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돌풍'은 없다. '도쿄 변방 구단' 마치다 젤비아(일본)가 2025~2026시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서 깜짝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한 데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89년 창단한 마치다는 오랜기간 아마추어 리그를 누비는 '동네클럽'이었지만, 두 번의 큰 변화를 거쳐 J1리그를 대표하는 클럽으로 거듭났다. 2018년, 일본의 최대 온라인 광고 대행사인 '사이버에이전트'가 11억4800만엔(약 107억원)에 마치다 구단을 인수했다. 당시 마치다는 2018시즌 J2리그 4위를 거두고도 경기장 관중 수용 문제로 1부 승격 자격을 얻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다. J1리그를 누비는 팀은 최소 1만5000석 이상의 홈구장을 보유해야 하지만, 당시 마치다시립경기장의 관중 수용 인원은 1만600명에 불과했다. '사이버에이전트'는 후지타 스스무 CEO가 직접 구단 경영에 뛰어들어 구단 발전 계획을 세우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마치다시립경기장은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2021년 1만5489석을 자랑하는 지금의 경기장(마치단기온스타디움)으로 확장됐다.
마치다는 2022년 10월, J리그 출전 경험, 지도 경험이 전무한 무명의 지도자 구로다 고 감독을 선임했다. 공격적인 전술로 명성을 떨친 란코 포포비치 감독 체제에서 3년 연속 J1리그 승격에 실패한 마치다는 현지에서 "이례적이다"라고 평할 정도의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구로다 감독은 1995년부터 2022년까지 17년간 아오모리 야마다고교를 이끌었다. 2021년 고교 대회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마치다 부임 첫 해인 2023시즌 J2리그 우승으로 구단의 염원인 1부 승격을 일궜다. 단단한 수비와 강한 압박을 통해 1대0 스코어를 추구하는 결과 중심의 실리 축구로 2024시즌 J1리그에서 깜짝 3위를 기록했고, 2025시즌 일왕배 우승을 차지했다. 구단 역사상 첫 트로피였다. 2025~2026시즌 처음으로 아시아 무대에 나선 마치다는 리그 스테이지 동부 권역에서 깜짝 1위를 차지하더니 16강부터 준결승까지 강원FC(한국), 알 이티하드(사우디아라비아), 샤밥 알 아흘리(아랍에미리트)를 똑같이 1대0으로 꺾고 결승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지난 4월26일 알 아흘리(사우디)와의 결승전에선 연장승부 끝에 0대1로 패하며 비록 우승컵은 들지 못했지만, 연장전반 6분 페라스 알브리칸에게 결승골을 내주기 전까지 90분 이상 개인기가 뛰어난 외국인 선수를 보유한 알 아흘리 공격진을 꽁꽁 묶었다. 마치다의 돌풍은 아시아 전역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구로다 감독은 선수 및 코치를 향한 상습적 폭언으로 지난해 징계를 받는 등 구설에 오르기도 했으나, 지난 3년간 마치다를 가파르게 성장시켰단 점에서 '신흥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거친 언변과 경기 몰입도는 광주FC 사령탑 시절 이정효 감독을 빼닮았다. 마치다는 비록 ACLE 결승에서 패하긴 했으나, 2026년 J1 백년구상 리그에서도 최근 3연승을 질주하며 동부 권역 3위에 올랐다.
마치다의 행보는 아시아 대회 부진, 관중수 하락 등 다양한 면에서 침체됐다는 평가를 받는 K리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K리그 팀이 마지막으로 ACLE 결승에 오른 건 2021년 포항 스틸러스, 마지막 우승은 2020년 울산 HD다. 2025~2026시즌 FC서울과 강원이 나란히 16강에서 일본팀에 패해 조기 탈락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불과 3년 전까지 2부를 누비던 일본팀이 아시아 정상을 노린 배경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K리그에서 마치다와 같은 팀을 배출되려면 우선 든든한 구단주가 필요하다. J리그는 마치다 외에도 비셀 고베(라쿠텐), 가시마 앤틀러스(메르카리), FC도쿄(믹시)가 줄줄이 IT 기업에 인수됐다. 고베의 성공을 지켜본 기업들이 너도나도 축구단 경영에 뛰어들었단 분석이다. 이들은 새로운 노하우로 직접 구단 경영에 참여해 클럽 강화에 힘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IT기업의 핵심은 '혁신'이다. '사이버에이전트'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마치다는 현재 1년 운영비로 34억엔(약 320억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독의 역량에만 기대지 않고, 적재적소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윙어 나상호, 소마 유키, 공격수 후지오 쇼타, 센터백 겐 쇼지, 골키퍼 다니 고세이 등을 영입해 전력을 강화했다. 마치다의 홈 관중수는 2022년 평균 3243명에서 2024년 1만7610명으로 2년만에 5배 이상 점프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변방팀은 당당한 J1리그 일원으로 자리매김했다.
'K-마치다'가 탄생할 뻔한 적은 있다. 이정효 감독이 이끌던 광주가 2022년 1부 승격, 2023년 K리그1 3위, 2024~2025시즌 K리그 시도민구단 최초 ACLE 8강 진출의 기적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마치다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광주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연속성을 기대할 수 없었다. 마치다가 고공행진하는 사이 광주는 추락을 거듭했다. 광주는 지난해 연대기여금 미납 및 재정건전화 미준수 문제를 일으키며 K리그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재정건전화 1호 위반 구단의 오명을 쓴 채 올 시즌 전반기엔 선수 영입 등록 금지 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이 감독과 결별한 광주는 제한적인 스쿼드로 현재 8연패 늪에 빠져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아시아 최강' 알힐랄과 맞서 싸우던 장면은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K리그는 IT기업을 비롯해 대기업이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종목이다. 2015년 서울 이랜드를 끝으로 새로 창단한 기업구단이 전무하다. 2020년 시민구단이었던 대전시티즌이 하나금융그룹에 인수돼 기업구단인 대전하나시티즌으로 탈바꿈했다. 변화의 기폭제가 되리라 기대를 모았지만, 제2의 대전하나시티즌은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의 영향을 받는 시도민구단만이 프로 데뷔를 위해 줄을 서고 있다. 팀수는 2026년 기준으로 1, 2부 도합 29개로 늘어났지만, 시도민구단만 18개다. 올해 K3리그 소속 FC강릉, 대전코레일FC, FC목포, 시흥시민축구단, 춘천시민축구단 등 5개 구단이 프로 진출 절차를 밟고 있다.
마치다의 구로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배울 게 있다. 구로다 감독은 '전술엔 정답이 없다'라는 걸 몸소 보여줬다.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마치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포메이션을 4-4-2에서 3-1-4-2로, 강한 전방 압박 전술에서 미들 블록을 두껍게 하는 수비 전술로, 오세훈(현 시미즈)의 높이를 이용한 롱볼 방식에서 빌드업 위주의 공격 전술로 과감하게 변화를 꾀했다. 지향점은 '선제골을 지켜 1대0으로 승리할 수 있는 팀'이다. 마치다는 감독의 확고한 철학이 구단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후지타 CEO는 2024년 정례 회의에서 "마치다의 성공은 구로다 감독 덕분"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K리그에선 불과 몇 달 전까지 고교 대회를 누빈 지도자를 선임하는 케이스는 쉽게 상상할 수 없다. '프로 경력을 지닌 P급 지도자'를 나눠쓰고 돌려쓰는 추세다. 지난달 17일 '일신상의 이유'로 개막 후 6경기만에 충남아산과 갈라선 임관식 감독은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같은 리그의 전남 드래곤즈 지휘봉을 잡았다. 전남은 성적부진으로 결별한 박동혁 전 감독을 구단 어드바이저로 보직 변경하는 이해할 수 없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K-지도자는 실패를 해도 몇 달, 1~2년 쉬면 또 쉽게 기회를 얻는다. 정치인들은 '한-일월드컵 4강 멤버', '국가대표 출신', 'K리그 지도자'라는 이름값에 현혹된다. 프로 선수 경력이 없는 지도자가 기회를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좋은 지도자는 죽어가는 팀을 살릴 수 있을뿐 아니라 마치다의 사례처럼 구단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K리그가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 추세라는 지적이 나오는 요즈음 무엇보다 지도자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