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1986년 6월 2일(한국시각 6월 3일) 멕시코시티의 에스타디오 우니베르시타리오.
32년 만에 월드컵 무대를 밟은 한국 축구, 붉은 유니폼을 입고 한낮 태양 아래 도열한 태극 전사들의 표정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그들의 상대는 다름 아닌 대회 우승 후보이자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를 앞세운 아르헨티나였다.
당시 아르헨티나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ESPN 스페인어판은 '당시 멕시코에 도착한 아르헨티나는 다니엘 파사렐라 감독의 리더십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 대회 직전 마라도나에 주장 완장을 넘긴 결정 역시 선수단을 흔들었다'고 소개했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었던 한국 축구가 아르헨티나전에 들고 나온 노림수는 마라도나 집중마크였다. '진돗개' 허정무에게 전담 마크를 지시하고, 역습으로 기회를 노린다는 게 김정남 감독의 전략이었다. 당시 한국 축구의 최대 강점으로 여겨졌던 투지를 앞세운다면 세계를 놀라게 할 이변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1982년 멕시코에서 펼쳐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쓴 '멕시코 4강 신화'의 여운이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세계 축구와 아르헨티나에 대해 무지했고, 마라도나는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경기 시작 6분 만에 마라도나가 프리킥으로 호르헤 발다노에게 선제골을 배달했다. 마라도나는 12분 뒤 오스카 루게리의 헤딩골을 도운 데 이어, 후반 27분에는 측면 크로스로 루게리의 두 번째 골까지 만들면서 '도움 해트트릭'을 작성했다.
ESPN은 '아르헨티나는 끈질긴 상대팀(한국)을 만났고, 그들은 마라도나에 접근할 때마다 파울을 범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며 '하지만 마라도나는 역사상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플레이를 하기 위해 멕시코에 왔다는 걸 분명히 보여줬다'고 평했다. 이어 '이 승리로 아르헨티나는 안정을 찾았고, 라 알비셀레스테(흰색-하늘색, 아르헨티나 대표팀 애칭)의 월드컵 두 번째 우승에 대한 팬들의 열망에 불을 지폈다'고 덧붙였다.
ESPN의 지적대로 아르헨티나전에서 한국의 거친 플레이는 외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마라도나는 경기 후 "한국이 너무 거칠게 플레이했다. 특히 17번(허정무)이 심했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마라도나는 감독으로 다시 나선 2010 남아공 대회 한국전을 앞두고 사령탑으로 재회한 허정무를 두고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고 앙금을 드러내기도. 이에 대해 허정무 감독은 "공을 걷어내려가 그런 것이지 일부러 다치게 하려 한 게 아니다. 정말 다치게 하려 했다면 심판이 퇴장을 줬을 것"이라면서도 "다시 (선수로 돌아가 아르헨티나를) 만나더라도 똑같이 수비할 것"이라고 승부욕을 드러낸 바 있다.
한국전 승리로 기세를 탄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에서 2승1무로 1위를 차지하며 16강에 올랐고,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는 마라도나가 역사에 회자되는 '신의 손'에 이어 신들린 드리블과 개인기로 득점하면서 포클랜드 전쟁 패배의 분풀이를 제대로 했다. 결국 결승에서 서독을 꺾고 두 번째 월드컵 우승의 환희를 맛봤다. 한국은 불가리아와 1대1로 비긴 뒤 이탈리아와 혈투 끝에 2대3으로 져 1무2패로 조별리그 탈락의 아쉬운 결말을 맛봤다.
아르헨티나전이 한국 축구에 눈물만 준 것은 아니었다. 박창선이 아크 정면에서 찬 회심의 오른발슛이 아르헨티나 골대 상단에 꽂히면서 사상 첫 월드컵 본선 득점의 역사를 썼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이자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출발점이었던 것도 분명하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