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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식을 만드는 셰프를 꿈꾸지 않았다. 그저 음식이 구워내는 질 좋은 화덕, 바로 그 화덕을 만드는 기술자라 했다. 스포트라이트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없더라도 팀이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길 원했다. 좋은 화덕 기술자 그게 바로 감독의 역할이라 강조하는 남자. 김상우 우리카드 감독(42)을 만났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우리카드는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9~2010시즌 V리그에 참가했다. 성적 부진과 선수단 보이콧 등 바람잘 날이 없었다. 2011년에는 모기업인 우리캐피탈이 팀운영에서 손을 뗐다. 한국배구연맹(KOVO)의 관리 구단이 되기도 했다. 제대로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선수들은 늘 해체 위기에 웅크려야만 했다. 2013년 우리카드가 팀을 인수했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5년 3월 말 우리카드는 운영에서 손을 뗀다고 발표했다. 비난 여론이 일었다. 결국 3일 후 다시 팀을 운영하겠다고 번복했다. 우여곡절 끝에 팀은 살아남았지만 선수들의 상처는 컸다.
변화 덕분에 우리카드는 2015년 KOVO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김 감독은 "대회를 치르면서 선수들이 바뀌기 시작하더라. 자신감이 생기니까 무섭게 변했다. 선수들 모두가 일궈낸 우승"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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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이 우리카드를 맡은 이유가 궁금했다. 김 감독은 스타플레이어였다. 삼성화재에서 김세진 신진식 석진욱 최태웅 등과 함께 무적 시대를 열었다. 2007년 은퇴했다. 지도자는 아픔의 연속이었다. 2008년 LIG손해보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2월 감독대행, 2010년 4월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다. 그러나 김 감독의 첫 도전은 불과 2년을 채우지 못하고 2011년 9월 끝나버렸다. 이후 해설위원과 모교인 성균관대 감독직을 맡았다. 러브콜도 많이 날아들었다. 남자팀들 사령탑에 결원이 생길 때마다 김 감독의 이름이 올랐다. 여자팀에서도 러브콜을 보냈다. 고심 끝에 '최약체' 우리카드를 선택했다.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과감하게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그는 "더 나은 발전을 위한 것이었다. 어차피 보장된 것은 없다. 잘되거나 안되거나 50대50이다.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을 잘하게 만드는' 감독
올 시즌 V리그는 젊은 감독들의 세상이다.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은 2연패에 도전한다. 전통의 명가 현대캐피탈은 최태웅 감독을 선임했다. 신치용 감독이 단장으로 올라간 삼성화재는 임도헌 감독을 선임했다. KB손해보험도 젊은 피 강성형 감독을 뽑았다. 대한항공은 김종민 감독이 계속 맡고 있다.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이 최고 연장자다. 젊은 감독들 사이에서 경쟁과 비교를 피할 수 없다.
김 감독은 "그런 비교들에 신경이 쓰이기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배구는 변수가 적은 스포츠"라며 "감독이 경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적다. 경기에 나서기 전 훈련과 관리를 통해 '선수들이 잘하게끔 하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그리고 무엇보다도 팀이 발전을 위한 선순환을 할 수 있도록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음식에는 셰프도 중요하지만 좋은 화덕이 필수다. 셰프는 떠나면 그만이지만 좋은 화덕이 있으면 좋은 음식이 나올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런 화덕을 만들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인천=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