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지독했던 4연패의 사슬을 끊어낸 순간, 키움 히어로즈의 '위대한 베테랑' 서건창(37)은 안도감 대신 묵직한 책임감을 먼저 이야기했다. 팀이 가장 어려울 때 리드오프로서 제 몫을 100% 다해낸 베테랑의 품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6월 들어 6경기 연속 안타다. 게다가 7일에는 4타수 3안타 1득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타율도 2할8푼2리로 올랐다. 키움은 이날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서건창의 맹활약에 힘입어 4대1로 완승을 거두며 4연패에서 탈출했다.
일등 공신은 단연 서건창이었다. 1번 타자로 선발 출전한 서건창은 3안타 4출루 1득점의 원맨쇼를 펼치며 두산 마운드를 완벽하게 흔들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두산 선발 웨스 벤자민은 3경기 연속 무실점 호투로 3승을 쌓으며 최고의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키움 리드오프 서건창은 1회초 첫 타석부터 벤자민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놓았다. 1회초 선두 타자로 나선 서건창은 벤자민의 몸쪽 시속 145㎞짜리 직구를 거침없이 받아쳐 우익수 오른쪽에 떨어지는 날카로운 2루타를 만들어냈다. 이 안타는 선제 3득점으로 연결되며 키움의 4연패를 끊는 결정적인 시발점이 됐다.
기선 제압의 배경에는 전력분석팀과 코칭스태프의 명확한 주문이 있었다. 서건창은 "오늘 전력 분석 파트와 타격 코치님께서 적극적인 타격을 주문하셨다"며 "'눈앞에 하얀 게(공) 보이면 쳐라'는 확실한 메시지가 선수단에 있었는데, 그 과감한 접근이 오늘 경기에서 아주 주효하게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 6월 들어 타구 방향이 부쩍 다양해진 점에 대해서도 "어느 타자나 야구장을 고루 쏜다는 건 좋은 현상이다"라며 "내가 억지로 하려고 하기보다는 꾸준하게 루틴을 지키면서 그런 좋은 모습들이 나오는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6년 만에 친정팀 키움의 유니폼을 다시 입은 서건창의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시즌 전 시범경기에서 오른손 중지 골절상이라는 대형 악재를 만나며 지난달 9일에야 뒤늦게 1군 무대를 밟았다. 늦은 출발이었지만 클래스는 영원했다. 서건창은 타율 2할8푼2리, 18득점 6타점으로 팀 타선을 이끌었고, 구단은 그의 가치와 리더십을 높게 평가해 지난달 20일 계약 기간 2년·총액 최대 6억 원(연봉 5억 원, 옵션 1억 원) 규모의 비FA 다년계약을 안겼다.
'KBO 역사에 남은 전성기 시절(201안타)과 비교해 지금의 타격 폼은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서건창은 현명한 답변을 내놨다. "그 시절을 억지로 따라가려고만 하면 지금 상황에선 뭘 해도 안 될 것 같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지금 내 느낌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시 메커니즘을 전체적으로 가져올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좋았던 느낌들을 하나씩 복기하며 지금의 나에게 접목시키려 한다."
팀 사정상 지난 달 30일 고척 KT위즈전에서는 좌익수로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 베테랑다운 책임감이다. 그는 "게임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지만 외야 수비는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라며 "주어지면 완벽하게 해내야 하기 때문에 내야에서보다 경기 전 연습 시간을 외야 훈련에 훨씬 많이 할애하며 새로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키움은 최근 8연패에 이어 다시 4연패에 빠지는 등 최하위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베테랑으로서 책임감을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팬분들의 따가운 반응과 안타까운 시선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매 경기 야구장을 가득 채워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이 들고 죄송스럽다. 우리가 많이 부족한 게 냉정한 사실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매 경기 기본에 충실하고 발전하자는 다짐을 하고 있다. 힘드시겠지만 팬들께서도 우리 젊은 선수들을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고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
다년계약 당시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라던 서건창은 이날 4출루 선봉장 역할로 자신의 약속을 완벽하게 이행했다. 비록 전성기 시절의 폭발적인 스피드나 타격 폼은 아닐지라도, 마운드를 악착같이 물어뜯는 집념과 팀을 위해 외야 수비까지 마다하지 않는 헌신은 키움 더그아웃에 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