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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인터뷰] "연출 데뷔, 부담과 공포"…'헌트' 이정재 감독, 노력형 천재의 너무나 당연한 성공(종합)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22-08-03 09:12 | 최종수정 2022-08-03 12:39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어쩌다 갖게 된 행운이 아닌 데뷔 29년간 쌓은 피땀 눈물의 노력이다. 이정재(50) 감독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었다.

첩보 영화 '헌트'(이정재 감독, 아티스트스튜디오·사나이픽처스 제작)에서 안기부 해외팀 차장 박평호를 연기함과 동시에 '헌트'를 통해 연출 데뷔에 나선 이정재 감독. 그가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헌트'의 연출 과정부터 작품을 향한 열정과 애정을 밝혔다.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들이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북한 장교 이웅평 월남 사건, 그리고 아웅산 테러 사건 등 한국 근현대사를 뒤흔든 굵직한 사건을 녹여낸 '헌트'는 올해 5월 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을 통해 전 세계 최초 공개된 데 이어 올여름 네 번째 텐트폴 주자로 극장가 문을 두드리게 됐다.

특히 '헌트'는 지난 2021년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황동혁 극본·연출)으로 전 세계 신드롬을 일으킨 '월드 스타' 이정재의 첫 연출 데뷔작이자 차기작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이래 약 30년간 드라마, 멜로, 사극,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섭렵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이정재. 그의 첫 연출 데뷔작인 '헌트'로 연출은 물론 각본, 연기, 제작까지 맡으며 멀티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것. 무려 4년간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 이정재 감독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들을 사실감 있게 그려내면서도 기존의 한국형 첩보 액션과 차별화된 새로운 첩보 액션의 장을 열며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동시에 조직 내 침입한 스파이의 실체를 맹렬하게 쫓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로 강렬한 변신을 시도, 안기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와 날 선 대립각을 세우며 내적 갈등을 겪는 입체적인 인물로 열연을 펼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계 대표 절친이자 깐부, '청담 부부'인 정우성과 함께 '헌트'를 이끈 이정재. 두 사람은 '태양은 없다'(99, 김성수 감독) 이후 '헌트'로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정재 감독은 "'이정재가 연출한 작품이 정말 맞나?'라는 호평을 들었다. 주변에 증인단을 만들어서 반응에 답을 해야 하나 싶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헌트'를 향한 좋은 평가에 그저 지금은 감사하다는 감정이 가장 많다. 사실 내가 일하는 방식 자체가 매 작품 열심히 하는 편이다. 연기만 한 게 아니라 연출까지 하다 보니 많은 부분에서 더 열심히 해야 하는 부분이 필요했다. 감히 말하지만 '헌트'는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에서, 또 내가 체력을 쓸 수 있는 한계에서 최대한 끌어낸 것 같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나의 한계라고 생각하려고 한다"고 겸손을 보였다.

칸영화제 이후 국내 개봉까지 완성본을 수정했다는 이정재 감독. 그는 "칸영화제에서 해외 관객의 평가가 갈렸다. 로컬 색이 짙고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재미있는 영화로 느껴진다는 편이 있어서 그 이후 계속 수정했다. 해외 세일즈를 해야 하는데 그게 잘 통하지 않았구나 자책에 편집적으로 바꿀 방법이 없을까 싶었다. 칸영화제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각색을 했다. 촬영한 영상의 숏을 바꿔가면서 후시 녹음으로 수정을 했다. 들어오자마자 편집하고 좀 더 날렵하게 만들려고 했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어렵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보를 가감하고 사운드 믹싱을 보충했다"고 설명했다.


'헌트'를 연출하게 된 과정도 남달랐다. 이정재 감독은 "어렸을 때 신촌에 살았는데 최루탄 냄새가 익숙했다. 일주일에 4~5일 맡기도 했다. 시위가 격렬했을 때였고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감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그게 일상이다 보니 시위가 일상화가 됐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새 정부가 들어서고 많은 뉴스가 공개되면서 내가 어릴 때 알았던 사회적 분위기와 다른 내용이 많았다. 그때부터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답했다.


이어 "'헌트'는 프리프로덕션이 오래 걸린 작품이다. 처음 주제가 잡히지 않았고 그 주제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예 없었다기 보다는 다른 주제로 겉돌았다. 내 옷에 맞는 주제가 아니다 보니 글이 안 써지더라. 사실 '헌트' 각본을 쓰던 시기가 5년 전이었다. 그 시기가 정치적으로 뉴스가 제일 많이 나올 때였다. 여러 사건이 있었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 등 많은 일이 있었다. 전에는 정치적인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양쪽 진영의 말이 어느 때는 이쪽이 옳고 어느 때는 저쪽이 옳을 때가 있으니까 중간자의 입장이다. 중도라고 볼 수 있는 나였는데 4~5년 전 나라에서 극명하게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왜 우리는 편이 나눠지는 것 같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정재 감독은 "'왜 이렇게 갈등을 해야 하나?' 싶었다. 연예 뉴스보다 정치 사회 뉴스가 더 다이나믹하지 않았나? 그런 뉴스를 보면서 과연 누가 우리를 갈등하게 만드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쪽으로 주제를 잡으면서 우리의 신념, 나의 신념은 옳은 것인가를 곱씹게 됐다. 왜 우리는 대립하고 분쟁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면서 '헌트'의 주제가 잡혀 다음부터 좀 더 용기를 냈다. 이 주제라면 이야기 해 볼 만 할 것 같았다. 포기에서 조금 더 용기로 가다 보니 과감해진 것 같다"고 '헌트'를 연출하게 된 과정을 전했다.

과감히 실화를 소재로 한 대목에 대한 과정도 특별했다. 이정재 감독은 "실제 사건을 영화로 다룬다는 게 어마어마한 부담이었다. 시대 배경을 현재로 하려고 노력했다. '굳이 내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영화에 넣어야 할까?'란 고민도 있었다. 자칫 잘못했을 때 비난과 안 좋은 영향들을 혹여 다음 연기할 때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공포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첩보 장르에만 집중해서 현대극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주제가 다시 잡히면서 이 정도면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역사적인 사실에서 스파이 장르를 결합하는데 꽤 어려웠다. 셀 수 없을 정도로 포기하려고 글쓰기를 중단하려고 했던 순간도 많았다. 이 영화는 충무로의 유명 감독들이 못 하겠다고 한 작품인데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나 싶기도 했다. 개인적인 아집이 아닌가 싶었다. 훨씬 훌륭한 감독도 못하겠다고 했는데, 나 역시 포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23년 만에 한 작품으로 호흡을 맞춘 정우성의 캐스팅 과정에 대해 "정우성은 워낙 가깝고 두터운 친구다. 시나리오가 바뀔 때마다 한 번씩 보여줬다. 사실 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작품을 7개 했다. '대립군'(17, 정윤철 감독)부터 시작해서 '오징어 게임'까지 촬영하면서 시나리오를 수정해왔다. 시나리오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 1년에 한 번씩 짬을 내 '헌트' 시나리오를 고쳤다. 그럴 때마다 정우성에게 보여줬는데 거절당했다. 일단 우리 두 사람의 출연에 대중의 기대가 큰데 그 기대치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은 같았다. 겨우 기대치만큼 가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기대치까지 갈 수 있는 시나리오와 재미있는 이야기인지 보고 출연을 결정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우성에게 '그래도 하자'라는 말은 못 하겠더라. 정우성이 거절하면 다른 배우에게도 접촉했고 잘 안되면 또 고치고 시나리오를 바꾸고 다시 정우성에게 보여줬다. 그게 연속으로 3번 정도 한 것 같다"고 캐스팅 과정을 밝혔다.

그는 "같이 회사를 운영하고 주도적으로 하는 프로젝트였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하는 프로젝트라 더 신경이 많이 쓰인다. 정우성이 사고초려했지만 우리는 서운함이 없는 사이다. 워낙 오랫동안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고 웃었다.


'오징어 게임' 성공 이후 후광도 솔직하게 마주했다. 이정재 감독은 "'오징어 게임'의 성공도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100배 이상 높다. 나이가 먹었고 청춘스타나 아이돌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해외에서 많이 알아봐 주고 외국 식당가면 서비스까지 얻어먹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됐다. 이런 내 자체가, 현상이 너무 신기하다. 개인적인 즐거움이고 기쁨이지만 또 더 잘 만들어서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나올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동료들에게 축하 메시지가 올 때마다 '다음은 당신이야'라는 말을 많이 한다. 모든 필름메이커가 인정받기 바란다. 다음은 그들의 작품이, 그들의 연기가, 그들의 노력이 꼭 인정 받기 바란다는 마음이 크다"며 "나도 운이라는 부분에 충분히 공감한다. 어떤 성공에 있어 조금씩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운이나 실력이 뛰어나 얻은 게 아니라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거나 상대의 호흡, 또 운이 좋았다는 등 여러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다양한 것이 모여야 성공으로 가는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의 시나리오가 나에게 온 것은 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게 규정지어서 말하기 어렵다"고 진심을 털어놨다.

'오징어 게임' 시즌2에 대해서는 "어제(2일) 황동혁 게임이 '헌트' VIP 뒤풀이까지 와줬다. 그동안은 황동혁 감독에게 안 물어봤는데 사실 나도 시즌2에 대한 시나리오가 너무 궁금하다. 그런데 황동혁 감독은 자꾸 조금씩 정보를 주더라. 철희와 영희 인형이 나온다는 등 인터뷰에서 조금씩 밖에 이야기하니까 어제 만나서 '자꾸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시즌2는 굉장히 촘촘히 쓰인 트리트먼트가 준비가 됐다. 이제 설계가 안성이 된 이야기로 시나리오화에 돌입했다"고 귀띔했다.


'헌트'는 이정재, 정우성, 전혜진, 허성태, 고윤정, 김종수, 정만식 등이 출연했고 이정재 감독의 첫 연출 데뷔작이다. 오는 10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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