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홈런, 이승엽이었기에 모두가 웃을수 있었다

최종수정 2015-06-04 08:06

지난 3일 포항 롯데-삼성전에서 이승엽의 400홈런이 터졌을 때 모두가 웃을 수 있었다. 사실 대기록은 찬란하지만 그늘이 없진 않다. 콕 집어 말하는 이는 드물지만 분명 존재한다. 첫째, 대기록과 팀승리가 꼭 정비례하진 않는다. 리그 5연패에 도전하고 있는 삼성은 치열한 선두 다툼중이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연승을 좀 해야 한다. 주춤거릴 때가 많아 속상하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이날 경기전 이승엽의 400홈런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사실 신경이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일반 경기에 비해 훨씬 더 피로한 것이 사실이다. 야구인으로 당연히 축하할 일이지만 혹시 모를 다른 선수들의 소외감도 감독은 외면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이승엽 자신이 400홈런 여파로 스윙밸런스가 흐트러질까 걱정도 했다. "의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홈런을 머릿속에 담으면 스윙에 작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면에선 이승엽은 대단한 베테랑이다. 우선은 팀배팅을 한다. 2일 경기도 그랬다. 6번 타자로 주로 나서는데 이승엽 타선에서 찬스가 걸릴 때가많다. 이승엽이 때려주면 팀이 쉽게 이기고, 이승엽이 부진하면 어려운 경기를 하곤 한다." 삼성은 2일 롯데전에서 5타수 3안타 3타점 3득점을 한 이승엽의 활약으로 3연전 첫 경기를 13대7로 이겼다. 3일 경기에서도 이승엽은 기다리던 홈런을 쳤고, 삼성은 8대1로 대승했다. 삼성 선발 윤성환은 9이닝 동안 2안타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뒀다. 최형우는 역대 72번째 개인통산 1000안타도 달성했다.


◇3일 포항야구장에서 2015 프로야구 롯데와 삼성의 경기가 열렸다. 3회말 2사서 통산 400호 홈런을 친 이승엽이 이닝 종료 후 행사에서 롯데 주장 최준석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포항=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6.03.
모든 것이 매끄럽게 돌아간 2연전이었지만 이 모든 것이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승엽의 노력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이승엽은 무심한 듯 매 타석에서 평상시 대로 팀승리를 위해 방망이를 휘둘렀다. 후배들이 이 모습을 모를 리 없다. 대기록에 도전하는 선수가 있으면 해당 팀 선수들도 모든 것을 조심하곤 한다. 대기록 도전 선수가 극도로 예민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팀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가뜩이나 언론과 팬들의 관심이 커진 상태라면 작은 변화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알기에 이승엽은 기록 달성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삼성 벤치는 모든 것이 일상 그대로, 물 흐릇듯 흘러갔다. 단지 폭죽과 홈런볼 등 여러가지 이벤트를 챙겨야하는 프런트만 바빴을 뿐이다.


◇이승엽이 모자를 벗어 3루측 롯데 덕아웃을 향해 90도로 인사하고 있다. 이승엽은 "어제(2일)와 오늘 나를 상대한 롯데 투수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한결같이 정면승부를 펼쳐줬다. 상대의 대기록을 축하해주는 일이 국내야구에선 드문데 롯데 선수단의 배려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포항=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6.03.
눈길을 끈 것은 롯데 투수들의 정상적인 승부와 400홈런 달성 뒤에 보여준 롯데 선수단의 멋스러운 감동이었다. 이승엽은 경기가 끝난 뒤 "롯데 구승민(400홈런을 맞은 투수)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래도 승부의 세계라 서로 다 이해할 거라고 본다.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해준 부분은 정말 고맙다. 어제와 오늘 마운드에 올라와 나를 상대했던 롯데 투수들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400호 홈런이 나온 3회말 삼성 공격이 종료되고 간단한 기념 행사가 있었는데 롯데는 선수단을 대표해 주장 최준석이 이승엽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또 롯데 선수들 모두 덕아웃 앞에 나와 이승엽의 기록 달성에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이승엽은 롯데 덕아웃을 향해 모자를 벗고 90도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이승엽은 "국내에서는 아직 상대팀이나 선수들이 축하나 격려를 해주는 경우가 적다"고 했다. 롯데 3루수 황재균은 400홈런이 나오면 하이파이브를 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도 이승엽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지만 서로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넘쳐난 하루였다. 롯데 선수들은 경기전 이승엽에 대해 "선수로서, 팬으로서 존경했던 스타"라고 했다. 철저한 자기관리, 노력, 재능, 그리고 겸손함까지. 야구판에서 이승엽은 야구를 너무 잘해 얄미웠을 수는 있어도 그를 인간적으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어쩌면 대기록을 달성한 주인공이 '안티 없는' 이승엽이었기에 가능한 장면들이었다. 포항=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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