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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虎死留皮人死留名)'는 속담이 있다. 사람에게 '이름'이 단순한 식별 표기가 아니라 삶의 흔적이자 명예임을 말해준다. 이 속담은 경주마들에게도 해당된다. 레이스를 통해 이름으로 기억되고, 기록된다. 경주마 생활을 하다 한국전쟁에서 맹활약한 '레클리스(Reckless)'처럼 영웅으로 남기도 한다.
경주마 이름에는 여러 제한이 있다. 유명 인사나 정치인 등 널리 알려진 공인의 이름(별호 포함)은 물론, 회사명, 상품명 등 영리를 위한 광고 선전을 의미하거나 공공질서, 미풍양속에 반하는 마필 이름은 사용할 수 없다. 실제로 이러한 기준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되고 있다. 남아공에서는 '프레지던트 트럼프(President Trump)'라는 이름을 가진 경주마가 반복적인 행동 문제를 일으킴은 물론, 정치적 논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규제 기관이 직접 마명을 변경을 요청한 적이 있다. 이처럼 경주마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사회적 영향력과 공공의 인식까지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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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마 출전표를 들여다보면, 문득 시선을 멈추게 하는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에펠탑'이다. 이름만 들어도 프랑스의 상징이자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유명한 건축물이 떠오른다. 하지만 렛츠런파크 서울에 있는 '에펠탑'은 이와 다르다. '에펠탑'이라는 이름을 가진 경주마가 실제로 경주로를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에펠탑'은 단순히 몸집이 큰 존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약 500㎏에 달하는 체중과 사람보다 큰 덩치, 그리고 탄탄한 근육은 물론, 자신의 처음 몸값의 24배나 되는 상금을 거머쥐는 등 실력과 명성을 겸비한 진정한 명품 '에펠탑'이다.
독특하고 유쾌한 이름을 가진 경주마들은 경마장 안에서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기억 속에도 오랫동안 남게 된다. 경주로 위에 서 있는 건 말 한 마리일지라도, 그 이름 하나에 담긴 상상력은 경마장을 넘어 어디까지든 달릴 수 있다. 언젠가 파리에서도 "에펠탑이 뛴다"는 소식이 들려올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