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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어쩌다 갖게 된 행운이 아닌 데뷔 29년간 쌓은 피땀 눈물의 노력이다. 이정재(50) 감독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었다.
특히 '헌트'는 지난 2021년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황동혁 극본·연출)으로 전 세계 신드롬을 일으킨 '월드 스타' 이정재의 첫 연출 데뷔작이자 차기작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1993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이래 약 30년간 드라마, 멜로, 사극, 액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섭렵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한 이정재. 그의 첫 연출 데뷔작인 '헌트'로 연출은 물론 각본, 연기, 제작까지 맡으며 멀티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것. 무려 4년간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한 이정재 감독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들을 사실감 있게 그려내면서도 기존의 한국형 첩보 액션과 차별화된 새로운 첩보 액션의 장을 열며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동시에 조직 내 침입한 스파이의 실체를 맹렬하게 쫓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로 강렬한 변신을 시도, 안기부 국내팀 차장 김정도(정우성)와 날 선 대립각을 세우며 내적 갈등을 겪는 입체적인 인물로 열연을 펼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계 대표 절친이자 깐부, '청담 부부'인 정우성과 함께 '헌트'를 이끈 이정재. 두 사람은 '태양은 없다'(99, 김성수 감독) 이후 '헌트'로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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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이후 국내 개봉까지 완성본을 수정했다는 이정재 감독. 그는 "칸영화제에서 해외 관객의 평가가 갈렸다. 로컬 색이 짙고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재미있는 영화로 느껴진다는 편이 있어서 그 이후 계속 수정했다. 해외 세일즈를 해야 하는데 그게 잘 통하지 않았구나 자책에 편집적으로 바꿀 방법이 없을까 싶었다. 칸영화제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부터 각색을 했다. 촬영한 영상의 숏을 바꿔가면서 후시 녹음으로 수정을 했다. 들어오자마자 편집하고 좀 더 날렵하게 만들려고 했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어렵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보를 가감하고 사운드 믹싱을 보충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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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헌트'는 프리프로덕션이 오래 걸린 작품이다. 처음 주제가 잡히지 않았고 그 주제를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예 없었다기 보다는 다른 주제로 겉돌았다. 내 옷에 맞는 주제가 아니다 보니 글이 안 써지더라. 사실 '헌트' 각본을 쓰던 시기가 5년 전이었다. 그 시기가 정치적으로 뉴스가 제일 많이 나올 때였다. 여러 사건이 있었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 등 많은 일이 있었다. 전에는 정치적인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양쪽 진영의 말이 어느 때는 이쪽이 옳고 어느 때는 저쪽이 옳을 때가 있으니까 중간자의 입장이다. 중도라고 볼 수 있는 나였는데 4~5년 전 나라에서 극명하게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왜 우리는 편이 나눠지는 것 같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정재 감독은 "'왜 이렇게 갈등을 해야 하나?' 싶었다. 연예 뉴스보다 정치 사회 뉴스가 더 다이나믹하지 않았나? 그런 뉴스를 보면서 과연 누가 우리를 갈등하게 만드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쪽으로 주제를 잡으면서 우리의 신념, 나의 신념은 옳은 것인가를 곱씹게 됐다. 왜 우리는 대립하고 분쟁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면서 '헌트'의 주제가 잡혀 다음부터 좀 더 용기를 냈다. 이 주제라면 이야기 해 볼 만 할 것 같았다. 포기에서 조금 더 용기로 가다 보니 과감해진 것 같다"고 '헌트'를 연출하게 된 과정을 전했다.
과감히 실화를 소재로 한 대목에 대한 과정도 특별했다. 이정재 감독은 "실제 사건을 영화로 다룬다는 게 어마어마한 부담이었다. 시대 배경을 현재로 하려고 노력했다. '굳이 내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영화에 넣어야 할까?'란 고민도 있었다. 자칫 잘못했을 때 비난과 안 좋은 영향들을 혹여 다음 연기할 때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공포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래서 첩보 장르에만 집중해서 현대극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주제가 다시 잡히면서 이 정도면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역사적인 사실에서 스파이 장르를 결합하는데 꽤 어려웠다. 셀 수 없을 정도로 포기하려고 글쓰기를 중단하려고 했던 순간도 많았다. 이 영화는 충무로의 유명 감독들이 못 하겠다고 한 작품인데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나 싶기도 했다. 개인적인 아집이 아닌가 싶었다. 훨씬 훌륭한 감독도 못하겠다고 했는데, 나 역시 포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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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같이 회사를 운영하고 주도적으로 하는 프로젝트였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하는 프로젝트라 더 신경이 많이 쓰인다. 정우성이 사고초려했지만 우리는 서운함이 없는 사이다. 워낙 오랫동안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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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동료들에게 축하 메시지가 올 때마다 '다음은 당신이야'라는 말을 많이 한다. 모든 필름메이커가 인정받기 바란다. 다음은 그들의 작품이, 그들의 연기가, 그들의 노력이 꼭 인정 받기 바란다는 마음이 크다"며 "나도 운이라는 부분에 충분히 공감한다. 어떤 성공에 있어 조금씩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운이나 실력이 뛰어나 얻은 게 아니라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거나 상대의 호흡, 또 운이 좋았다는 등 여러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다양한 것이 모여야 성공으로 가는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의 시나리오가 나에게 온 것은 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게 규정지어서 말하기 어렵다"고 진심을 털어놨다.
'오징어 게임' 시즌2에 대해서는 "어제(2일) 황동혁 게임이 '헌트' VIP 뒤풀이까지 와줬다. 그동안은 황동혁 감독에게 안 물어봤는데 사실 나도 시즌2에 대한 시나리오가 너무 궁금하다. 그런데 황동혁 감독은 자꾸 조금씩 정보를 주더라. 철희와 영희 인형이 나온다는 등 인터뷰에서 조금씩 밖에 이야기하니까 어제 만나서 '자꾸 말하고 다니지 말라'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 시즌2는 굉장히 촘촘히 쓰인 트리트먼트가 준비가 됐다. 이제 설계가 안성이 된 이야기로 시나리오화에 돌입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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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