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일리가 중간 계투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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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원래 레일리는 일정상 16일 청주 한화전 선발이 유력했다. 지난 7일 잠실 LG 트윈스전에 선발 등판해 4⅓이닝 동안 94개의 공을 던지며 9안타 2볼넷 3삼진으로 2실점한 뒤 이날까지 일주일을 푹 쉬었다. 그래서 8일 휴식 후 16일 등판이 예상됐다. 그러나 이 감독은 예상과 달리 레일리의 '불펜 전환' 카드를 꺼냈다. 레일리는 올해 17경기에 나오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불펜 투수로 나선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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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종운 감독은 '레일리 불펜 투입' 카드를 꺼내게 됐을까. 일단 팀이 힘겨운 상황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롯데는 5월29~31일 울산 문수구장에서 한화를 상대로 2승1패의 위닝시리즈를 거둔 이후 40여 일 동안 12번의 '3연전 매치'에서 한 번도 위닝시리즈를 달성하지 못했다. 중간에 비로 1~2경기가 취소된 5번의 매치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3연전'으로 7번의 매치에서 모두 상대팀에 '위닝시리즈'를 내줬다.
이로 인해 5할 승률 마진도 5월말 한화 상대 위닝시리즈 기록한 '+4'에서 지속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결국 14일 경기를 앞둔 시점에서 롯데는 37승45패로 '5할 승률 마진'에서 '-8'을 기록하며 8위로 주저앉았다.
참담한 결과이긴 하지만, 아직은 포기할 시점은 아니다. 그래서 이 감독은 일찌감치 올스타 휴식기 이전 마지막 3연전인 청주 한화전에서 '총력전'으로 위닝시리즈를 달성하며 반전의 신호탄을 쏘아올리길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분위기를 반전시켜놔야 후반기에 다시 반격할 힘이 생긴다.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레일리 불펜 투입' 카드는 이런 계획의 연장선에서 등장한 것이다. 워낙에 불펜의 힘이 약하다보니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이 감독이 전반기에 마지막으로 치르는 '청주 3연전'에 얼마나 비중을 크게 두고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레일리의 밸런스 조정도 가능
두 번째 이유로는 레일리의 컨디션 조절 차원이기도 하다. 선발 투수들의 휴식기는 개인차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5일'이 가장 적당하다. 그보다 짧으면 이전 등판의 피로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구위가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이보다 휴식기가 길어지면 제구력이나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질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우천 취소 등 변칙 상황으로 인해 휴식기가 길어진 선발의 경우 밸런스 재조정 차원에서 불펜 등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레일리도 이에 해당한다. 7일 LG전 이후 이미 6일을 쉬고 14일 청주 한화전이 7일째 되는 날이다. 예정대로 16일에 등판하면 8일을 쉬고 나오는 셈이다. 그러면 등판 간격이 너무 길어져 밸런스가 흔들릴 위험이 생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레일리가 먼저 '계투 등판'을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선발 투수들이 등판 2일 전에 하는 불펜 피칭의 '루틴'을 14일 경기 중간 투입으로 대체하는 셈이다.
아무리 팀을 위해 '총력전'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선발을 불펜으로 갑자기 전환하는 게 어떤 위험성을 갖고 있는 지 모를 이 감독이 아니다. 레일리가 한 번쯤 불펜에서 던져주면 좋겠지만, 선뜻 제안하긴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레일리가 먼저 "중간에서 던지겠다"고 한 것은 가려운 곳을 알아서 긁어준 격이다.
물론 레일리의 불펜 전환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오로지 이번 3연전, 그 중에서도 14일 경기에만 활용가능한 카드다. 게다가 16일 선발 투입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길게 던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감독은 "이기는 상황에서 1이닝 정도를 던지게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정도면 16일에 선발 재투입에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실화 된 레일리 계투 전환, 효과는?
이렇게 경기 전 예고한 대로 14일 경기에서 레일리의 중간 투입은 실제로 이뤄졌다. 다만 이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이기는 상황"은 아니었다. 동점을 허용한 뒤 역전 주자가 나간 위기 상황에 투입됐다. 7회초 아두치의 솔로홈런으로 3-2를 만든 롯데는 7회말 2사 후 심수창이 한화 정근우에게 유격수 쪽 내야 안타를 허용한 데 이어 도루와 폭투로 2사 3루에 몰렸다. 이어 김태균에게 좌중간 적시타를 맞아 3-3을 허용했다.
레일리는 이때 마운드에 올랐다. 5회 1사 때 등판한 심수창의 구위가 떨어지고 있다고 판단한 이 감독은 여기서 이닝을 끝내야 한다고 판단한 듯 하다. 게다가 타석에는 좌타자 한상훈이 나온다. 좌투수 레일리의 최적 투입 시기였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다. 레일리는 비록 폭투로 김태균을 2루에 보내긴 했지만, 한상훈을 4구만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추가 실점없이 이닝을 마쳤다. 레일리의 중간계투 출격은 여기까지였다. 롯데는 8회가 되자 강영식을 마운드에 올렸다. 결국 레일리는 공 4개만 던지면서 16일 선발 등판에도 지장이 없게 됐다.
투구수가 예상보다 적었긴 했지만, 어쨌든 레일리의 중간 계투 투입은 팀의 위기를 해결하고, 선수의 실전 감각도 되살렸다는 측면에서는 '일석이조'로 평가할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끝내 롯데는 9회말 정근우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3대4로 졌다. 이종운 감독으로서는 '국지전투'에서는 재미를 봤지만, 전쟁에서는 진 셈이다.
청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