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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전담수사팀 꾸렸지만 주변 도로 CCTV 영상 보관기한 만료
경찰은 살인범 김모(50대)씨가 실종자의 전 연인으로, 해를 가했을 수 있다는 유족들의 초기 진술을 확보하고도, 정작 김씨를 불러 조사한 것은 실종 3주가 지나서였다.
게다가 사건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경찰이 전담수사팀을 꾸린 시점에는 도로 CCTV 영상 보관기한이 이미 만료돼 핵심단서가 될 실종자 차량의 행적이 미궁에 빠지기도 했다.
2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에 A씨의 실종 신고가 처음 접수된 건 지난달 16일이었다.
당시 A씨의 자녀는 "혼자 사는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조사 결과 A씨는 신고 이틀 전인 지난달 14일 오후 6시 10분께 청주 옥산면의 회사에서 SUV를 몰고 퇴근한 뒤 행방불명된 것으로 확인됐다.
A씨의 차량은 실종 당일 오후 11시 30분께 진천군 모처에서 행적이 끊겼고, 휴대전화도 꺼진 상태였다.
A씨 가족들은 초기 경찰 조사에서 "A씨가 전 연인 김씨와 자주 다퉜다. 김씨가 해를 가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A씨가 극단 선택을 했을 만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A씨의 실종 사건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범행 가능성을 우려한 김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건 실종신고가 접수된 지 무려 3주나 지난 뒤였다.
김씨는 실종 당일 A씨 주변 인물 가운데 유일하게 알리바이가 없었다.
그는 당일 저녁 자신이 운영하는 진천 소재 폐기물 업체에서 퇴근한 뒤 이튿날 오전 5시가 넘어서야 귀가했고, 10분 만에 다시 집을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미심쩍은 행적에 대해 그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얼버무렸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경찰은 뒤늦게 김씨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을 했고, 그 결과 사전에 도로 CCTV 위치를 검색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경찰은 A씨가 실종된 지 약 한 달 만에 부랴부랴 전담수사팀을 꾸렸지만,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A씨 차량의 동선을 추적했지만, 너무 지체한 탓에 일대 도로 CCTV 등의 영상보관 기한이 만료된 것이었다.
결국 수사팀은 확보할 수 있는 일대 도로 CCTV 영상을 모두 분석해 A씨 차량과 같은 차종의 SUV를 걸러내고, 그 행적을 좇았다.
이를 통해 실종 이튿날인 지난달 15일 오전 3시 30분께 청주 외하동의 한 도로에서 A씨 차량의 모습을 추가로 포착했지만 더 이상의 행적은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자 수사팀 내부에서는 이 사건이 미제로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의 행적에 의문점이 많았지만, 무작정 검거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A씨 차량의 행적도 묘연하고, 범죄 가능성을 단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김씨를 검거했다간 금새 풀어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수색 범위를 확대하면서 경찰 수사에 활기가 띠기 시작했다.
지난 24일 김씨 거래처인 진천의 한 업체에서 무려 실종 40일 만에 문제의 SUV가 발견된 것이다.
경찰은 김씨가 이 차량을 은닉한 것으로 보고 추적에 나섰고, 이틀 뒤인 26일 김씨가 SUV를 몰고 이동하는 장면을 포착해 당일 그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SUV 내에서 혈흔과 인체조직이 발견된 점을 토대로 김씨를 추궁했고, 그는 결국 범행 일체를 시인했다.
경찰은 지난 27일 김씨가 시신 유기 장소로 지목한 음성의 한 거래처 폐수처리조에서 마대에 담긴 A씨의 시신을 수습했다. A씨 실종사건이 접수된 지 44일 만이다.
앞서 경찰은 김씨가 A씨 실종 직후 수일에 걸쳐 해당 업체를 방문한 정황을 파악했으나, 단순히 거래처를 방문한 것으로 보고 범행 관련성을 크게 의심하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김씨가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고 시신 유기 장소를 진술하지 않았다면 '시신 없는 살인 사건'으로 남았을 가능성도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편 경찰은 구속을 앞두고 있는 김씨를 상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추가 조사 중이다.
chase_arete@yna.co.kr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