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복귀전 2안타' 한화 정현석, "이글스의 소중함을 느꼈다"

최종수정 2015-08-06 06:38

"아내를 비롯한 가족, 동료, 팬 그리고 이글스. 모두가 정말 소중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훈련을 막 마치고, 취재진과 만난 한화 이글스정현석은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렸다. 그리고 연신 연습복 자락으로 얼굴에 가득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을 닦아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그 물방울들. 지난 8개월간 정현석은 수도없이 많은 땀과 눈물을 쏟아냈다. 그리고 '기적'을 만들어냈다. 위암 초기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한 지 만 237일 만에 그토록 갈망하던 1군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얼굴은 핼쑥해져 있었지만, 몸매는 탄탄했다. 아팠던 사람이라기 보다는 강도높은 훈련으로 살을 쏙 뺀 선수의 기운이 흘러넘쳤다.


SK와 한화의 2015 KBO 리그 경기가 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7회초 2사 한화 정현석이 SK 켈리를 상대하고 있다. 정현석은 켈리의 초구를 받아쳐 우전안타를 뽑아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8.05/
정현석의 복귀는 5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 이뤄졌다. 한화가 이날 경기를 앞두고 외야수 이성열과 내야수 조정원, 투수 장민재를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고, 대신 그 자리에 포수 허도환과 내야수 김회성, 외야수 정현석을 불러올렸다. 정현석은 이날 이천에서 LG와의 퓨처스리그 2군 경기를 치르고 인천으로 와 선수단과 조우했다. 그가 나타나자 현장의 취재진은 환영의 인사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팀 동료의 뜨거운 환영은 당연하다. 정현석이 이 자리에 돌아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SK와 한화의 2015 KBO 리그 경기가 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7회초 2사 우전안타를 쳐낸 한화 정현석이 이닝이 교체된 후 김광수 3루 코치에게 장비를 건네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8.05/
동료들로부터 '뭉치'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정현석은 강골이었다. 단단하고 힘이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뭉치'에게 불운이 닥친 것은 지난해 12월. 오키나와 마무리캠프를 마친 뒤 12월8일 구단에서 실시한 선수단 정기 건강검진에서 위암 초기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결국 정현석은 4일 뒤인 12월12일에 수술대에 올라 위 절제술을 받았다. 암세포가 자라난 부위를 포함해 전체 위의 ⅔를 제거했다. 불행 중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암이 매우 초기에 발견됐다는 것. 그 덕분에 절제술만 하고, 추가 항암치료는 받지 않아도 됐다.

이후 정현석은 "머지않아 건강하게 1군 무대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 채 조용히 재활에 매진했다. 1월 중순부터 아내와 둘이서만 제주도와 강원도 등지에서 요양을 하며 몸을 추슬렀다. 정현석은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수술 직후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걷는 것 이외에는… 그렇게 무기력한 기분이 든 건 처음이었어요. 그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낼 수 있던 건 곁에 있는 아내덕분입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 시기였어요." 정현석이 좌절의 늪에 빠지지 않았던 건 아내 덕분이다.


SK와 한화의 2015 KBO 리그 경기가 5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위암 수술을 받고 그라운드로 돌아온 한화 정현석이 오늘 경기 1군에 등록되어 수비를 마치고 덕아웃으로 향하는 동료들을 맞이하고 있다.
인천=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5.08.05/
그렇게 조금씩 몸상태를 끌어올리고 일반식사가 가능하게 된 정현석은 4월3일에 드디어 재활군에 합류하게 된다. 당시까지만 해도 정현석은 '6월 1군 복귀'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6월쯤 1군에 돌아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욕심을 조금 내봤는데, 조금 늦었네요." 정현석은 자신의 생각보다 2개월 정도 늦은 복귀에 대해 쑥스러워했다. 하지만 그의 복귀를 진심으로 기원하던 팬과 동료들에게 2개월 정도 늦은 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이 시련을 겪으면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정현석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정말 주변의 도움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 같아요. 아내를 비롯한 가족은 제가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힘이죠. 또 재활군과 육성군에서는 코치님들께서 저만을 위한 특별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셨어요. 뿐만 아니라 팬과 동료들 그리고 '이글스'라는 팀에 대해서도 정말 절실하게 소중함을 느꼈습니다"라고 밝혔다.


◇지난 2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때 정현석의 쾌유를 기원하며 그의 별명인 '뭉치'를 모자에 써넣은 한화 이글스 주장 김태균의 모습. 스포츠조선 DB
사실 정현석이 없을 때에도 한화 선수들은 늘 그와 함께 뛰었다. 스프링캠프 기간에 주장 김태균의 제안으로 모자에 전 선수단이 '뭉치'라는 문구를 써넣었다. 그리고 그 모자를 쓴 채 힘겨운 시즌을 치러내왔다. 이제 정현석은 그토록 원하던 동료곁으로 돌아와 당당히 그라운드에 섰다. 그간의 부재를 실력으로 갚겠다는 다짐을 굳게 다진 채로.


그리고 '기적'은 다시 한번 벌어졌다. 복귀전에서 멀티 히트와 타점, 그리고 호수비까지 펼친 것. 정현석은 이날 5회말 우익수로 교체 투입된 뒤 7회초 2사후 첫 타석에서 초구에 우전안타를 날렸다. 지난해 8월25일 광주 KIA전 이후 345일 만의 1군 경기 안타였다. 이에 앞서 SK 구단은 전광판에 "정현석 선수의 건강한 복귀를 축하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워주며 아름다운 동업자 정신을 발휘했다. 이 메시지를 본 한화 팬 뿐만 아니라 SK 팬 역시 뜨거운 박수로 정현석을 반겼다.

정현석의 기적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이어진 7회말 수비 때는 선두타자 이재원의 큼직한 타구를 펜스 바로 앞에서 점프하며 잡아내는 호수비를 펼쳤다. 그러더니 2-7로 뒤지던 9회초 2사 3루 때는 중전 적시타를 날리며 3루 주자 송주호를 홈에 불러들였다. 복귀전에서 2타수 2안타 1타점. 비록 팀은 3대7로 졌지만, 정현석의 투혼이 만들어낸 값진 성과는 앞으로 팀 동료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듯 하다.


인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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