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 그립 변화가 말하는 이재학의 부활과 자신감

기사입력 2015-08-26 09:58


이재학의 피칭 장면.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6.20/

이재학(NC)은 부진했다. "전반기를 완전히 망쳤다"고 냉정히 평가했다. 2013년 신인왕의 영예를 안고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둔 사이드암 투수. 팀은 올해도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다. '토종 에이스'라는 수식어도 유효했다. 하지만 전반기 16경기에서 3승을 거두는데 그쳤다. 평균자책점도 4.55로 상당히 높았다. 팀에 미안했다. 덕아웃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알면 알수록 뜻대로 되지 않는 야구. 선배들의 얘기를 이제 좀 이해할 것 같았다.

그런 그가 마침내 자기 공을 뿌린 건 8월 들어서다. 4경기에 선발 등판했고 3승1패 평균자책점 3.47로 연거푸 팀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 4일 잠실 LG전에서 6이닝 6피안타 1실점했다. 9일 창원 KIA전에서는 4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지만 15일 창원 kt전(5⅓이닝 2실점), 22일 인천 SK전(8이닝 무실점)에서 잇따라 승리 투수가 됐다. 이재학은 "올 시즌 워낙 부진하기도 했지만, 한 경기 잘 던지면 다음 경기를 망치는 패턴도 반복됐다. 최근 2경기 성적은 그래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남다른 것 같다"며 "지금의 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우천 취소된 25일 창원 LG전에 앞서 밝혔다.

그는 한 창 안 좋을 때 "포수 미트에 던질 자신이 도무지 없었다"고 했다. 늘 집어 넣던 스트라이크조차 낯설어 "내가 저기에 던질 수 있을까, 라는 의심부터 했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좋았을 때의 비디오 영상을 많이 봤다. 폼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고치려고 무단히 노력했다"며 "하지만 꼭 그렇게 던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오히려 밸런스가 무너졌다. 마운드에서 의식을 하다 보니 더 꼬여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좀 예민한 편인 것 같다. 생각이 많으면 절대 공을 잘 던질 수가 없다"이라며 "지금은 한 타자 한 타자, 공 한 개 한 개에 집중할 뿐이다. 완급 조절 등의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일종의 '무심' 투구다.

최일언, 김상엽 투수 코치의 조언은 큰 힘이 됐다. 최 코치는 기술적으로, 김 코치는 정신적으로 매일 도움을 줬다. 그는 "사실 두 명의 코치님뿐 아니라 야수 파트 코치님, 선배들이 옆에서 좋은 얘기들을 해주셨다. 그러면서 힘이 났고 톱니바퀴가 하나씩 맞물려 가는 느낌이 들고 있다"며 "원래 다리를 천천히 들어 올려 스트라이드를 해 공을 뿌렸다. 이걸 최 코치님이 '좀 더 간결하게 가자'고 말씀하셔서 바꿨고,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빠르게 간결하게 던지면서 밸런스가 맞는 것 같다"고 밝혔다.

'감'이 오면서 직구 그립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통상 포심 패스트볼 그립을 잡을 때 검지와 중지를 살짝 벌리면 제구를 잡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대신 붙여 잡을 때보다 스피드는 떨어진다. 이재학은 2년 전만 해도 두 손가락을 붙인 채로 공을 던졌다. 손톱이 자주 부러지는 편이지만, 끝까지 공을 채며 볼 끝이 좋다는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올 전반기에는 자신도 모르게 엄지와 중지를 벌리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이 없는 탓이다. 때문에 직구 스피드가 떨어졌고 회전력도 좋지 못했다. 상대 타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이재학은 "김선우 선배 등의 조언을 듣고 그립에 변화를 줬다. 그러면서 지금은 내가 봐도 직구가 전반기와는 확실히 달라졌음을 느낀다"며 "직구가 살아나니 체인지업도 먹힌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포수 (김)태군이 형도 늘 내게 자신감을 심어준다. '미트 찢어지겠다' 등의 농담으로 기를 살려준다"며 "무섭기도 했던 마운드가 이제 좀 편하게 느껴진다. 아직 멀었지만, 내 공을 그나마 던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고 밝혔다.

이재학은 "올 시즌 개인 목표는 사라졌다. 전반기 망치면서 나를 위한 야구는 없다"며 "풀타임 첫 해를 마치고 '내년에 어떻게 해야 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2014시즌을 마친 뒤에도 '선발로서 이제 완급조절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부분이 다 빗나갔으니 한 타자 한 타자에 목숨 걸며 던질 수밖에 없다. 남은 시즌 치열한 순위 싸움을 하고 있는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창원=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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