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③] 허진호 감독 "'덕혜옹주'는 인간 허진호의 판타지"

기사입력 2016-08-10 09:45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허진호(53) 감독은 왜 황녀 이덕혜를 선택했을까. 그리고 그가 인간 이덕혜, 여자 이덕혜를 통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과연 허진호 감독은 해답을 얻었을까.

권비영 소설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덕혜옹주'(허진호 감독, 호필름 제작)는 고종의 금지옥엽 고명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이야기를 그린 작품.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덕혜옹주를 허진호 감독이 스크린을 통해 부활시켰다.

극 중 복동(정상훈)은 말한다. "다 잊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라고. 허진호 감독은 여기에서부터 '덕혜옹주'를 시작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어딘가 끝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 대체 덕혜옹주는 왜 자꾸만 불행을 자처하며 살았을까. 곱씹고 또 곱씹어 봐도 가슴 깊이 남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고 그래서 더욱 '덕혜옹주'를 관객에게 선보여야만 했다고.

"궁금했어요. 제가 본 다큐멘터리에서 덕혜옹주는 영민했고 누구에게도 예쁨받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소녀였어요. 귀여운 행동으로 고종의 사랑을 받을 만큼요. 그랬던 그가 일본으로 간 뒤 무기력한 표정을 짓고 말 수도 급격하게 사라졌다고 해요. 계속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좌절감도 맛봤겠죠. 여기에 원치 않은 사람과 결혼을 했지만 이혼을 하고 또 정신이상으로 정신 병원에 갇혔죠. 심지어 딸은 자살하고 마는 비극을 당해야만 했으니까요. '왜 덕혜옹주는 다 잊지 못했을까' '그냥 모든걸 포기하고 살아가면 편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덕혜옹주만 포기하면 남편, 딸과 함께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는데도 말이죠. 그 누구도 불행을 자처하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요. 이런 덕혜옹주가 궁금했어요."


궁금증으로 '덕혜옹주'를 시작한 허진호 감독은 역사 문헌을 찾아보며 조금씩 해답을 얻었다. 덕혜옹주가 다케유키를 벗어나려고 했던 이유도 그의 가정 폭력 때문이 아닌 대한민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알게 됐는데 실제로 다케유키는 덕혜옹주를 많이 사랑했더라고요. 악질 남편으로 와전됐지만 실제로 다케유키는 덕혜옹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시를 쓰기도 했으니까요. 이런 대목을 보면 분명 덕혜옹주도 한 사람으로, 한 남자의 부인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 그걸 거부했으니까요. 굉장히 우울한 삶을 보냈죠. 그런데 딱 한 장면, 덕혜옹주가 한국으로 돌아온 그 날이 아마 저를 바꿔놓은 것 같아요. 공항에서 덕혜옹주를 기다린 궁녀들이 절을 하는 장면에서 모든 비극과 슬픔이 해소된 기분이었죠. 누군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고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돌아갈 이유가 생기는 거죠. 그리고 원수의 나라에서 숨 쉬는 것조차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가뜩이나 자존심도 센 여자인데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이런 덕혜옹주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풀어내고 싶었어요. 너무 과장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요. 그냥 내가 느낀 그대로 관객에게 전하고 싶었죠."


'덕혜옹주'를 향한 진심은 그랬다. 다행히 이런 허진호 감독의 의도는 관객에게 정통했고 스코어로 증명해 보였다. 올여름 텐트폴 영화 중 세 번째 주자이자 홍일점인 '덕혜옹주'는 쟁쟁한 경쟁작이 즐비한 8월 첫째 주 주말 1위를 꿰차며 흥행 청신호를 켠 것. 여느 경쟁작보다 폭발적인 입소문의 힘을 발휘하며 개봉 4일 차 100만 관객, 7일 차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허진호 감독 작품 중 최고의 스코어다.

"'덕혜옹주'는 인간 허진호가 해석하는 이덕혜의 모습이었죠. '덕혜옹주라면 이러지 않았을까?' '이랬을 것 같다' '이랬으면 좋겠다' 같은 거요. 솔직히 영화 속에서 덕혜옹주가 조선 노동자들을 향해 연설하는 장면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역사에는 덕혜옹주가 조선 노동자들에게 사죄하거나 용기를 주는 연설을 했다고 적혀 있지 않죠. 그런데 덕혜옹주 마음에는 아마 영화 속처럼 하고 싶지 않았을까요? 소망, 혹은 바람을 집어넣고 싶었어요.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걸 역사 왜곡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누구도 원수의 땅에서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으니까요."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영화 '덕혜옹주'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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