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⑾:

기사입력 2026-03-26 08:26

[김영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제작 양진규]
[김영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김영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에는 민주주의가 없을까. 우리는 뉴스에서 아프리카의 유혈 사태, 쿠데타, 혹은 수십 년간 자리를 지키는 독재자들을 많이 접한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에는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미디어가 생산한 이미지들은 파편일 뿐, 아프리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때때로 편견은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대륙의 역사적 맥락과 아프리카 안에서 태동하는 민주주의를 외면하게 한다. 물론 여전히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가 정치적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도 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로 평가받는 곳이 있다. 바로 보츠와나다.

보츠와나는 1966년 독립 이후 단 한 차례도 헌정 중단이나 군부 쿠데타를 겪지 않았다. 물론 보츠와나 민주당이 오랫동안 정권을 유지하긴 하였으나, 폭정이나 부정선거를 통해 정권을 유지한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한 민주적인 통치를 했다. 또 2024년에는 여야 간 평화로운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여느 민주국가들처럼 대통령이 새로 당선된 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할 정도로 보츠와나의 민주주의는 성숙해 있다.

보츠와나가 이토록 견고한 민주주의를 안착시킬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히 서구의 제도를 모방했기 때문이 아니다. 민주적 문화는 사실 보츠와나 사회에 이미 자리 잡은 시스템이었다. 보츠와나의 다수족인 츠와나(Tswana)족은 전통적 의사결정 시스템인 코틀라(Kgotla)를 지니고 있다. 코틀라는 마을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추장과 모든 마을 구성원이 광장에 모여 토론을 벌이는 합의제 시스템이다.

이 자리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추장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대신 공동체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합의를 도출해야만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보츠와나가 서구의 민주주의를 이질감 없이 받아들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유전자가 현대 정당 정치 및 의회 제도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보츠와나는 리더 한 명의 결정이 아닌 제도의 안정성에 의해 움직이는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코틀라 시스템과 더불어 보츠와나 민주주의의 성장을 끌어낸 중요한 인물이 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세레체 카마는 아프리카의 많은 독립 영웅이 흔히 빠졌던 건국의 아버지라는 신격화와 장기 독재의 유혹을 과감하게 떨쳐냈다. 그는 독립 직후 발견된 다이아몬드를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세력을 불리고 민주주의를 핍박하는 수단으로 쓰지도 않았다. 자신의 권한을 의회와 사법부로 분산시켰고 국민의 민생을 먼저 신경 쓰는 지도자였다. 국민의 지지를 통해 선거에 정당하게 승리하였으며, 보츠와나 민주주의 정착에 최선을 다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보츠와나는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켰을 뿐 아니라 경제 성장마저 이루어 냈다. 보츠와나의 경제 성장은 자원의 저주를 극복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거의 유일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여러 국가가 석유나 자원의 발견으로 인해 내전과 부패의 늪에 빠질 때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 수익의 투명한 관리를 제도화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엘리트가 독점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보건·인프라 구축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그 결과 독립 당시 세계 최빈국이었던 보츠와나는 연평균 7% 이상의 경이로운 성장을 기록하며 중상위 소득 국가로 진입했다. 독립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0달러(약 14만원)가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5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은 7천달러(약 1천만원)에 달한다. 다이아몬드라는 자원이 총성이 아닌 학교와 병원으로 치환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정부의 청렴성과 이를 감시하는 민주적 시스템 덕분이었다. 보츠와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사례 중 하나다.

재밌는 점은 필자가 보츠와나의 발전된 면모를 가장 체감한 곳이 보츠와나의 국립공원이라는 점이다. 보츠와나의 발전을 실감하고 싶다면, 정치·경제 발전에 대한 여러 데이터보다 보츠와나의 국립공원에 방문하는 것이 낫다. 보츠와나의 안정된 정치와 경제는 인간의 삶을 넘어 자연의 생태계로 확장됐다. 필자는 2024년 보츠와나의 초베 국립공원을 방문했다. 북부의 초베 국립공원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코끼리 서식지다. 이곳에는 약 10만마리에서 12만마리의 코끼리가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수십 마리의 코끼리가 떼 지어 초원을 건너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면 신적인 경이로움이 느껴질 정도다.

이곳에 코끼리가 몰려든 이유는 단순히 환경이 좋거나 먹이가 풍부해서가 아니다. 근접 국가에서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밀렵을 방치하고 코끼리 서식지를 파괴하자 코끼리들은 놀라운 본능으로 가장 안전한 곳인 초베 국립공원으로 국경을 넘어 이동했다. 우스갯소리로 코끼리들이 보츠와나 정부가 강력한 야생동물 보호 정책을 시행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초베 국립공원으로 몰려들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보츠와나 정부는 군부대까지 투입해 밀렵을 감시하고, 관광 수익을 지역 공동체와 공유하여 주민들이 직접 자연을 보호하게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결국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개발된다는 것은 인간만 좋아지는 일이 아니다. 인간이 세운 평화의 시스템은 동물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방패로 작동할 수 있다. 최근에는 보츠와나의 코끼리 개체 수가 너무 늘어나 농작물과 마을을 파괴하는 일까지 생겨났다. 보츠와나는 코끼리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코끼리 사냥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보츠와나의 사례는 우리에게 아프리카 국가의 발전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에 민주주의란 맞지 않는 옷인가. 아프리카 국가들은 언제까지 빈곤의 늪에 빠져 있을 것인가. 개인적으로 겪은 아프리카의 문화는 독재보다는 민주주의와 어울린다. 아프리카에는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고, 의사소통과 합의의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보츠와나의 코틀라 시스템은 사실 식민 지배 이전에 많은 아프리카 지역에 존재했던 문화이자 삶의 일부분이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도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한 것이다. 경제 발전 역시 아프리카가 지닌 자원을 조금만 지혜롭게 활용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코끼리가 좋아하는 초베의 들판이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도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연합뉴스>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