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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진산으로, 자연 생태가 잘 보존된 팔공산은 '막내' 국립공원이다.
안개 끼고 구름 가득할 때면 은빛 바다 같은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 은해사가 팔공산 기슭에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와 군위군, 경산시, 영천시, 칠곡군에 걸쳐 있는 팔공산은 2023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23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막내' 국립공원이다.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생태, 역사, 문화 자원이 풍부해, 잘 보존하여 후세에 물려줄 가치가 크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팔공산에는 식물 1천500여 종, 동물 3천200여 종 등 5천300종가량의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담비, 붉은 박쥐 등 184종은 주요 보호종이다.
통일신라 시대, 나라의 중심 산이라는 의미로 중악(中岳), 부악(父岳)으로 불렸던 팔공산은 영남의 중앙에 자리한 대구 분지를 북쪽에서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팔공산이 대구·경북인들에게 정신적 안식처 역할을 하고, 지리적 중심으로 인식되는 전통이 형성된 것은 오래전이다.
팔공산은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듯한 형세를 띠며, 최고봉인 비로봉(1,193m)을 가운데 두고 동서로 봉우리들이 솟아 능선을 이룬다.
능선을 따라 서쪽의 가산봉(해발 902m), 비로봉, 동쪽의 관봉(853m)을 잇는 약 22㎞의 종주 길은 산객이라면 한번은 완주하고 싶어 하는 대표적 산악 종주 코스이다.
가산지구에서 시작해 가산봉∼치키봉∼파계봉을 지나고, 톱날능선을 거쳐, 3대 봉우리인 삼성봉(서봉)∼비로봉∼미타봉(동봉)에 이르면 팔공산의 정기를 오롯이 느끼게 된다.
주봉인 비로봉에 오르면 팔공산 일대와 달구벌 분지가 내려다보인다.
관봉에 이르면 하나의 소원은 이루어준다는 믿음을 사고 있는 갓바위 부처를 마주하는 것으로 종주의 막이 내린다.
종주 길 외에도 다양한 등산 코스와 108.5㎞에 달하는 팔공산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가산산성탐방지원센터∼동문∼가산바위로 이르는 가산바위 코스는 편도 5.6㎞로, 국내 최대의 개복수초 군락지를 지난다.
가산바위 근처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다양한 야생화를 볼 수 있어 야생화의 천국으로 불리는 곳이다.
경사가 비교적 완만해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수태골 코스에서는 수태 폭포와 계곡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팔공산에는 국보인 영천시 거조사 영산전을 포함해 국가 지정문화재, 지방 지정문화재 등 총 89점의 문화자원이 간직돼 있다.
한해 탐방객이 수십만 명에 이르는 갓바위 부처, 불교 조계종 교구 본사인 은해사와 동화사도 있다.
산중 사찰이 많지만, 교구 본사 둘을 품은 산은 드물다. 팔공산이 불교 역사 및 문화유산의 거점이었음을 말해준다.
팔공산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불이 잘 붙는 송진 탓에 소나무는 다른 수종보다 화재에 더 취약하다.
갓바위탐방지원센터에서 갓바위에 이르는 관봉 코스, 팔공산케이블카 역에서 미타봉 및 비로봉에 이르는 코스 외에 팔공산 등산로는 산불 예방을 위해 통제되고 있었다.
갓바위 부처가 자리 잡은 관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팔공산은 새로 돋아난 신록으로 뒤덮인 숲의 찬란한 생명력을 내뿜으며, 곧 다가올 성하를 예고하고 있었다.
◇ 부처의 가르침이 은빛 윤슬처럼 반짝이는 은해사
안개와 구름이 끼면 은해사를 품은 산자락이 은빛 바다처럼 아름답다는 뜻을 담고 있다.
'부처, 보살, 나한의 자비와 가르침이 은빛 물결처럼 빛난다' '고승대덕의 설법과 염불 소리가 물결처럼 멀리 퍼져나간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은해사 사천왕문을 지나면 수령 300여년의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금포정이 나온다.
숲은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조성됐다. '금포'란 어떤 살생도 하지 않는다는 데서 비롯된 명칭이다.
선인의 식수를 기리기 위해 2007년부터 2년 동안 매년 금강송 1천80주를 금포정과 경내 곳곳에 추가로 심었다.
금포정 옆으로 흐르는 샘천의 물소리가 맑고 경쾌했다.
금포정 길이 끝나는 곳에 세워진 보화루에는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이 걸려 있었다.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은해사를 찾았던 추사는 은해사가 1847년 큰 화재를 당한 뒤 복구됐을 때 은해사, 대웅전, 보화루의 편액과 '佛光'(불광) 등의 글을 써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은해사에 남아 있는 추사의 글씨는 5점이다.
본전인 극락보전과 보화루 사이에는 수령 500여년의 향나무가 천년고찰의 오랜 역사를 무언으로 증언하는 듯 당당하게 서 있었다.
묘목 3그루가 서로 의지하며 자라다가 마침내 한 그루가 된 특별한 나무이다. 공존 공생의 인간사를 은유하는 듯하다.
은해사는 경내 산 중턱에 조선 인종 태실이 있는, 왕실 수호 사찰이기도 하다.
태실이란 왕족의 태반을 묻은 석실이다.
석물의 형태와 문양이 화려하고, 조성 연대가 분명한 인종 태실은 태실 조성 양식과 조각 기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보물로 지정돼 있다.
성보박물관에 전시, 보관 중인 불교 유산 중에서는 청동북 및 북걸이, 괘불탱, 염불왕생첩경도 등 3점이 국가 지정 보물이었다.
청동으로 만든 북 모양의 종인 청동북은 정교한 장식 문양이 눈길을 끌었다. 조선 후기 작품이다.
신라 헌덕왕 원년(809)에 혜철국사가 창건한 은해사는 대중포교 사업에 능동적이다.
템플스테이(사찰체험)를 위해 지은 육화원은 650평형 2층 건물로,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사 2개 등 총 20개의 방사를 갖추고 있다.
◇ 명찰 속의 명찰…암자와 말사들
경북 5대 본사인 은해사가 관할하는 말사와 암자 중에는 이름난 명찰이 적지 않다.
영천시에 있는 거조사의 영산전은 고려 시대에 건축된 목조건물로 국보로 지정돼 있다. 고려시대 목조건물로는 거조사 영산전 외에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조사당, 예산 수덕사 대웅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 강릉 객사문만 남아 있다.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지어진 거조사 영산전에는 526개의 나한 조각상이 모셔져 있었다.
나한은 부처의 설법에 감화돼 불제자가 된 속세의 잡인들을 말한다.
평범한 민초들이지만 수행을 통해 성불한 나한들은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보통 사람들의 수행, 일상 속 정진을 중요시하는 사고가 나한 신앙에 깃들어 있는 듯하다.
높이 30∼50㎝의 돌에 조각한 뒤 색을 칠한 나한상들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이 모두 다른 자세,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한결같이 소탈하고 개성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팔공산 8부 능선에 있는 중암암은 좁은 돌구멍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고, 큰 바위들 가운데 지어져 돌구멍 절이라고 불린다.
암자 주변에는 유독 큰 바위가 많고, 바위들 사이에는 좁은 굴이나 틈새들이 있어 스님이나 도인이 수행하는 토굴을 연상시켰다.
바위를 칼로 내려쳐 생긴 듯한 좁은 틈이 있는 극락굴도 그중 하나였다.
신라 김유신 장군이 수련한 터로 알려진 곳에 있는 장군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만년송, 고려시대 지어진 삼층석탑이 오가는 산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었다.
인종태실을 지을 때 막중수호지소로 지정됐던 백흥암에는 극락전과 극락전 내 수미단이 보물로 지정돼 있고, 선원으로 유명한 운부암에는 화려한 조각의 고려 시대 금동보살좌상이 보물이었다.
팔공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암자인 묘봉암에서는 웅장한 산세를 느낄 수 있었다.
◇ 입시 철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갓바위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산객을 매료하는 팔공산 명승지 중에서도 갓바위 부처는 특히 방문객이 많은 곳이다.
은해사 말사인 선본사에 속해 있는 갓바위를 찾은 참배객은 코로나 사태 이전인 지난 2019년 약 220만 명이었다.
이는 대구와 경산시 소재 탐방로 입구에 설치된 무인 계측기로 집계한 규모이다.
계측기로 집계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방문객은 훨씬 많을 듯하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탐방객 수는 꽤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참배객이 많은 것은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의 영험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특히 이 돌부처가 머리에 이고 있는 판석이 학사모와 닮아 입시 철이면 자녀의 시험 운을 기원하는 부모들의 간절한 발길이 새벽부터 한밤까지 끊이지 않는다.
정식 명칭이 관봉석조여래좌상인 갓바위 부처는 높이가 약 6m, 무릎 너비가 3m 이상에 이른다.
신라 선덕 여왕 때 의현 스님이 조성한 것으로 기록된 갓바위 부처는 관봉 정상에 앉아 대구시와 그 남쪽 지방을 그윽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갓바위 앞은 정성스레 기도하는 참배객과 관광객들로 붐볐다. 1주일에 2∼3번 이곳을 찾는다는 불자도 있었다.
대입 시험을 치던 해 어머니가 매일 새벽 이곳을 찾아 기도했다는 젊은이는 갓바위와 자신이 연결된 듯한 느낌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팔공산과 갓바위가 지역인들에게 각별하고 소중할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6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ksh@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