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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프리카인에게 있어 영국인의 셰익스피어, 러시아인의 푸시킨과 같은 존재이다."(뉴욕타임스)
나이지리아 작가 치누아 아체베(1930∼2013)의 타계 때 쏟아진 찬사 중 하나이다.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지다'는 아프리카 소설의 대명사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 60여개 언어로 2천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소설의 시작 부분은 구수하고 서정적인 아프리카 전통사회를 묘사한다.
노인에 대한 공경, 대지와 일체감 등 대한민국 사람이 읽어도 공감할 만한 대목들이 많다. 개인 수호신 격이 따로 있고 마을을 지키는 신, 하늘에서 번개를 내리는 신 등도 따로 있다.
주인공 오콩코가 무력했던 아버지와 달리 자력으로 일어서며 아프리카인의 주식 작물 중 하나인 '얌' 재배에 농부로서 온갖 정성과 품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우리 전통 벼농사 재배를 연상시킨다.
아무튼 이 소설은 전통사회가 영국의 식민 침탈을 겪으면서 겪는 붕괴와 혼란상을 다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 근대 소설 중 김동리의 작품 '무녀도'에 십자가가 들어오는데 무당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과 겹친다.
아체베의 작품은 나이지리아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하이네만 아프리카 작가 시리즈'를 통해 후배 아프리카 작가들을 지속해서 발굴하고 영감을 줬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말을 빌리면 아프리카를 세계 나머지 지역에 정위치시킨 작가이다.
만델라는 자신이 아파르트헤이트 당시 수감됐을 27년 동안 아체베의 작품을 읽으면 감옥 벽이 무너져 내린 것과 같았다고 평가했다.
아체베는 1930년 11월 16일 나이지리아 동부 이보족 마을인 오기디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앨버트 치누아루모구 아체베이다. 선교사 영향을 받아 목사가 된 아버지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이름을 따 아들의 세례명을 앨버트라고 했다.
아체베는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이바단 대학(당시엔 런던대학교 소속)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지만 세계 종교와 아프리카 문화에 눈을 뜨고 매료됐다.
그가 정작 아프리카 작가로서 정체성을 일깨우게 된 계기는 1933년 '미스터 존슨'(조이스 캐리 작)이라는 영어 소설에 나온 아프리카인 캐릭터가 죽임을 당하면서도 미개하게 그려진 데 분노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왜곡된 아프리카를 펜으로써 올바로 알리자는 반식민주의 문학 투쟁에 뜻을 모은다.
그는 나중에 아프리카를 다룬 '어둠의 심연' 작가 조셉 콘래드를 철두철미한 인종주의자라고 비판하는가 하면 '킬리만자로의 눈'으로 유명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해서도 "아프리카 화자가 작품에 등장하지 않고 단지 말 없는 배경에 불과하다"면서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나이지리아 방송사에서 일하다가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BBC에서 스토리 작가로도 일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이 당시 그가 작품을 구상하고 쓴 것이다.
그가 30세가 채 되기도 전에 발표한 첫 작품으로 세계적 작가가 되고 나라는 꿈에 그리던 독립을 달성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비아프라 내전(1967∼1970)에 휩싸여 100만 이상이 사망한다.
아체베가 속한 이보족이 주도해 분리독립을 하려고 했으나 무참하게 진압됐다. 아체베는 이른바 비아프라 공화국의 순회 문화대사라는 외교관 직함도 한때 가졌다.
나이지리아는 이후 군부 독재 치하에 들어갔고 아체베는 사실상 해외로 나가 망명객 같은 처지가 된다.
비아프라 내전 이후 20년 가까이 소설을 쓰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문제점이 모두 백인 식민주의 탓이라 하지 않고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부패, 그리고 이들의 폭력을 용인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비판했다.
시, 강연집, 에세이 등 다양한 문학 활동을 하며 20권 넘는 책을 썼다.
1990년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하반신 마비가 됐다. 이후 미국에 건너가 바드 대학과 브라운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아프리카 문학을 세계 문학 정전에 당당히 올려놓았다.
1999년 나이지리아가 문민정부로 바뀐 이후 조국을 자주 찾을 때면 수천에서 수만 명이 운집해 그를 환영하는 등 그는 나이지리아를 대표하는 계관작가 대우를 받았다.
그는 그러나 나이지리아에 대한 쓴소리를 계속했다. "국민이 굶주리고 낙담하며 인프라도 없다면 민주주의가 무슨 소용이냐"고 일갈했다.
미국에서 아프리카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한 방청객이 아프리카 작가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고 질문했다. 그는 장황하게 설명하는 대신 "가서 우리 책들을 읽어보세요"라고 거듭 단호하게 답변했다.
아체베는 2007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문학상인 맨부커 국제상을 받았다.
그가 선구적 아프리카 작가로서 뿌린 씨앗들은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특히 2021년에는 후배 아프리카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압둘라자크 구르나)은 물론이고 부커상(데이먼 갤것, 다비드 디오프는 국제 부커상 수상), 공쿠르상(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등 세계 3대 문학상을 휩쓰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아체베는 2013년 3월 22일 미국 보스턴에서 영면에 들었다. 같은 해 12월 그를 그토록 존경했던 만델라도 세상을 떠났다.
sungjin@yna.co.kr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