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놀랍고 기뻐요. 그런데 이제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남태희(26·레퀴야)는 21일(이하 한국시각) 2016~2017시즌 카타르 스타스리그 '별 중의 별'로 선정됐다. 스페인의 '살아있는 전설' 사비 에르난데스와 카타르 대표팀 '에이스' 알 하이도스(이상 알 사드)를 제치고 정상에 우뚝 섰다. 남태희는 22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큰 상을 받게됐다. 내가 잘 해서 이룬 게 아니라 팀이 큰 도움을 줬다"며 "MVP 최종 후보 명단을 보고 당연히 사비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오는구나 싶었다"고 밝혔다.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 맑은 미성에 아직 강하게 남은 경상도 억양, 그 속에 미세한 떨림이 섞여있었다. 남태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해야 할 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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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리그 MVP를 수상,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은 남태희. 사진제공=남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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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 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고있는 남태희. 사진제공=남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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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희가 카타르 현지 언론들과 수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남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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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희(오른쪽)가 팀 동료이자 '절친'인 카림 부디아프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부디아프는 남태희가 레퀴야에 입단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룸메이트로 지낸 동료다. 카타르 대표팀 핵심 자원이기도하다. 사진제공=남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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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택했던 카타르행, 하지만…
남태희가 19세 때 일이다. 2009년 프랑스 리그1 발랑시엔에 입단했다. 큰 기대를 모았다. 당시 남태희는 한국 최고의 유망주였다. 보기 드문 테크니션, 유럽에서 꽃 피울 것 같았다.
현실은 냉정했다. 어린 소년의 어깨로 짊어지기엔 너무 무겁고 차가웠다. "어린 나이에 혼자 프랑스에 있으면서 정말 힘들었다. 언어도 안 통하고 친구도 없었다. 거의 2년 간 집과 훈련장만 오갔다. 경기 출전도 못하면서 자신감까지 떨어졌다"며 "이 곳까지 와서 내가 뭘 하고 있는건가….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나 자책감만 늘었다."
기회가 왔다. 발랑시엔에서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자멜 벨마디가 레퀴야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남태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민하지 않았다. 출전이 간절했다. 축구선수로서 '살기 위해' 카타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 때 그의 나이 21세였다.
벨마디 감독과의 궁합이 좋았다. 레퀴야 생활도 만족스러웠다. 서서히 남태희의 얼굴에서 그림자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련이 찾아왔다. '비판의 목소리'다. 프랑스에서 뛰던 젊은 유망주가 수준 낮은 중동으로 갔다는 것. 남태희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팬들로부터 정말 안 좋은 이야기 다 들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데 그 땐 너무 어렸다. 당시엔 상처가 깊었다"며 "그런데 더 마음 아픈 건…"이라며 말 끝을 흐렸다. "솔직히 나보다 부모님께서 상처를 많이 받고 힘들어하셨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아들이 욕먹는 걸 보는 부모님 심정이 좋을 수가 있겠나"라고 했다.
잠시 어두웠던 분위기. 남태희가 다시 웃는다. "이젠 괜찮다. 오히려 자극제 삼아 뛰고 또 뛰었다. 나보다도 부모님과 사랑하는 내 아내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며 "이번에 MVP를 하면서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해서 난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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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의 무게
인터뷰 당일 A대표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카타르) 명단이 발표됐다. 남태희는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나를 좋게 봐주셨기에 발탁을 해주셨다. 소중한 기회를 받아 태극 마크를 달고 있는데 팀의 상황이 좋지는 않아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향한 비판이 거세다. 남태희는 "처음 오셨을 때와 다르게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받고 있다"면서 "남은 카타르, 이란,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선수들이 잘해서 감독님에게 받은 것을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 예선 경기 때도 상대보다 우리의 경기력이 나빴다. 모든 게 감독님 탓이라기 보다는 선수들이 더 잘 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털어놨다.
이어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내가 보기엔 충분한 실력을 갖췄는데 출전하지 못하고 있어 많이 아쉽다"고 했다.
결국 실력과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남태희는 "나라를 대표한 다는 것,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건 누구나 얻을 수 없는 영예"라며 "그만큼 책임을 느껴야 하는 자리다. 지금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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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런던올림픽 선배가 2017년 U-20 월드컵 후배들에게
2017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이 한창이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FIFA 주관대회. 분위기가 좋다. 20일 첫 상대 기니를 3대0으로 완파했다. 남태희가 흐뭇하게 웃었다. "한 두 명이 아니라 전부 다 잘 하던데요? 체격도 그렇고 기술도 그렇고 우리 때 선수들보다 더 공 잘 차는 거 같아요!"
남태희는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주역이다. 그래서 큰 대회 중압감을 잘 알고 있다.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남태희는 "후배들의 기량은 충분하다. 하지만 관건은 체력 관리"라며 "나도 올림픽 등 대회를 치르면서 체력적 부분에서 많이 힘들었다. 매 경기가 중요하니 완급 조절을 할 수도 없고 계속 이동을 하며 경기해야 한다. 체력 회복을 효과적으로 잘 한다면 분명 좋은 성적 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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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팀 동료 루이스(왼쪽)의 딸 생일 잔치에 초대 받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소리아, 카림, 남태희 그리고 타바타. 사진제공=남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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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희는 지난해 12월 레퀴야 입단 후 통산 63호골을 넣었다. 이는 레퀴야 구단 역사상 최다골. 남태희가 63호골을 기념하는 유니폼을 입고 동료들과 기념 파티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남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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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희를 지켜봐 주세요"
프랑스에서 눈물 흘렸던 19세 소년은 중동 최고의 선수가 됐다. 그의 나이는 이제 26세다. 아직 젊다.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나는 현재에 집중한다."
남태희는 "지금은 월드컵에만 집중한다. 국민들이 많이 실망하신 상황이다. 내가 더 잘 해서 미력하나마 팀에 보탬이 되고 국민들께 웃음을 드리고 싶다"며 "한국 축구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그런데 남태희는 팬들께 한 마디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저와 대표팀을 향한 비판이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대표라면 잘 해야 되고, 잘 하는 선수라면 더 좋은 리그, 더 좋은 팀에서 뛰어야죠. 저도 느끼고 있고 대표팀 다른 선수들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는 지금에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현재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할 뿐이죠. 더 좋은 모습 꼭 보여드릴테니 '선수 남태희' 조금 더 지켜봐 주세요."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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