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누명사건'에 '무인점포 사회적비용' 논란 재점화
편리함 이면의 그림자…무인점포 치안·행정력 부담은 누가?
"보안 투자 필요…공권력에만 기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서울=연합뉴스) 최혜정 인턴기자 = "인건비를 행정력에 떠넘긴 무임승차"('Thi***')
"무인점포가 편하긴 하지만 행정력 낭비에 개인정보 유출 위험까지 있다면 규제가 필요하다"('오그***')
지난달 한 초등학생이 무인점포 절도범 누명을 쓴 사건이 파문을 일으킨 후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에 올라온 목소리들이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무인점포를 둘러싼 '사회적 비용'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무인점포가 인건비를 절감하며 보안을 공권력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는 개인정보 유출 위험까지 떠안는 구조가 공정한가를 두고 논쟁이 확산하고 있는 모양새다.
◇ "도난방지책 없이 사회안전망에 편승하면 비용 내야"
지난달 인천시 한 무인점포에서 아이스크림 절도범으로 몰린 초등학생 A군의 어머니는 명예훼손 혐의로 업주를 경찰에 고소했다.
A군은 9월11일 학원 수업을 마치고 인근 무인점포에서 8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고 가게에 적힌 계좌로 800원을 송금했다. 자신의 이름과 상품명까지 적었다.
하지만 A군은 10월1일 같은 무인점포를 찾았다가 점포 안에 자기 얼굴과 옆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 화면을 캡처한 사진 2장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사진 아래에는 "상기인이 본인이거나 상기인을 아시는 분은 연락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업주는 A군이 결제한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해당 사진을 점포에 약 1주일 동안 붙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건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비판 여론과 함께 '무인점포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누리꾼들은 "계좌 송금 확인도 안 하는 건 기본이 안 된 것"(루리웹 이용자 '아이스***'), "난 그래서 무인점포 안가. 직원 없이 편하게 돈은 벌고 싶은데 cctv 개인정보 녹화에 피드백도 개판이야"('keu***'), "만약에 문신 한 큰 체격 남자가 저랬으면 사진 붙였을까?"('dem***') 등 비판을 쏟아냈다.
여기서 나아가 절도 사건 등 범죄 발생 시 무인점포는 경찰에 의존하는 만큼, 공권력의 치안 비용 일부를 세금 형태로 분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모였다.
'루리웹' 이용자 'Fu***'는 "아무리 한국 치안이 좋다고 하지만, 점주가 도난 방지 대책을 제대로 해 놓지 않고 사회 안전망에 편승한다면 그 비용을 내야겠지"라고 주장했다.
또 '쿠**'는 "가게 보안을 공권력에 기대니까 세금 좀 더 낼 수도 있다고 생각함. 대기업에서 하는 무인편의점은 스마트 출입기라도 달아 놓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은 손님 잘 안 온다고 달아 놓지도 않음"이라고 지적했다.
네이버에서도 "경찰이 무인 점포 시다로 전락해 버림"('coo***'), "무인아이스크림 집은 공공의 안녕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경찰에 기생하고 있다. 도난이 걱정되면 지들이 도난방지 알림이나 마트에 설치되어 있는 소리나는 기계를 설치해야 하는 거다"('lee***'), "직접 와서 일하기는 싫고 CCTV 떡 설치해놓고 경찰 공권력에 왜 개인의 보안을 요구하시는지?"('dod***') 등 무인점포가 공권력을 사유화한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다만 무인점포세는 결국 제품 비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대하는 의견도 맞선다.
직장인 김모(27) 씨는 8일 "무인점포는 24시간 영업을 하고 직원이 없어 계산이 빠르고 간편하다"며 "직원이 없는 대신 공권력이 일해 준다는 비판에는 공감하지만, 추가 세금을 내야 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강태경(20) 씨도 "사람과 마주하는 부담 없이 물건을 오래 고를 수 있어서 편하다"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장이 자발적으로 리스크를 안고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인점포세는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무인점포세 생기면 제품 가격 올릴 수밖에"
'쇠막대기로 '딸깍'·'손발척척'…몇 분 만에 300만원 털렸다'·'새벽 시간대 인천서 무인점포 8곳 현금 절도…10대 구속영장'·'카드 대신 신분증 꽂고 결제 연출…무인점포 절도범 구속'·'무인점포 돌며 현금털이 30대 덜미…CCTV 100여대 뒤져 잡았다'….
최근 7개월 사이 보도된 무인점포 관련 범죄 기사 제목들이다. 편리함과 효율성을 내세운 무인점포가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절도 등 각종 범죄도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작년 전국 무인점포 개수는 10만 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자 등록만 하면 지자체 신고 없이 개업할 수 있다.
그러나 관리자가 상주하지 않는 무인점포 특성상 절도, 파손, 기물 손상 등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경기 남부 지역의 무인점포 절도 사건 발생 건수는 2021년(3월∼12월) 698건에서 2022년(1월∼12월) 1천363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업주들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무인점포를 선택했지만 범죄에 취약하다고 토로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민현기(43) 씨는 "3개월에 한 번 정도는 소액 혹은 큰 건의 절도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 내에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성모(55) 씨도 "초등학생 절도 사건이 의외로 많다. 철부지 장난도 있지만 학업 스트레스로 절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무인 세탁소를 운영하는 이정인(60) 씨는 "손님이 매장 내 카트를 가져가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다"며 "나이가 있다 보니 보안 시스템을 직접 관리하기 어려워 경찰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무인점포세 도입 주장이 일자 업주들은 크게 반발했다.
무인 세탁소·프린트 가게를 운영하는 B(59) 씨는 "인건비가 절감되는 만큼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는데, 세금이 생기면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인 전자담배 가게를 운영하는 김헨리(37) 씨 또한 "너무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 "절감된 인건비 일부 보안 등에 재투자할 책임 있어"
전문가들은 인건비 상승 속 무인점포 확산을 불가피한 변화로 보면서도, 보안 강화와 제도 설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두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인점포와 달리 무인점포에는 상주 관리 인력이 없다 보니 절도, 파손 등 잠재적 리스크가 증가한다"며 "이는 치안 강화, 공권력 개입 등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절감된 인건비 일부를 보안 기술, 모니터링 시스템, 고객 안전 인프라 등에 재투자할 책임이 있다"며 "운영 효율을 높이되,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떠넘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황혜선 성균관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무인 매장의 관리 허점을 노린 범죄가 늘면서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런 문제는 장기적으로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교한 서비스 설계와 보안 체계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무인점포는 보안 장비 강화나 접근 통제 등 기본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보안 노력 없이 공권력에만 기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은 협력 치안 차원에서 컨설팅이나 자문을 통해 업주들의 보안 투자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런가 하면 이성림 성균관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절도 사건은 무인점포 확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며 "무인점포는 심야 시간대 소비자에게 편리한 구매 환경을 제공하고, 자영업자에게는 인건비 절감의 이점이 있는 만큼, 제대로 운영된다면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사고와 범죄를 예방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기술적·행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국가와 사업자의 몫"이라며 "단기적으로는 범죄율이 낮은 지역부터 무인 시스템을 확대해 나가는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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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