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호의 10월 유럽 원정이 한국 축구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채 마감됐다. 러시아(2대4), 모로코(1대3)와의 두 차례 친선 A매치에서 2패. 총 7실점(3골)하며 와르르 무너졌다.
앞으로 한달 후 태극전사들은 다시 모여 11월 A매치 기간에 두 차례 친선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한국 축구 A대표팀은 지난 9월 힘겹게 아시아 최종예선을 통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다. 러시아로 가는 로드맵은 시작됐지만 그 첫 출항인 이번 유럽 원정 친선경기에서 축구팬들의 기대에 턱없이 부족한 경기력과 결과를 냈다. 축구팬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대한축구협회와 A대표팀은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질 것이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처럼 맘껏 실험을 통해 선수를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11월 친선경기에서도 팬들을 실망시킬 경우 A대표팀을 향한 분노의 데시벨이 최고조로 치솟을 수 있다.
A대표팀은 이번 유럽 원정을 전원 해외파로 꾸렸다. 한국 출신으로 공을 가장 잘 찬다는 선수들을 거의 전부 끌어모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신태용 감독은 '승리'와 '실험'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추구했다. '득'과 '실'이 있었다. 2패로 승리의 맛을 보지 못했다. 신태용호 출범 이후 4경기서 2무2패. 이란, 우즈베키스탄과는 비겼고, 이번에 두 경기 모두 졌다. 골키퍼 구성윤을 제외한 22명의 선수를 전부 출전시켜 점검의 시간을 가졌다. 두 경기를 통해 다시 A대표팀에 소집해야 할 선수와 부를 필요가 없은 선수가 가려졌을 수 있다.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이번 유럽 원정 두 경기는 타이틀이 걸리지 않은 친선 평가전이었다. 신태용호가 정상 궤도에 올라있다면 결과 보다는 테스트에 중심을 두는게 맞다. 그러나 현재 우리 A대표팀은 '정상'아닌 '비정상'이라고 봐야 한다. 실험과 동시에 팬들이 납득하고 이해할만한 결과도 필요했다. 변형 스리백과 선수 평가를 위한 실험의 결과는 수치상으로 '실패'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장현수가 중심이 된 변형 스리백은 러시아에 4실점, 모로코에 3실점했다. 모로코전 초반, 2실점 후 변형 스리백을 포기하고 포백 수비로 전환했다. 변형 스리백은 선수들간의 호흡과 손발이 잘 맞아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수비 전형이다. 따라서 태극전사들이 단시간에 완성하기 어렵다. 준비 기간이 짧아서는 결코 잘 해낼 수 없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 신태용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쓰고 싶은 전술과 전략이라도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구현할 수 없다면 그런 비책은 용도폐기하는 게 맞다.
지금은 A대표팀에 준비 과정인 건 맞다. 러시아와 시리아전 같은 졸전을 하더라도 내년 6월 월드컵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도 준비 과정에선 프랑스에 0대5 완패(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를 당하기도 했었다. 그 경기 후 1년 뒤 본선에서 4강 신화를 썼다.
하지만 지금과 15년전 안방서 열린 한-일월드컵을 같이 놓고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당시 히딩크호는 K리그 구단들의 무한 희생으로 맘껏 소집훈련을 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에겐 주어진 시간과 훈련 소집 일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따라서 더 치밀하고 정교한 로드맵을 짜야 한다. 실험의 기회도 적을 뿐더러 선수들의 경기력과 팀 조직력을 끌어올릴 방법도 제한적이다.
이제 신태용 감독에겐 실험의 자유는 줄어들었다. 단적으로 이번 유럽 원정에서와 같은 실험은 얻은 것 보다 잃는 게 더 많다. 졸전이 한두 번이라면 몸에 쓰지만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좋은 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복된다면 패배도 선수들의 몸에 습관 처럼 녹아든다. 그렇기 때문에 축구협회와 A대표팀은 이번 러시아전과 모로코전을 단순히 졌다고 볼 게 아니라 수차례 돌려보면서 그 안을 곱씹어야 한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