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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스포츠에는 감동이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의 힘이다.
김하성의 빅리그 진출 이후 키움의 유격수 자리는 여전히 배틀 중이다. 장점이 각자 다른 유격수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수비가 중요한 단기전. 키움 벤치의 선택은 3년 차 신준우(21)였다.
1,2차전을 훌륭하게 소화한 어린 유격수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악몽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 3회까지 무려 3개의 실책을 범했다.
1회 1사 1루에서 알포드의 타구를 서둘러 병살 처리하려다 공을 떨어뜨렸다.
3회 선두 배정대의 중견수 쪽 타구를 빠르게 빼지 못하면서 1루에 살려줬다. 강백호의 적시 2루타가 터지면서 득점 주자가 됐다. 알포드의 유격수 땅볼을 또 한번 제대로 쥐지 못하면서 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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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는 더욱 중요하다.
홍원기 감독은 경기 후 "제 경험상 선수도 위축될 것 같고, 다른 선수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수비 이닝까지는 깔끔하게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 밀고 나갔다"고 설명했다. 유격수 출신 사령탑의 배려였다.
실책의 직접적 '피해자' 선발 타일러 애플러의 태도도 놀라웠다. 첫 실책 때 신경쓰지 말라는 제스처를 보낸 애플러는 3개의 실책으로 기어이 실점을 하게 한 신준우의 어깨를 감쌌다. 진심을 다해 격려하는 모습. 실책 하나에 짜증 섞인 표정을 짓는 외인 투수도 많다. 애플러는 그야말로 대인배 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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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이정후는 이닝 교체 후 신준우에게 다가와 힘이 되는 이야기를 했다. 타석에서 교체된 후에는 김혜성이 어깨동무를 한 채 이것 저것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건넸다. 김혜성은 그라운드에서도 신준우를 다독였다.
끊임 없는 전력유출에도 키움이 왜 5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하는 강팀인지를 보여주는 대목.
이날 2안타 3타점으로 만점 활약을 한 리드오프 김준완은 이런 말을 했다.
1년 전 NC에서 방출돼 키움에서 기회를 얻은 그는 "1년 전 이 시기에 방출이 돼서 야구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는데 이렇게 가을야구 할 수 있게 돼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1할대 타자 답지 않은 존재감 있는 톱타자로 꾸준히 활약하는 비결에 대해 그는 "시합을 많이 나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키움에 있을 때는 전광판이나 기사를 안보면 제가 1할 타자란 사실을 인식도 못하고 지낼 때가 많다. 그만큼 잘하고 있다는 칭찬도 많이 해주신다. 그러다보니 제 스스로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잘났던, 현재 못났든, 영원한 건 없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사람도 마음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 끊임 없이 변화한다. 계절이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다.
모든 사람은 우주 만큼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힘은 때론 진심어린 관심 한 스푼, 그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다.
자칫 트라우마 속에 나락으로 빠질 뻔 한 유망주, 버림 받고 상처 속에 새 둥지를 찾은 이적생 모두 키움 사령탑과 동료들의 진심어린 관심과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서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 안의 멋진 우주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