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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honey] 가까이 있는 조선왕릉…고양 서삼릉

기사입력 2025-07-02 08:23

철종과 철인황후의 예릉 [사진/백승렬 기자]
서삼릉, 한국마사회 원당목장, 젖소개량사업소 [사진/백승렬 기자]
효릉 [사진/백승렬 기자]
방역 부스 [사진/백승렬 기자]
효릉 홍살문과 정자각 [사진/백승렬 기자]
효릉 봉분 [사진/백승렬 기자]
태실 [사진/백승렬 기자]
왕자·왕녀묘 [사진/백승렬 기자]
태실군(오른쪽부터), 왕자·왕녀묘, 숙의 묘역, 빈·귀인 묘역, 회묘 [사진/백승렬 기자]
회묘 [사진/백승렬 기자]
회묘의 석물 [사진/백승렬 기자]
희릉(왼쪽)과 예릉 [사진/백승렬 기자]
희릉 문석인 [사진/백승렬 기자]
효창원과 의령원 [사진/백승렬 기자]
소경원 [사진/백승렬 기자]
서삼릉, 한국마사회 원당목장, 젖소개량사업소 [사진 백승렬 기자]
일제 강점기 거쳐 현대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숲

(고양=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조선왕릉이라고 하면 한 시대에 국한된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왕릉의 역사도 흘러가는 시대와 함께한다는 점에서 과거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서울에서 가까운 고양 서삼릉은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 강점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 이야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 역사의 궤적

경기도 고양특례시에 있는 서삼릉은 서쪽에 있는 3기의 능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조선 11대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 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인 효릉, 25대 철종과 철인황후의 능인 예릉이 있다.

이들 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드라마와 영화에 자주 나온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 '비운의 왕세자' 소현세자의 무덤 등도 있다.

서삼릉은 이곳만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전국 각지에 있던 조선 왕실 가족의 태실(胎室·왕실에서 태어난 아기의 태반과 탯줄을 봉안한 뒤 조성한 시설) 54기가 이곳으로 옮겨졌다.

1960년대를 중심으로 서삼릉 인근에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

시간이 지나면서 특수한 상황으로 능역이 분절 또는 훼손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재 관람객은 서삼릉 입구로 들어가면 희릉, 예릉 등을 볼 수 있다.

효릉과 태실 등은 여기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있고 입구가 따로 있다.

서삼릉을 포함해 한국에 있는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 중 마지막까지 비공개였던 효릉은 2023년 9월 일반에 개방됐다. 서삼릉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 2년 전 개방된 효릉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인 효릉은 봉분이 나란히 있는 쌍릉 형태다.

두 봉분이 난간석으로 연결돼 있는데, 병풍석은 인종의 능에만 있다. 인종의 재위 기간은 9개월 정도로, 조선 국왕 중 가장 짧았다.

취재팀은 효릉을 먼저 찾아갔다.

근처에 이르자 '효릉·태실 정문'이 보였다.

효릉 취재에 필요한 절차는 미리 밟아뒀고 고양시 문화관광해설사,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서부지구관리소 서삼릉 관리소 직원이 동행했다.

효릉 주변에는 국내 농가에 젖소 종자를 공급해 온 젖소개량사업소가 있다.

효릉 관람을 위해선 방역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들었다.

방역 부스에서 10여초 있으면 되는 간단한 절차였다.

2년 전 당시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유관기관과 오랫동안 논의 끝에 효릉을 개방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효릉까지 가는데 전망이 트인 넓은 땅이 양옆으로 펼쳐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홍살문이 보였다.

눈앞에 정자각은 있는데, 수복방과 수라간이 보이지 않았다.

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사초지를 거쳐 능침까지 올라갔다.


묵직한 뒷모습의 무석인(왕을 호위하는 무인 모습의 석물), 수염까지 표현한 문석인, 석마(말 모양의 석물)와 석양, 석호가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돌의 느낌은 울퉁불퉁 거칠었다.

석물의 독특한 느낌과 빛깔, 푸른 하늘과 초록빛의 왕릉은 평온함을 안겨줬다.

동행한 해설사는 효릉의 역사를 설명해 준 뒤 "인근에 과거 골프장 등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일반인이 효릉과 태실을 관람하기 위해선 온라인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가축전염병 발생으로 효릉 관람은 중지될 수 있으니 미리 확인이 필요하다.

◇ 일제 강점기 옮겨진 조선 왕실 가족 태실

효릉을 빠져나온 뒤 오솔길을 지나자 비석이 수십 개 늘어선 묘역이 보였다.

조선 왕실 가족의 태실군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곳이라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조선 시대에는 태를 백자 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길지에 묻었고 관리인도 따로 뒀다.

어두운 빛을 띤 오석 비석의 명단을 살펴보니 태조, 세종, 숙종 등의 이름이 보였다.

대부분 국왕이었다.

화강석 비석에는 왕자와 왕녀 등의 이름이 있었다.

1996년에 서삼릉 태실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고서에 자세히 실렸다.

태항아리 등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지금은 여기에 비석만 남아있다고 한다.

묘역 앞에는 2020년 서삼릉태실연구소가 기증한 태항아리 재현품이 전시돼 있어 이해를 도왔다.

비석 뒷면에 일본의 연호를 삭제한 흔적이 있다고 해 취재팀도 살펴봤다.

몇 월 며칠인지와 바로 위에 있는 '년'(年)자는 보이는데, 그 위에 무엇이 적혀있는지는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가까운 왕자·왕녀묘에는 22기의 묘가 있다.

그 앞의 문석인도, 봉분도 작아 보였다. 담장을 나와 조금 더 걸어가면 후궁묘가 나온다.

후궁묘는 숙의 묘역에 이어 빈·귀인 묘역이 따로 있다.

조선왕릉 누리집에 따르면 빈·귀인 묘역의 묘 일부는 일제 강점기에, 다른 일부는 광복 후 도시화 개발로 1960~1970년대 옮겨졌다고 한다.

이 묘역에는 드라마에 자주 나온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의 묘도 있다.



◇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회묘

이동하는 위치상 다음으로 관람한 곳은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의 회묘다.

9대 성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폐비 윤씨 묘의 이름을 회묘라 했다.

몇 년 뒤에는 회릉으로 높이고 능의 격에 맞게 새로 조성했다.

하지만, 중종반정으로 자신이 폐위됐고 회릉도 다시 회묘가 됐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능의 모습은 남았다.

문석인, 무석인, 석마, 석양, 석호 등의 형식을 살필 수 있었다.

회묘는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었는데, 1969년 이곳으로 옮겨졌다.

일반 관람객이 가까운 거리에서 석물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철종의 예릉…조선왕릉의 마지막 형태

이미 점심시간이 지나 인근에서 칼국수를 먹고 이번에는 서삼릉 입구로 향했다.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을 찾았다.

희릉은 다른 장소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중종의 능도 주변에 만들어지면서 함께 정릉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중종의 능만 현재의 서울 강남으로 옮겨졌다.

또 다른 해설사와 동행하며 희릉의 능침에 올라갔다.

우람한 무석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정면에 서서 얼굴을 뜯어보니 귀까지 큼직하게 표현돼 있었다.

철종과 철인황후의 능인 예릉으로 이동했다.

철종은 강화도 유배지에 있다가 국왕이 된 자신의 삶처럼 혼란한 시대를 살다 갔다.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로 추존됐다.

예릉은 영조 시대에 편찬된 '국조상례보편'의 예에 따라 조성된 마지막 조선왕릉의 형태를 갖췄다고 한다.

문석인과 무석인은 거대하고 두께감이 있었으며 옷자락의 선도 굵었다.

해설사는 일부 석물은 땅에 묻혔던 중종의 옛 정릉 석물을 꺼내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장명등(석등)이 좌우 문석인 가운데 부분이 아니라 앞쪽으로 꽤 많이 나와 있어 눈에 띄었다.

이곳 지대는 경사가 심하지 않고 비교적 완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문효세자의 효창원과 의소세손의 의령원

'비운의 왕세자' 소현세자의 소경원

여기까지 봤다고 서삼릉 관람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곳에는 정조와 의빈 성씨의 아들 문효세자의 무덤인 효창원,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첫째 아들 의소세손이 잠든 의령원이 함께 있는 공간이 있다.

예릉을 관람하고 나오면 왼편에 있다.

서울 용산에 있던 문효세자의 무덤은 1944년에, 서대문구에 조성됐던 의령원은 1949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나무 계단을 올라가자 아담한 크기의 묘 2개가 보였다.

관람객의 시선에서 보면 앞쪽이 효창원, 뒤쪽이 의령원이다. 여기에 서 있는 문석인은 아담해 보였다.

서삼릉에는 또 한 명의 세자의 무덤이 있다.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의 소경원이다.

소현세자는 병자호란 이후 동생인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갔다.

9년 뒤 돌아왔지만, 두 달 후 세상을 떠났고 이를 두고 독살 의혹이 제기됐다.

소경원은 비공개 상태여서 직접 관람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 소경원 정자각 복원 계획이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

조선 왕실의 무덤은 신분에 따라 분류된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陵), 왕의 후궁이나 종친, 왕세자와 왕세자빈은 원(園), 폐위된 왕이나 그 외 왕족은 일반인의 무덤과 같이 묘(墓)라고 했다.



◇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는 길

문화유산의 가치·복원의 염원 되새겨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려면 서울 지하철 3호선 원흥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는 방법이 있다.

5분 정도 지나면 농협대학교 다음으로 '서삼릉.종마목장 입구'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여기에서 내리면 고양 서삼릉까지 직진하면 600m, 효릉과 태실은 왼쪽 길로 1.3㎞ 걸린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서삼릉 방향으로 걷다 보면 젖소개량사업소 안내판이 보이고 그 옆에 서삼릉 입구가 있다.

서삼릉 울타리 오른쪽에는 한국마사회 원당목장 간판이 있다.

서삼릉은 지금까지 봤던 조선왕릉과는 또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직접 가 보니 현재의 모습이 잘 보이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화관광해설사의 꼼꼼한 해설은 이해의 폭을 넓혀줬다.

능역 복원에 대한 염원도 느낄 수 있었다.

서삼릉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세계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모습에 궁금증을 안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5년 7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sk@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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