말이다. "제가 죽어도 영화는 남잖아요. 그 사실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하나의 의미를 찾게 됐어요.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세상에 던져보는 영화, 그래서 오래 남길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어요. '나의 절친 악당들'도 내 청춘을 기록해놓고 싶다는 의미가 컸죠. 그동안 빠르게 생각하고 빠르게 결정했다면, 이젠 오래 깊이 고민하면서 작업을 하고 싶네요."
인터뷰를 마치며 류승범에게 언제 파리로 돌아가느냐고 물었다. 씩 웃으며 그가 답했다. "조만간, 곧." 언제 다시 돌아오느냐고 물었다. "지금 저의 상태론 제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떻게 알겠어요. 아이 네버 노(I never know)."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