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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사실 김원형 코치랑 고민을 엄청 했어요. 3번이나 올라가는건데, 바로 (홍)건희를 보내야 하나."
다행히 비는 금새 멎었고, 그라운드 정비 시간까지 포함해 23분만에 경기가 재개됐다. 대기하고 있던 이현승은 다시 가볍게 몸을 풀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박해민에게 안타를 맞아 1사 1,2루 더 큰 위기에 놓이게 됐다.
두산 벤치는 이현승을 계속 밀고 나갔다. 다행히 다음 타자 박승규를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며 이닝의 두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다. 2사 1,2루. 마지막 상대할 타자는 구자욱. 왼손 타자이기 때문에 왼손 투수 이현승이 깔끔하게 처리해주는 시나리오가 가장 이상적이었다. 이현승은 구자욱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꽂았다. 그런데, 애석한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우 수준으로 때려 붓자 또다시 경기가 중단됐다.
이현승이 대기한 시간만 90분. 1이닝을 소화하는데 경기가 두번이나 중단되는 상황이었다. 보통 중단 시간이 길어지면 투수를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김태형 감독도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 감독은 "김원형 코치랑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현승이가 3번이나 올라가게 생겼는데, 그냥 바로 홍건희를 내야하나 하다가 일단은 이현승에게 물어봤다. 지금 불펜 상황상 현승이가 구자욱까지 맡아주면 딱 좋을 것 같아 고민이 됐었다. 다행히 현승이가 괜찮다고 하더라. 두번째 재개를 준비하면서, 롱토스로 팔을 푸는 모습을 보니까 공이 잘 가더라. 보기에도 괜찮은 것 같아서 믿고 맡겼다"고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김태형 감독은 "사실 2번이나 흐름이 끊기는 상황에서 투구를 계속하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본인의 의견을 물어봤는데 다행히 잘 막아줬다"며 고마워했다. 우천 중단 변수에도 두산은 추가점까지 올리면서 6대1로 승리할 수 있었다.
이현승은 올 시즌 팀내 최다 경기(12일 기준 36경기) 등판 투수다.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는 않더라도 팀이 필요로 하는 순간, 가장 필요한 아웃카운트를 잡아야 할 때 이현승이 투입된다.
김태형 감독이 "현승이는 어쩌다 혼신의 힘을 다해 140㎞을 던지면 그 다음날 아프다고 누워있다"며 놀리지만, 누구보다 이현승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 김 감독은 "사실 이제 현승이가 항상 컨디션이 좋을 수는 없는 나이다. 쉬어가면서도 중요할 때는 자기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팀에 도움이 많이 되는 선수다. 지금 몸 상태나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 풀타임을 뛸 수는 없어도 항상, 정말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고 진심을 전했다.
대구=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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