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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삼성 오승환(38)은 늘 겸손하다. 특히 숫자 앞에서 그렇다.
의미 있는 기록. 하지만 땀을 흘리며 인터뷰장에 나타난 오승환은 예상대로 담담했다. 280세이브 언급에 바로 "제 기록보다 오늘 처음으로 블론 세이브를 했는데, 선수들이 마음을 모아 패배로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대기록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대답.
하지만 그런 오승환도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나이와 노화에 관한 이야기다.
"한국은 기량보다 나이를 먼저 보잖아요. 그게 잘못된 거 같아요. 나이 보다 성적과 기량을 먼저 봐야 하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시대의 늙어가는 모든 선수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 단순한 숫자로 모든 것을 평가받기에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늘 한계에 도전해온 오승환의 국내 복귀 후 목표는 이와 무관치 않다.
통산 280세이브를 거둔 뒤 그는 작심한 듯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이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저는 못 느끼고 있어요. 겨우내 준비도 많이 했고요. 앞으로 더 좋아질 겁니다.'
긴 공백 후 퓨처스리그 실전 조차 없이 복귀한 무대. 천하의 오승환 조차 완벽한 몸상태일 수는 없었다. 전성기 볼끝이 아니었다. 변화구 각도도 예리하지 못했다.
호사가들 사이에 바로 뒷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나이'의 한계에 대한 언급이었다.
오승환은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보완'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묵묵히 실천했다.
확인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6일 사직 롯데전. 2점 차 마무리에 나선 오승환은 완벽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 빠른 공으로만 윽박지르던 모습에서 벗어나 다양한 변화구로 타이밍을 빼앗았다는 점이었다.
볼끝 힘과 변화구 제구 모두 완벽했다. 오승환은 이날 전준우에게 던진 4구째에 최고 구속 151㎞를 기록했다. 복귀 후 150㎞를 넘은 건 이날이 처음이다.
북귀 초반 제구에 애를 먹었던 변화구 각도도 면도날 처럼 예리했다. 특히 마차도에게 던진 마지막 140㎞대 고속 슬라이더의 각도와 제구는 완벽했다. 한참 타격감 좋은 마차도 조차 배트도 내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경기 후 오승환 스스로도 모처럼 만족감을 표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늘 복귀 후 가장 밸런스가 좋았다"고 이야기 했다. 151㎞ 구속에 대해 "더 나와야 한다"고 말한 그는 변화구 제구에 대해서도 "경기를 할 수록 점점 좋아질 거라 생각을 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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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지난 4년 간 패배 의식 속에 젖어 있었다. 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최하위권에서만 벗어나면 할 일 다했다고 자위하던 시절. 7년 만에 돌아온 '끝판 대장'에게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불혹을 바라보는 오승환도 물론 예전 같지는 않다. 세월을 비껴갈 수 있는 선수는 없다. 단, 적어도 오승환은 끊임 없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내 나이가 몇인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스스로의 한계치가 정해진다.
스스로의 한계 극복을 통한 귀감으로 후배들의 패배 의식을 깨뜨리고 싶어 한다.
통산 280세이브로 5할 승률 복귀와 6위 탈환을 이룬 날. 그는 이런 말을 했다.
"6위 하려고 야구하는 게 아닙니다."
돌아온 끝판왕의 짧고도 굵은 메시지. 모든 선수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순간, 삼성 야구에는 '제2의 왕조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부산=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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