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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골프칠 때 타이틀·PXG만 입어? 골프웨어 시장 '춘추전국시대'

이정혁 기자

기사입력 2021-09-14 08:11 | 최종수정 2021-09-15 09:18


◇'골프웨어 춘추전국시대'에 맞게 다양한 골프웨어 스타일이 유행을 끌면서 최근에는 집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캐주얼한 제품을 내세우는 브랜드들이 많아지고 있다. 사진은 후드티와 조거팬츠 제품. 사진제공=말본골프

국내 골프웨어 시장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기존 타이틀리스트, PXG 등 '정통 브랜드'들이 지배해오던 시장에서 지포어, 페어라이어, 어뉴골프 등 신생 브랜드들이 '신흥 강자'로 떠오르면서 골프웨어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

코로나19로 골프웨어업계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가운데 기능성과 스타일은 기본, 브랜딩 능력까지 갖춘 신규 브랜드들이 무서운 속도로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한 골프의류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골프 좀 친다하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유명 브랜드는 많지 않았다"며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브랜드들이 만들어지면서, 골프 시장의 주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는 경제력 있는 30~40대 여성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정통 브랜드들은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르꼬끄 골프 '르 그리디어스' 콜렉션. 사진제공=데상트코리아
▶아직도 타이틀·PXG만 입나요? 골린이(골프+어린이) 눈에는 지포어·페어라이어가 더 매력적

최근 유통업계와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골프웨어 시장 규모는 5조1000억원대로 전년(4조6000억원대)보다 10% 이상 성장했다. 2022년에는 6조3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올 상반기 롯데백화점의 골프웨어 부문 매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40%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백화점은 61%, 신세계백화점은 57% 매출이 뛰었다. 2019년과 지난해 상반기엔 1~12%가량의 증가율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골프 시장을 향한 국내 패션 업체들의 투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통 골프웨어 브랜드 뿐만 아니라 중대형 패션 브랜드, 개인 디자이너들까지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패션업계에 따르면 국내 골프의류 브랜드는 150여 개에 달한다. 이 중 올 한 해 론칭한 골프웨어 브랜드만 20여 개에 이르고 온라인 시장을 겨냥한 소형 브랜드들까지 포함하면 배가 넘는다. 내년 신규 브랜드 론칭을 확정한 업체도 10여 개에 달한다.

코로나19 이후 골프 인구의 급증에 따라 골퍼들의 의류에 대한 눈높이가 다양해지면서 트렌드도 급변하고 있다. 골퍼들에겐 골프를 '얼마나 잘 치느냐'와 함께 '어떤 옷을 입고 예쁘고 멋지게' 치느냐가 매우 중요해진 만큼, 최근에는 골프웨어의 디자인이 구매로 이어지는 핵심 요소다.


이런 변화는 골프웨어 신흥 강자들의 성장세를 가속화 하고 있다. 타이틀리스트, PXG 등 정통 골프 브랜드가 여전히 호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신규 브랜드들은 놀라운 성적표로 타이틀리스트 등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지포어 2021 F/W 시즌 콜렉션. 사진제공=코오롱FnC
지포어의 경우 신세계 강남점(2월 22일 입점)에서 월평균 5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PXG, 타이틀리스트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론칭한 어뉴골프는 지난해 10개 매장을 오픈한데 이어 올 상반기에만 13개점을 추가로 열었다. 총 23개점 중 14개점이 백화점으로 더현대서울, 신세계 센텀시티 등 주요 백화점에 문을 열었다.

이밖에 올해 백화점 유통에 페어라이어, 말본골프, 혼가먼트, 어메이징크리 등이 새롭게 진출하며 세대교체를 이끌고 있다.


◇지포어 2021 F/W 시즌 콜렉션. 사진제공=코오롱FnC
▶'브랜드 명 크게 적힌 제품은 촌스러워요!' 골프웨어의 세대교체, 인플루언서·동대문 시스템이 가속화

이처럼 신규 골프웨어가 급성장한데는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을 빼 놓을 수 없다.

유명 골프선수들이 대회나 방송에 입고 나오는 골프웨어가 인기를 끌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인스타그래머블한 매력을 뽐내는 인플루언서들이 입은 골프웨어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정통 브랜드들이 주로 기능성을 강조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는 반면 신규 브랜드들은 예쁜 옷을 입고 싶어하는 골린이들의 관심을 제대로 저격했다.

지포어의 경우 초반에는 신발과 장갑 등 용품 부문에서 확실한 디자인 차별화로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이후 과감한 어패럴 디자인과 스타일링으로 소비의 범위를 확대시켰다. 또 올해부터 본격 유통을 확장 중인 페어라이어는 여성이 강세인 브랜드로, '클래식 골프웨어'라는 독보적인 콘셉트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골프공 모양의 로고로 포인트를 준 말본골프의 스웨터 제품. 사진제공=말본골프
LA기반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말본골프는 최근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 골프와 콜라보레이션한 골프화 한정판을 출시하는 등 획일화된 골프웨어의 정형성을 탈피해 젊은 골퍼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정통 골프웨어 브랜드들이 생산라인이나 디자인에 급격한 변화를 주기 어려운 것과 달리, 신생 개인 디자이너 골프웨어들은 동대문 시장을 기반으로 트렌드에 맞춘 단기 상품을 빠르게 생산 및 수정해 선보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실제로 기존 골프웨어 브랜드들은 최근 골프복 시장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신규 브랜드에 비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때 타이틀리스트의 스타일이 골프복의 정석으로 통하기도 했으나, 브랜드 명이 큰 글자로 적혀있는 제품들은 이제 촌스럽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있었다. 최근 '골린이'가 된 직장인 최은경씨(28)는 "브랜드 명이 크게 써져있는 제품들은 왠지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스타일 같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로고 등으로 포인트를 준 옷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르꼬끄 골프 '르 그리디어스' 콜렉션. 사진제공=데상트코리아
▶명품 에·루·샤도 골프복을? 일각에선 시장 포화 경고도

명품과 중저가 브랜드가 '사이좋게' 각자 영역을 구축하며, 단골 고객을 확보하던 시절은 끝났다. 가격대도 다양해지고, 유행 스타일도 딱 하나로 찍어 말하기 어렵다. 레깅스와 초미니 스커트 골프복이 유행하는 동시에, 홈웨어에 가까운 트레이닝복을 내세운 브랜드들도 있다. 한마디로 '골프웨어 춘추전국시대'다.

패션업계 또한 더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일반 패션 브랜드에서 골프웨어 라인을 확장하거나 기존 골프웨어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업체가 급증하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여성복 구호는 브랜드 최초로 골프웨어 콜렉션을 론칭했다. 현대백화점그룹 한섬은 올 상반기에 타미힐피거 골프라인과 영캐주얼 여성복 SJYP 골프라인을 잇따라 선보였다.

LF의 닥스골프는 영 골퍼를 위한 닥스 런던을 론칭했으며, 헤지스골프는 최근 브랜드 리뉴얼에 나섰다. 지포어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코오롱FnC는 최근에는 온라인 전용 브랜드 골든베어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내년에도 신규 브랜드 출시는 계속된다. 아이디룩은 프랑스 컨템포러리 브랜드 아페쎄(A.P.C) 골프웨어를 내년 상반기 론칭하고 K2코리아그룹은 세계 3대 명품 수제 퍼터인 '피레티' 어패럴을 내년 초 출시한다. 미국 골프가방 전문 브랜드 '베셀' 유통을 시작한 크리스에프앤씨도 의류 사업을 준비 중이다.

여기에 3대 명품 브랜드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도 골프웨어 시장에 본격적인 진출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골프 의류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로 생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7~8년 전 아웃도어시장처럼 급성장했다가 순식간에 하락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것. 특히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해외 여행길이 열리면 골프 산업 규모가 줄어들며 골프의류 수요 역시 급감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우진 어반에이트 골프패션 대표는 "벌써부터 애매한 가격대, 어정쩡한 콘셉트의 중급 브랜드들은 매출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수시로 바뀌는 골퍼들의 니즈를 빠르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브랜드만이 골프웨어 시장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이미선 기자 alread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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