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15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2차전 넥센과 두산의 경기가 열렸다. 9회초 두산 이현승이 마운드가 미끄럽다며 웃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10.11.
준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 투수, 준플레이오프 2차전 세이브 투수. 2015년 가을 야구의 주인공은 이현승(32·두산)이다. 현재까지 분위기만 놓고 보면 그렇다. 최다 안타 1위 유한준을 상대로 과감히 찔러 넣는 몸쪽 직구와 몸쪽 슬라이더. '몸쪽'이 주는 이미지 그대로 이현승의 배짱이 시리즈를 지배하고 있다.
이현승은 원래 그런 선수다. 팔꿈치 수술과 군입대 등이 겹치며 팬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듯 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로 기회만 오길 기다렸다. 올 시즌 5선발로 낙점돼 시범경기를 치르다 왼 가운데 손가락이 미세 골절 됐을 때도 "뼈가 쉽게 붙지 않는다. 자꾸 중지만 펴고 있으니 욕하는 줄 아닌데,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농담부터 던졌다. 지난간 일, 안 좋은 일은 빨리 잊자. 그의 생활 양식, 행동 양식, 야구 양식이다.
한 번은 그와 인터뷰를 하다가 "나는 위기 때마다 전광판을 본다"고 말해 놀란 적이 있다. "일부러 전광판을 보지 않는다"는 선수가 대다수이지만, "타자의 이름을 보고 저 정도는 잡을 수 있어. 내 공이면 충분히 통하지" 식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이미지다. 뭔가 모르게 상대가 껄끄러워한다면 그 투수는 좋은 투수"라고 했다.
올해부터 투수조 조장을 맡은 이현승은 이 같은 경험을 후배들에게도 전달하는 편이다. 무서운 선배보다 장난을 툭툭 거는 형이 되고 싶어 한다. 11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포수 양의지와 나눈 대화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3-2로 앞선 8회 2사 만루에서 양의지의 마스크를 글러브로 툭 쳤다. 양의지는 마운드를 방문해 야구 얘기가 아닌, "춥다고 옷을 2개 껴입었네요. 늙었네, 늙었어"라고 했고, 이현승은 씩 웃으며 꿀밤 대신 글러브밤을 해줬다.
13일 이현승은 "평소 후배들과 허물 없이 대화하려 한다. 너무 긴장하면 좋은 구위를 갖고 있어도 생각대로 공이 가지 않는다"며 "투수에게 중요한 건 여유, 그러면서 생기는 자신감이다"고 말했다. 이어 "준PO 8회 2사 2,3루에서 사실 박병호(넥센)와 승부를 하려 했다. 초구 몸쪽 공이 볼 판정을 받으면서 결국 고의4구가 됐다"며 "운 좋게 2경기에 등판해 좋은 결과가 나왔는데, 평소보다 스피드가 더 나오거나 구위가 좋은 건 아니다. 그냥 하던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하던 대로 하되', 무조건 즐겨야 한다고 투수조 조장은 강조했다. 이현승은 "가을 야구다. 아니 가을 잔치다"며 "감독님도 '편하게 하라'고 미팅 때 주문하셨다. 나 또한 후배들에게 '축제다. 즐기면서 하자'는 얘기만 했다"고 말했다. "기자님, 안 그렇습니까? 축제잖아요." '쾌남' 이현승은 이현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