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도루 욕심은 있지만, 원하는 타순은 항상 없습니다. 그게 왜 논쟁거리가 되죠?"
MVP의 목소리가 살짝 날카로워졌다. KIA 타이거즈 김도영은 '3번타자를 선호하나'라는 질문에 이어 타순 질문이 거듭되자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타율 3위(3할4푼7리) 득점 1위(143개) 홈런 2위(38개) 타점 7위(109개) 출루율 3위(4할2푼) 장타율 1위(6할4푼7리) OPS 1위(출루율+장타율, 1.067)에 도루 40개까지. 지난해 김도영은 말 그대로 찬란한 시즌을 보냈다.
에릭 테임즈 이후 처음, 프로야구 토종 선수 첫 40(홈런)-40(도루)에는 아쉽게 홈런 2개가 모자랐다. 하지만 데뷔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제2의 이종범'이란 수식어 그 이상의 뜨거운 활약을 보여줬다. 공수주 3박자, 5툴(장타력 주루 정확도 순발력 어깨)을 두루 갖춘 야구 천재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이종범으로 대표되는 창의성, 김도영 본인에게 큰 동기부여인 주루플레이를 살리기 위해선 리드오프가 가장 적합해보인다.
잘 치는 타자가 한 번이라도 많은 타석에 들어서는게 팀에게 유리하다는 얘기도 있다. 비슷한 의미에서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전인미답의 54홈런-59도루를 달성한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의 타순은 1번이다. 이강철 KT 위즈 감독은 지난해 멜 로하스 주니어, 올해는 강백호를 리드오프로 예고했다.
이른바 '강한 2번' 이론도 있다. 과거처럼 2번타자가 번트를 대고 공격 연결에 주력하는 자리는 더이상 아니다. 선구안과 컨택, 장타력과 스피드를 두루 갖춘 만능 선수에게 어울린다.
차후 홈런왕도 넘볼 수 있을 법한 김도영의 장타력을 감안하면 '테이블세터(1~2번)는 아깝다, 클린업트리오로 써야한다'는 의견도 일리가 있다. 지난해 득점권 타율은 3할1푼7리로 상대적으로 낮긴 하지만, 타격의 볼륨 면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공교롭게도 팀내 득점권 타율 1위가 리드오프로 자주 기용된 박찬호(3할5푼9리)인 점도 흥미롭다.
지난해 김도영은 1번(72타석) 2번(168타석) 3번(380타석) 7번(4타석) 8번(1타석)에 각각 들어섰다.
그중 가장 좋은 기록을 남긴 자리는 1번타순이다. 타율 4할2푼9리, OPS 1.218을 찍었다. 시즌의 대부분을 보낸 3번 타순에서도 타율 3할4푼1리, OPS 1.086의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지난해의 경우 박찬호가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할 만큼 생애 최고의 해를 보냈고, 소크라테스를 2번으로 전진배치했었다. 하지만 올해 영입한 외인 위즈덤은 전형적인 거포다. 김도영을 1,2번으로 올리고, 최형우 나성범과 함께 좌-우-좌의 클린업을 형성하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이는 숫자만 보고 판단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선수들이 각각 자신의 타순에 부여하는 의미나 멘털적인 효과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
김도영의 타순이 중요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이유다. 김도영 입장에선 어느 타순에 배치돼도 잘할 수 있다,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칠 수 있다. 하지만 감독은 김도영이 '어떻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고민해야하는 입장이다.
이범호 감독은 "김도영이 3번에서 중심을 탄탄하게 잡아주면 좋다. 1,2번이 좋지 못하면 김도영을 올려 앞쪽을 보강하는게 나을 수도 있다. 김도영 앞뒤로 배치될 타자들의 활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타순은 차후 시범경기를 지켜보며 결정하겠다고 말할 만큼 머리가 복잡해보였다.
김도영의 입장은 명확하다. "팀에 도움이 된다면 어디든 칠 거고, 초등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나 프로 와서도 타순 욕심은 항상 없었다"고 했다. "한번 누상에 나가면 주루플레이를 오래 하는 걸 좋아한다. 그게 팀이 강하다는 증거고, 우린 타점을 올릴 사람이 많은 팀"이라며 자부심도 드러냈다.
"새 시즌에 임하는 부담은 전혀 없다. 올해도 꼭 좋은 시즌을 보내고 싶다."
인천공항=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