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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순위싸움이 '박싱데이(크리스마스 다음날로 영연방 국가들만 지정한 공휴일. EPL 박싱데이 주간은 일주일에 세경기를 치르는 살인적인 일정으로 악명이 높다)' 기간에 결정된다면 K리그에는 '서머리그'가 있다.
하지만 올 시즌 상황은 조금 다르다. 7~8월에만 벌써 3번이나 패했다. 전북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8시즌 동안 7,8월에 3패를 기록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물론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올 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출전이 불가능해지면서 예년에 비해 스쿼드를 두텁게 구축하지 못했다. 측면과 같은 일부 포지션은 선수가 넉넉지 않아 부상, 징계가 나올 경우 변칙적인 전술 변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사실 전북의 현재 페이스는 오히려 경이로울 정도다.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워낙 두터운 스쿼드로 여름승부를 압도해온 전북이라 상대적으로 올 여름 3패가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눈에 띄는 전북의 3패는 선두 경쟁 중인 서울, 제주, 울산에게 허용한 기록이다.
제주와 약진도 눈여겨 볼만 하다. 제주는 매년 여름에 발목을 잡혔다. K리그 유일한 섬팀인 제주는 장거리 이동과 잦은 비행으로 인한 피로 누적으로 시즌 초반에 벌어놓은 승점을 여름에 까먹었다. 2013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7~8월 성적만 살펴보면 늘 7~8위권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한층 나아진 모습이다. 최근 4경기 무패를 포함해 7~8월에만 승점 14점을 얻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 후유증에 시달리던 제주는 오히려 여름을 터닝포인트로 삼아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여름에 강했던 서울은 예년 그대로다. 매 시즌 여름만 되면 좋아지던 서울은 올 시즌에도 여름 반전에 성공했다. '여름사나이' 데얀을 앞세운 서울은 7~8월에만 승점 16점을 쓸어담았다. 순위도 5위까지 올라섰다. 예년 같지만은 않은 전북과 2위권의 선전, 여기에 제주와 서울이 여름 승부수를 띄우며 상위권 구도가 더욱 흥미로워졌다. 마지막까지 치열한 우승경쟁이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과연 '서머리그'의 성적표는 최종 성적과 어떻게 연결될까. 낯선듯 달라진 클래식 여름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