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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노년으로 갈수록 완숙한 경지…붓과 먹만으로도 표현"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공연장.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반세기도 지난 1972년 12월 3일 어느 전시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꺼내자 곳곳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유 관장은 당시 기억이 생생한 듯 "자연스럽게 그림을 같이 보고 나오는데 또 만나고 싶어서 다음 토요일에 와서 잘 설명해주겠다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만나기로 한 날 (전시실이 문 닫는) 오후 5시가 되도록 그분이 오지 않았다. 쓸쓸한 마음으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밖으로 나왔는데 모과나무 뒤에 딱 서 있었다"고 말했다.
유 관장이 "그렇게 만나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다"고 하자 박수 소리가 나왔다.
유 관장 부부를 이어준 고리는 겸재 정선(1676∼1759)이 1711년 금강산을 두루 여행한 뒤 남긴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 속 '옹천' 그림이었다.
유 관장은 아내에게 말을 건넨 나귀와 관련해 "벼랑길을 따라 넘어가는 모습을 나귀 뒷모습과 꼬리로 담아냈다"며 "타고난 화가이자 센스와 유머가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 관장이 '러브 스토리'를 꺼내놓은 건 우리 강산과 산천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펼쳐낸 화가 겸재 정선의 면면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 개편을 맞아 열린 특별강연은 800석을 가득 채웠다.
유 관장은 "겸재 정선은 동양 회화사 전체를 돌아봐도 그 위상이 높다"며 "특히 겸재는 금강산의 아름다운 산수를 화폭에 펼쳐내며 하나의 장르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선의 오랜 벗인 관아재 조영석(1687∼1761)의 말로 정선을 평가했다.
"겸재의 그림은 거의 중국 역대 대가들과 맞먹을 만하다. 조선 300년 역사에 이런 화가는 없었다.… 조선적인 산수 화법은 겸재에서 비로소 새롭게 출발하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유 관장은 서화실에서 전시 중인 '신묘년풍악도첩'과 '박연폭포' 등 주요 작품을 찬찬히 짚으며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주요 표현 기법을 설명했다.
작품 속 구도를 설명할 때는 '부감'(俯瞰·높은 곳에서 내려다봄)이라는 용어 대신 '오늘날 무인기(드론)를 띄워 촬영한 것처럼'이라며 쉽게 설명하기도 했다.
유 관장은 '노년의 정선'을 특히 눈여겨봐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시절에는 되도록 형상을 정직하게 그려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경지에 이르면 형상에 대한 묘사보다는 필묵(筆墨·붓과 먹)만으로 표현하지요."
유 관장은 정선의 그림 중 '숙조도'(宿鳥圖)를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잠을 청하는 새를 그린 것으로, 정선이 진경산수화뿐 아니라 화조화(花鳥畵·꽃과 새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에서도 능했음을 알 수 있다.
유 관장은 새 단장을 마친 서화실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그는 "유물 관리를 위해 회화는 3개월 이상 노출하지 않는다. 회화실은 운명적으로 작품을 3개월씩 교체해야 하는데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 전시를 구성했다"고 자신했다.
그는 "박물관은 참 멋있어 보이지만, 전쟁이 나면 박물관 직원들은 유물을 지키기 위해 창고로 나와야 한다. 그게 채용 조건"이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박물관의 여러 유물 가운데 하이라이트는 회화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역량에 평소 쉽게 볼 수 없었던 개인 소장품까지 한자리에 아울렀습니다. 어떤가요?"
yes@yna.co.kr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