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기 위해 기차를 탄다.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향해 기차가 출발한다. 얼마쯤 왔을까. 목적지까진 한 반쯤 온 것 같다. 그럼 목적지 도착까지 나머지 반이 걸리는 시간 동안, 나는 시계를 보는 횟수가 많을까.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는 횟수가 많을까. 과연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에게 즐거움을 혹은 도움을 줄까.
그렇다. 시청자가 '착남'의 강마루를 보며 '미사'의 차무혁을 떠올리고, 비극적 결말을 예감할 수도 있다. 다만 드라마의 결말을 예상하기엔, 착한남자는 이제 10회를 마쳤고, 총 20부작 중에 절반밖에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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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부작 드라마 '착한남자'가 10회를 마친 시점에서, 시청자가 놓치기 쉬운 건 무엇일까. 바로 강마루(송중기)-서은기(문채원)-한재희(박시연)의 처음 만남이고 모습이다. 지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을 봐야 한다. 1,2회 때의 그들과 9,10회 때의 그들은 얼마나 달라져 있나.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고, 또 받았는가. 그것을 캐치하고 바라봐야 드라마 '착한남자'의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는데 유용하다.
한재희가 교도소에서 출소한 강마루와 6년 만에 재회했을 때, 그녀는 과거 마루가 사랑했던 재희가 아니었다. 재희는 태산그룹이라는 부와 권력을 쫓았고, 서회장(김영철)의 후처가 되었다. 그녀의 선택이 과연 나쁜 것인가. 절대 악인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루의 입장에선 위선이고 탐욕이며 악이었다. 다른 사람의 희생, 마루의 인생을, 희생을 밟고 올라선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한재희가 마루와 초코를 위해 선의로 마련한 10억조차 왜곡된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마루는 재희의 위선과 탐욕마저 수시로 망각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 재희를 사랑했기에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고, 서은기를 이용하려 들었다. 마루는 예전의 내 모습, 행복했던 시절을 찾기 위해, 한재희마저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으려 했다. 그렇게 어느순간 사랑은 집착이 됐다. 그 과정에서, 서은기라는 희생양을 낳았다. 재희를 사랑했던 자신과 닮은 '여자 강마루' 서은기의 인생을 망치고 있었다.
마루는 재희를 찾기 위한 자신의 방법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별장에서 자작극을 펼친 한재희를 보고, 더 이상 예전으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마루는 시간을 거슬러 처음으로 돌아가려 했다. 여고생 한재희와 처음 만났던 시점이 아니라, 살인죄를 그녀 대신 뒤집어쓰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시점으로. 서은기를 만나기 전으로. 그래서 은기의 사랑을 받아줄 수 없었고, 그녀에게 상처가 되는 거짓말로 이별을 고했다.
마루에게 재희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사랑이듯, 은기에게 마루도 그랬다. 마루가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해도, 은기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용서하려 했다. 강마루는 원래 그런 남자가 아니라고 은기는 굳게 믿었으니까. 그건 마치 재희가 태산그룹 서회장의 후처가 되었다는 말을, 재길(이광수)과 초코(이유비)에게 듣고도, 마루가 절대 믿지 않았던 것과 같고, 그 사실을 확인하고도 재희의 욕망을 부정하고, 순수했던 재희를 떠올리며 그녀를 되찾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과 같았다. 결국 재희를 향한 마루의 사랑, 마루에 대한 은기의 사랑은 교통사고라는 파국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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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마루에게 기억상실증에 걸린 은기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재희앞에 출소한 마루가 나타난 것 같은 충격이다. 그리고 마루가 탐욕에 찌들어 추락하던 재희를 결국 붙잡아주지 못했던 시간을, 이번엔 은기가 추락하는 마루를 붙잡아주는 시간으로 바뀌었음을 알린다. 명석한 두뇌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강마루가 예전의 한재희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데에 실패했다면, 교통사고로 뇌가 고장나 수단도, 방법도 뭔지 모르는 순수한 서은기를 통해, 예전의 착한남자 강마루를 되찾아주는 과정이 그려질 것이다.
즉 드라마 '착한남자'가 1~9회까지가 강마루가 예전 한재희의 순수함을 되찾아주는 과정의 실패를 담았다면, 10회부터는 서은기가 예전 강마루의 순수함을 되찾아주는 과정을 성패를 담는 셈이다. 각각 해결사를 자처하는 강마루와 서은기는, 포지션은 같지만 접근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같지만, '잘 생기고 똑똑해 나쁜 남자' 강마루와 '기억상실증으로 무식해진 순수한 여자' 서은기의 '접근방법'의 차이.
현시점에서 드라마 '착한남자'는 결말에 초점을 맞추고 복선찾아 삼만리를 하기 보단,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 갈 필요가 있다. 강마루와 서은기는 '사랑'이란 같은 목적을 향해, 어떤 다른 수단과 과정을 밟고 있는가를 비교했을 때, 제작진이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고픈 내용과 메시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조급하게 결말을, 끝을 바라보기 보단, '착한남자'가 어떤 내용을 품고 진행되어 왔는지 여유를 가지고 돌아볼 시점이다. <한우리 객원기자, 대중문화를 말하고 싶을때(http://manimo.tistory.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