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 팀의 승리를 지키고 경기를 끝내는 게 마무리 투수의 역할이다. 그 순간은 늘 긴박감이 흐른다. 지고 있는 상대 타자들은 마지막 역전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집중력과 투지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채 나서기 때문이다. 그 강렬한 압박감을 이겨내야 하는 게 마무리 투수의 숙명이다.
그러다보니 마무리 투수는 언제나 '실패'와 등을 맞대고 있다. 조금만 '아차'하는 순간, 등 뒤의 실패가 어깨를 타고 넘어온다. 그걸 '블론 세이브'라 부른다. 마무리 투수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지만, 또 완전히 떼어낼 수 없는 그림자와도 같다. 전 세계 어느 리그, 어떤 팀의 마무리 투수라도 마찬가지다.
한화 이글스 마무리 투수 정우람이 또 흔들렸다. 10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경기 때 1-0으로 앞선 9회초 세이브를 하러 나왔다가 동점타를 맞아 블론 세이브를 또 하나 기록하고 말았다. 올 시즌 벌써 4번째 블론세이브다. 리그 전체에서 넥센 히어로즈 마무리 투수 김세현과 나란히 최다 블론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처음 마운드에 오를 때부터 제구력이 흔들렸고 구위도 좋지 않았다. 지난 8일 대전 KIA전에서는 1이닝 퍼펙트로 세이브를 따냈지만, 이틀 뒤 LG전에서는 그 모습이 나오지 않았다. 선두타자 채은성에게 2구 만에 중전안타를 맞았고, 희생번트 이후 정성훈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결국 1사 1, 2루에서 유강남에게 동점 적시타를 얻어맞았다. 정우람은 분명 흔들렸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우람이 잠시 흔들렸을 지라도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는 점이다. 정우람은 이후 오지환을 삼진, 박용택을 3루수 뜬공으로 잡고 9회를 마쳤다. 연장 10회초에도 등판해 세 타자(임 훈, 이병규, 히메네스)를 11구만에 삼진 2개를 곁들여 모조리 아웃시켰다. 이때의 정우람은 9회 실점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고 결국 한화가 연장 10회말 정근우의 끝내기 안타를 앞세워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2이닝 2안타 1볼넷 1실점을 기록한 정우람은 세이브 추가에는 실패했지만, 시즌 3승(1패)째를 운좋게 수확했다.
한화 선수들은 정우람의 블론 세이브보다 그 이후에 보여준 모습에 더욱 강한 신뢰를 느끼는 듯 하다. 블론세이브를 비난하지 않았다. 대신 그 이후 금세 안정감을 되찾으며 추가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마무리 투수의 숙명을 잘 알고 있는데다 정우람이 최선을 다 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끝내기 결승타를 친 정근우의 소감에서 그런 한화 선수들의 신뢰감이 드러난다. 정근우는 "정우람이 추가실점을 하지 않아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경기에 이겼기 때문에 더 좋은 결과가 나올거라 믿는다"는 말을 경기 후 남겼다.
정근우는 올해 한화의 '주장'이다. 그의 말에는 팀 동료 전체의 뜻이 깊이 반영돼 있다. 정근우의 말 마따나 정우람이 비록 블론 세이브는 했어도 이후 추가 실점없이 10회초까지 던져준 건 칭찬받아 마땅하다. 결과적으로 한화의 끝내기 승리의 숨은 원동력이었다. 정우람이 더 많은 실점을 했다면 역전은 꿈꾸기도 어려웠다. 정근우의 칭찬은 그래서 빈말이 아니다. 진심이 담겨 있다.
정우람은 앞으로 또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LG전에서나왔던 것처럼 정우람에 대한 한화 선수들이 믿음은 여전히 굳건할 것이다. 최근 14경기에서 무려 12승을 따낸 힘은 바로 이런 선수들 끼리의 단단한 신뢰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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