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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TV는 사랑을 싣고' 이봉주가 30여년 만에 마라톤 스승과 재회했다.
김원희는 이에 "이봉주 선수는 왠지 금방 털고 일어날 것 같다"며 응원했고, 이봉주는 "정신력이 아직 살아 있으니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하며 '불굴의 마라토너' 같은 굳은 의지를 보였다.
이봉주가 '사랑을 싣고'를 통해 찾고 싶은 사람은 그에게 처음 육상의 기본기를 알려줬던 마라톤 스승님. 이봉주는 "그동안 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몸이 안 좋다 보니 코치님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자신의 뒤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오던 코치가 "포기하지 말고 태극마크를 꼭 달아라"고 응원하고 끝까지 믿어준 덕분에 지금의 국민 마라토너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삽교고 육상부가 갑자기 해체되며 은인이던 코치와 헤어지고 육상을 그만둬야 할 위기에 처했던 이봉주는 천만다행으로 육상 명문 광천고에서 그를 스카우트하며 마라톤 선수로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날 이봉주는 김원희, 현주엽과 함께 고등학생 시절 생활하던 합숙소를 찾았다. 과거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합숙소를 둘러보던 이봉주는 힘들었지만, 그리운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쌀을 제외한 다른 반찬들은 학생들이 자급자족해야 할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는 설명. 이봉주는 "힘든 과정들을 잘 버텼기에 오늘날의 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봉주에게는 육상선수로서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다. 현주엽의 요청으로 이봉주가 맨발을 공개하자 김원희는 "완전 평발"이라며 놀랐다. 게다가 이봉주는 왼쪽 발이 오른쪽보다 4mm이상 큰 짝발이라 마라토너로서는 최악의 조건이 갖춰진 셈. 그럼에도 2009년 은퇴를 할 때까지 마라톤 풀코스 41회 완주를 포함해 무려 지구 네 바퀴 반의 거리를 달렸던 이봉주는 "평발은 군대도 안 갔었다. 걷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고통을 다 참고 뛰어냈다"고 말했다.
이봉주의 웃음과 눈물 스토리도 공개됐다. 故손기정, 박세리, 김연아 등과 함께 체육인들의 최고 영예인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상한 이봉주는 단 3초 차이로 아깝게 금메달을 놓쳤던 애틀란타 올림픽 경기를 회상했다. 그는 "100미터만 더 있었으면"이라며 여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봉주는 4개월 뒤 열린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애틀란타 금메달을 가져간 라이벌 선수와 다시 맞붙게 됐고, 이번엔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며 '3초의 한'을 풀 수 있었다. 이때 현주엽이 "아프리카 선수라 날이 추워서 기권했다는데"라며 조심스럽게 비화를 공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봉주는 수만명의 하객들이 참석했던 결혼식도 떠올렸다. 그는 "잠실 주경기장에서 결혼식을 했다. 2002년 마라톤 대회가 열렸는데 시상식을 한 뒤 결혼식을 진행했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해서 더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봉주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경기로 반세기 만의 한국인 우승이란 쾌거를 거둔 2001년 '보스턴 마라톤'을 꼽았다. 훈련 막바지에 부친상을 당했던 이봉주는 몸과 마음 모두가 엉망이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죽기 살기로 뛰어서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봉주는 당시 우승 메달을 공개하며 눈길을 끌었다.
목발을 짚고 재회 현장에 선 이봉주는 "코치님을 만나면 힘과 에너지를 더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간절함을 드러냈다. 이봉주를 만난 코치는 그의 투병 사실을 알고는 "선생님이 억장이 무너진다. 성실하고 착한 놈이 그러니 어쩌냐. 치료는 잘 받고 있느냐"며 눈물을 흘렸다. 이에 이봉주는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어야 하는데, 죄송하다. 곧 좋아질거다. 괜찮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안으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해 감동을 더했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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