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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란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는 불교 화엄경의 중심사상이다.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문제일 뿐 우승도 따논 당상 같았다. 하지만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만은 않았다. 루키 시즌이던 2015년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결승에서 전인지(23)에게 신인다운 패기로 맞서며 뒷심을 발휘했으나 단 한 홀 차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후 지한솔에게 우승은 어느덧 눈 앞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신기루가 돼버렸다. 지난 해 초반 달랏 챔피언십과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에 도전했지만 최종 결과는 공동 2위였다.
2년 간 우승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서서히 마음에 스며들었다. 슬슬 부담이 됐다. 마치 아홉수에 걸린 선수가 슬럼프를 겪듯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마음의 짐은 올시즌 내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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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대우를 해준 소속팀 호반건설과의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이라 더욱 그랬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 하던 지한솔은 계약금과 재계약 이야기를 하다 그만 목이 메었다. "계약금 많이 받긴 했죠. 재계약 단계여서 올해… (목이 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부담이 많았어요."
또래 다른 선수들이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지한솔은 동갑내기 친구 오지현은 2년 전 지한솔과 같은 ADT캡스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한 뒤 지난해 비씨카드·한경 레이디스컵에서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스타덤에 올랐다. "(오)지현이도 이 대회에서 첫 우승 했잖아요. 저도 내년에는 메이저 우승 해야죠. 똑같이 따라서… 하하" 이런 말을 스스럼 없이 하는건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는 방증이다.
절정의 3년 차 부담감, 성적에도 반영됐다. 우승 전까지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에서 3위가 최고 성적이었다. 이번 대회 전까지만 보면 데뷔 후 가장 좋지 않았던 시즌. "전체적으로 실망을 많이 했어요. 스스로 불만이 많았던 거 같아요, 퍼터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와도 넣지를 못했죠."
죽어라 하고 연습도 해봤다. 하지만 잘 하면 잘 할수록 점점 더 꼬여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지한솔은 조급하게 앞으로만 향하던 발걸음을 문득 멈춰 세웠다. 너무 잘 하려는 마음을 툭 던져버렸다. "원래 제가 마음대로 잘 안되면 죽어라 연습하는 스타일인데요. 연습에 너무 몰두하지 않고 영화도 보고 그냥 하고 싶은 것도 하면서 그런 시간들을 보냈던 거 같아요. 마음이 좀 편안해졌죠. 그러다보니 이번 대회부터 좀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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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 언니랑 시소전을 벌일 때 긴장은 됐는데 제 샷이 괜찮아 자신있게 했던거 같아요. 14번홀에서 한타 뒤지고 난 뒤에 오히려 따라잡는게 마음이 더 편해지더라구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기보다는 하루가 더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편했죠. "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컨트롤 하니 골프가 즐거워졌다. 학수고대 하던 첫 우승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그런데 지한솔은 어떻게 마지막 대회를 앞두고 마음을 바꿀 수 있게 된걸까? "계기가 있었죠. 그런데 그건 저만 아는 비밀이에요." 궁금했지만 더 이상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지나간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가올 것들, 마음의 조화를 깨달은 지한솔의 내년이 더욱 기대된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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