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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현장]6인으로 더 짙어진 '피'…엔하이픈, 뱀파이어 세계관으로 증명한 '서사형 공연'(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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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요즘 '이지 리스닝'이 대세라지만, K팝 아이돌에게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세계관, 그리고 서사다. 그 중심에 선 그룹 엔하이픈(ENHYPEN)은 이번 무대에서 그것을 가장 집요하게, 그리고 가장 집약적으로 증명했다.

사실 영화나 뮤지컬처럼 선명한 내러티브를 라이브 공연에 녹여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데뷔 때부터 '뱀파이어'라는 독보적 정체성을 고수해온 엔하이픈은 이를 하나의 거대한 '사가(Saga, 대서사시)'로 완성해냈다.

지난 1일부터 3일간 서울 KSPO돔에서 펼쳐진 엔하이픈 네 번째 월드투어 '블러드 사가'는 공연명 그대로, 엔하이픈의 정체성을 이루는 '피와 운명'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구조화한 작업이었다.

엔하이픈은 '너와 함께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피의 운명'이라는 주제로 1일부터 3일까지 총 3회, 3만 2250명 팬 엔진과 '피가 끓는 순간'을 함께 만들었다. 무엇보다 4개의 챕터로 나눠, 하나의 서사로 이어진 이번 공연은 '한 편의 다크 판타지 영화'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첫 문을 연 '배니시' 섹션은 우리의 만남을 가로막는 세상의 억압을 찢고 너에게 향하겠다는 엔하이픈의 선포였다. '나이프'로 강렬하게 등장한 엔하이픈은 곡명처럼 무대를 찢으며 시작, '데이드림', '아웃사이드', '브로트 더 히트 백' 등 연달아 무대를 수놓으며 초반부터 공연의 밀도를 높였다.

이어진 두 번째 '하이드아웃' 챕터에서는 '빅 걸스 돈 크라이'와 '노 다웃'으로 엔진의 함성을 키우고, 바로 숲속 은신처로 자리를 옮겨 '슬립 타이트', '빌스', '문스 트럭', '파라노말' 등이 차례대로 이어지며 서정적인 감성을 전했다. 이는 너의 흔적을 쫓아 도착한 아름다운 숲에서 너를 떠올리는 서사를 그린 것이다.

이후 공중으로 올라간 '블록버스터', 군무를 완성한 '모 아니면 도', '들어와/ 들어와' 떼창을 함께 완성한 '퓨처 퍼펙트'에서는 엔진과 '함께할 미래를 노래하는 서사'를 현실화하기도 했다.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세 번째 챕터 '블러드 사가'였다. 엔하이픈은 해당 섹션에서 '피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의 죄를 기꺼이 짊어지며 가장 뱀파이어스러운 사랑을 표출했다.

이번에 최초 공개한 '스틸러'로 챕터를 시작해, 엔하이픈의 대표곡 '드렁크-데이즈드', '바이트 미'로 이어지는 구간은 엔하이픈의 뱀파이어 콘셉트가 가장 짙게 투영됐다.

특히 VCR 속에서 누군가에게 쫓기던 뱀파이어가 물속으로 떨어지는 연출 직후, 실제 무대 위 관에서 멤버들이 깨어나며 퍼포먼스를 시작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었다. 이는 엔하이픈이 설계한 거대한 뱀파이어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리더 정원도 "도피를 시작한 지 4개월 됐다. 열심히 도망쳐 왔는데 결국 KSPO 돔까지 쫓아왔다"라며 세계관에 흠뻑 몰입한 멘트를 했고, 선우 역시 "쫓기는 게 너무 힘들었다"라고 맞장구치며 엔진을 '엔하이픈만의 서사' 속으로 깊숙이 안내했다.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실제로 이날 공연의 백미는 단연 무대 연출이었다.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시각화하기 위해 투입된 공력이 역력했기 때문. 가장 돋보인 점은 VCR의 활용 방식이다. 통상적인 K팝 공연이 섹션 사이에만 브릿지 영상을 삽입하는 것과 달리, 엔하이픈은 곡과 곡 사이에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전환 영상과 밴드 편곡을 배치했다.

무엇보다 영화 같은 영상의 완성도에 더해진 밴드 편곡은 이 서사에 큰 무게를 실었다. 전자음 중심의 편곡에 웅장한 라이브 세션까지. 뱀파이어 특유의 다크한 분위기를 배가시키고, KSPO돔의 거대한 공간감도 꽉 채워줬기 때문이다.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마지막 챕터 '로스트 아일랜드'는 감동의 여운으로 마무리됐다. '여정 끝에 도착한 미지의 섬. 함께라는 믿음으로 우리의 세상을 새롭게 써 내려가자는 외침'이라는 주제로 앙코르 섹션이 이어진 것. '로스트 아일랜드', 'XO', '샤우트 아웃'이 엔하이픈과 엔진의 화음으로 '피의 서사' 마지막 페이지를 함께 써 내려갔다.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공연을 마친 멤버들의 소감에도 진심이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무대가 더욱 의미 있는 건 팀의 전환점 위에서 펼쳐진 공연이기 때문이다. 멤버 희승의 탈퇴로 6인 체제로 재편된 이후 처음 서는 콘서트인 동시에, 지난해 각종 시상식을 휩쓴 뒤 처음 엔진과 마주하는 콘서트였다.

제이는 "이번 투어는 시작부터 다른 느낌이다. 저희도, 엔진도 임하는 태도가 확실히 다르다. 준비하며 걱정도 있었지만, 이제 후련하고 보답 받는 느낌이다.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겠다"고 털어놨다. 정원은 "어제와 오늘은 진심으로 임한 무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섯 멤버 모두 100%를 쏟은 공연이었다"고 강조했고, 니키는 "오늘 하루가 엔진에게 행복과 내일의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엔하이픈. 사진 제공=빌리프랩

변화와 정점이 교차하는 시점에서, 흔들림 대신 서사를 선택한 엔하이픈. 데뷔부터 지켜온 '뱀파이어 세계관', 본질은 결국 틀리지 않았다. 이 '피의 서사'는 이제 전 세계로 뻗어나갈 예정이다. 엔하이픈은 3일 서울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남미, 북미, 유럽, 아시아를 아우르는 총 21개 도시 32회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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