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이 떠오르네. 그땐 열정이 뜨거웠지."
KIA 타이거즈 조계현 단장은 의외로 많은 팀을 옮겨 다닌 이력이 있다. 워낙 해태 타이거즈 에이스 이미지가 뚜렷한 프로야구 레전드지만, 현역 막바지 무렵에는 삼성 라이온즈(1998~1999)와 두산 베어스(2000~2001)에서 총 4시즌을 보냈다. 은퇴 후 코치가 되어서도 KIA-삼성-두산-LG를 두루 거친 뒤 다시 2015년 김기태 감독과 함께 KIA로 돌아왔다.
여러 팀을 거치며 겪어 온 우여곡절도 많고, 그러면서 쌓아 온 인연 역시 깊다. 또한 '꽃길'만 걸은 게 아니라 음지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이런 풍부한 경험 덕분인지 조 단장은 낯설 법한 프런트 수장 업무에 무난하게 적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조 단장이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감회어린 눈길을 주는 선수가 있다. 물론 단장으로서 팀의 모든 선수들에게 깊은 관심이 있지만, 이 선수를 볼 때면 특히 눈빛이 아련해진다. 추억이 떠오르는 동시에 그 선수가 과거의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그 선수는 바로 외야수 이영욱(33)이었다.
이영욱은 지난해 11월29일 한기주와의 1대1 트레이드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에서 KIA로 이적했다. 그리고 사흘 뒤 당시 조계현 당시 수석코치는 KIA 단장으로 전격 선임됐다. 때문에 이영욱의 트레이드 과정에 조 단장이 개입한 바는 없다. 그래도 조 단장은 내심 이영욱이 KIA로 오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과거에 각별한 추억이 있기 때문.
때는 2008년. 동국대를 졸업한 이영욱이 2차 6라운드로 삼성에 막 입단했을 시기다. 당시 조 단장은 삼성 코치로 주로 2군에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둘의 만남은 삼성의 2군 훈련장인 경산 볼파크에서 이뤄졌다. 조 단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경산에서 신인 선수들의 훈련을 맡았을 때였다. 그런데 이영욱이 특히 눈에 띄었다. 힘도 좋고, 스피드까지 있었으니까. 공을 치면 타구의 질이 남달랐다."
일찌감치 이영욱의 자질을 알아본 조 단장은 일부러 시간을 내 배팅 볼을 던져주며 조련에 나섰다. 조 단장은 "그때는 내가 아직 40대라서 힘도 좋고, 열정도 뜨거웠을 때였다. 훈련이 끝나면 다른 몇 명과 따로 불러서 내가 배팅 볼을 던지며 특타를 시키곤 했었다"고 회상했다. 조 단장의 집중 조련 덕분인지 이영욱은 입단 2년차에 삼성의 주전급 외야수로 성장했다. 전성기가 시작된 듯 했다.
하지만 이영욱의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11시즌을 마친 뒤 상무에 입대했는데, 제대하고 보니 자리가 없던 것. 배영섭 박해민 등 후배들이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영욱은 긴 슬럼프에 빠진다.
이런 과정을 지켜봐 온 조 단장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선수가 자기 자리를 잃으면 의기소침해지고, 그럴수록 경기력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지금 이영욱이 어떤 상태인지 잘 이해한다. 마치 불 꺼진 전구 같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조 단장은 "이번 캠프에서 이영욱이 안 좋은 기억을 떨쳐내고 자신감만 회복해도 성공이다. 그러면 전구에 불이 환하게 켜질 수 있다. 워낙 힘과 스피드가 있는 선수라 자신감을 찾으면 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단장의 애틋한 시선을 받고 있는 이영욱이 KIA에서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지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