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주' 강하늘, 무채색 스크린 위 詩가 된 청춘

기사입력 2016-02-19 08:31


삼청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6.02.04/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의 '서시(序詩)' 첫 구절. 내레이션 녹음을 위해 윤동주의 시편을 홀로 마주해야 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배우 강하늘(26)이 그때처럼 또 다시 숨을 골랐다. 영화 '동주'에 시 13편이 담겼지만, 그중에서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서시'는 더 특별했다. "엄청난 부담감에 첫 음절을 떼기가 너무나 힘겨웠어요. 숨통이 턱 막혀서 목소리가 나오질 않더군요." 강하늘이 내쉰 이번 숨은 조금 더 무겁고 길다.

잠 못 이루는 숱한 밤이 지나갔다. 때로 술도 마셨다. "아, 이 부담감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구나.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겠구나. 그냥 온전히 안고 가야 하는 것이구나…." 강하늘은 겸허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그의 말간 얼굴에 엄혹한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정갈한 목소리로 읊은 청춘의 부끄러움은 숨결과 온기가 되어 윤동주의 삶으로 되살아났다. 그렇게 강하늘은 스크린에서 한 편의 시(詩)가 됐다.

"윤동주 시인을 다룬 영화라는 사실에 매료됐어요. 출연 제안을 받고 너무나 기뻤죠. 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고민이 시작됐어요. 시나리오에 담긴 윤동주는 민족시인, 독립투사 같은 거대한 이미지와는 달랐어요. 열등감도 있고 질투심도 느끼는 평범한 청년이더라고요. 꽤 충격을 받았죠."

윤동주의 시는 알아도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관심을 두는 이는 별로 없다. 강하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주'의 모태가 된 '윤동주 평전'을 독파하고 시나리오에 몰입하며 나름의 답을 찾아 나섰다. 촬영 중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다그쳤다. 때론 압박감에 도망가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윤동주의 삶은 사촌이자 평생의 벗이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박정민)로 인해 구체적인 궤적을 그리게 된다. 한 집에서 태어나 한 달 차이로 옥사한 두 청년의 삶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며 한 시대를 관통한다. 송몽규는 윤동주보다 먼저 등단하고, 연희전문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했으며, 윤동주는 떨어진 교토제대에 입학한다. 송몽규보다 한 발 뒤에서 그림자로 머물렀던 윤동주의 열등감을 강하늘은 깊이 이해했다.

"제가 엄청나게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열등감과 부담감이었어요. 조금 더 잘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자책에서 오는 열등감, 연기할 때 실수하지 않겠다는 부담감…. 윤동주 시인의 모습이 저와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더 조심스러웠던 것 같아요."

윤동주의 시 세계를 '부끄러움의 미학'이라 정의한다. 영화에서 윤동주는 어두운 시대에도 시인이 되고 싶어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온 생을 바쳐 시를 사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할 테다. "극중 몽규가 시를 비판할 때 동주가 발끈하는 장면이 있어요. 동주에게 시가 절대적인 존재인 거죠. 내게도 그 정도로 좋아하는 대상이 있었나 돌아보게 되더군요. 물론 연기를 사랑하죠. 그러나 비판에 직면했을 때 동주처럼 맞설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니더라고요. 이런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어요."

'동주'는 강하늘에게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처럼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었던 듯하다. 성찰하는 사람은 성장한다. 강하늘이 그렇다. 하지만 그는 아주 작은 칭찬에도 몸둘 바를 몰라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이 꼭 윤동주 같다. 순수한 영혼과 고결한 성품까지 윤동주를 닮은 모양이다. 이준익 감독에게 강하늘이 유일한 정답이었던 이유를 알 법하다. "평소 좋아하는 영화를 모아놓은 진열장이 있어요. '동주' DVD가 출시되면 포장도 뜯지 않고 고이 간직할 거예요. 제 출연작 중엔 처음이에요."


강하늘은 시나리오를 볼 때 상대방의 대사에 밑줄을 긋는다고 한다. 예전엔 그 반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상대배우와 마주 보고 연기하면서도 머릿속에선 자신의 대사만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후로 방식을 바꿨다. 이런 유연함이 강하늘이 윤동주에 완전하게 동화된 비결이었던 듯하다. '동주' 이후의 강하늘을 기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주'는 모든 배우, 스태프들이 진심을 모아서 촬영한 영화예요. 제가 꿈꾸던 영화의 세계가 그곳에 있었어요. 그때 느꼈던 그 마음을 계속 가져갈 거예요. 평생토록."

suzak@sportschosun.com


삼청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6.02.04/

영화 '동주'의 특별시사회가 16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렸다.특별시사회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강하늘이 입장하고 있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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