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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이는 패션인③] 클래식과 디지털의 만남, 버버리 CCO 크리스토퍼 베일리

최정윤 기자

기사입력 2017-05-08 12:04


버버리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 크리스토퍼 베일리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최정윤 기자] 패션 하우스의 역사와 전통은 그 무엇으로도 넘볼 수 없는 고귀한 자산이지만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항상 새롭고 특별한 것을 찾는 소비자의 심리가 적용되기 때문. 유서 깊은 하이엔드 브랜드에서 신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기꺼이 영입하는 것도 그만큼 브랜드 안티에이징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 온다.

그런 의미에서 버버리(Burberry)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 CCO) 크리스토퍼 베일리(Christopher Bailey)는 아주 훌륭한 교본이 된다. 2001년 5월 버버리에 합류한 뒤 2009년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총괄 책임자가 되기까지, 지난 16년간 그가 보여준 버버리 월드는 단 한순간도 지겨울 틈이 없었기에.


버버리 창립자 토마스 버버리(1835~1926)
버버리의 역사를 살펴보자면 1856년 재봉사 토마스 버버리(Thomas Burberry)에 의해 설립, 방풍·방수가 뛰어나지만 가볍고 통풍성이 좋은 개버딘(gabardine) 소재 개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 스키복 탐험복 비행복 등 다양한 스포츠 용품으로 활용되다가 소재의 인기와 실용성에 힘입어 1차 세계대전(1914~1918) 중 영국 육군성과 해군성의 공식 트렌치코트로 지정됐다. 이후 기능성 견장, 가죽 허리띠, D자링을 응용해 오늘날 트렌치의 원형으로 자리잡았고, 이국적이고 귀족적인 느낌을 주는 격자무늬와 함께 오랜 시간 인기를 누려왔다. 1926년 토버스 버버리가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뒤 브랜드를 이어 맡은 그의 아들 아서 마이클이 1955년 은퇴함으로써 버버리는 그레이트 유니버설 스토어스(GUS) 소유가 된다.

하지만 100년 가까이 한 가지 스타일만을 고집한 버버리는 1990년대 들어 브랜드 시장 퇴출 위기를 맞게 된다.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중·노년층의 옷으로 이미지가 고착돼 버린 것이다. 또 무분별한 브랜드 라이선싱 사업으로 품질관리에 실패해 과다한 수요만이 남았으며, 이는 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하나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버버리 2월 컬렉션

서울에서 열린 버버리 케이프 전시전
버버리의 위기는 1997년 당시 패션업체 리즈 클라이본의 부회장이자 40대 중반의 미국인 여성 리테일러 로즈마리 브라보(Rose Marie Bravo)가 CEO로 영입되면서 일단락된다. 그는 먼저 몇 년간의 세밀한 고객분석으로 버버리의 니치마켓을 설정했고 브랜드 리포지셔닝에 들어갔다. 또 젊은 감성의 아티스트와 모델을 적극 활용했는데 특히 구찌에서 일하고 있던 영국 북동부 시골 출신의 크리스토퍼 베일리를 버버리의 새 얼굴로 낙점한 것은 당시 패션계에서는 혁신과 도전 그 자체였다.

로즈마리 브라보는 틀리지 않았고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버버리를 나이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격자무늬는 여성 고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올 오버 하트 프린트나 헨리 무어의 회화와 삽화 컬렉션으로 대신했고, 고무 패널과 같은 신소재를 과감히 활용하는가 하면 환상적인 꾸튀르 케이프로 예술적인 패션을 선보인다. 처음 브랜드가 추구한 실용성은 그대로 간직한 채 젊은 고객들을 달콤한 유혹에 빠트리며 동시에 미래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디자인. 베일리는 전 세계인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 것에 성공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성실했고 겸손했다. 그리고 현재 버버리는 그 어떤 브랜드보다도 새롭다.


버버리 9월 컬렉션(2016)

버버리 2월 컬렉션(2017)
▶2016년 9월, 씨 나우 바이 나우(SEE NOW, BUY NOW) 시스템 도입

한 시즌 일찍 공개되는 컬렉션에 시장에는 카피 제품이 넘쳐나게 됐다. 패션계는 분노에 떨면서도 쉽사리 오래된 시스템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그 속에서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기다렸다는 듯 '씨 나우 바이 나우' 시스템을 선보였다. 지난해 9월 컬렉션을 시작으로 올해 2월 컬렉션까지 성공리에 진행해내며 글로벌한 관심을 독차지했다. 쇼 착장은 런웨이 공개 직후 바로 판매되며, 버버리 디지털 리테일 네트워크를 통해 100개가 넘는 나라에 유통된다.


前버버리 CEO이자 現애플 부사장인 안젤라 아렌츠

▶앞선 디지털 마인드 장착 그리고 버버리닷컴(burberry.com)

씨 나우 바이 나우는 단순히 스케줄 변동이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거기에는 현재 애플의 수석 부사장이자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버버리의 CEO를 역임한 안젤라 아렌츠(Angela Ahrendts)의 전략이 상당 부분 도움을 줬다고 볼 수 있다. 아렌츠는 밀레니얼 세대를 타깃으로 디지털 마케팅에 적극적인 힘을 쏟았다. 대표적으로 2009년 11월 론칭된 소셜 네트워크 기반의 디지털 플랫폼 '아트 오브 더 트렌치(Art of the Trench)'가 있다.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이라면 온라인과 스마트폰을 통해 누구나 자기 사진을 업로드하고 다른 이용자와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다. 2007년 1월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발표하고, 국내에는 2009년 11월에서야 유통된 점을 생각해볼 때 굉장히 빠른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버버리 닷컴은 그 어떤 쇼핑 사이트보다 친절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컬렉션 생중계는 물론 자세한 상품 설명과 일주일 이내 무료 배송 및 반품까지 가능하기에 타 럭셔리 브랜드와는 확실한 차별성을 가진다. 이처럼 온라인 네트워크가 탄탄히 잡혀있다는 점. 더불어 '온라인 중심의 사고방식이 앞으로의 경쟁력이다'라는 철학은 신선함과 동시에 젊고 빠른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버버리 패션 필름 '토마스 버버리의 이야기' 포스터

버버리 패션 필름 '토마스 버버리의 이야기' 스틸컷
▶밀레니얼 세대에 눈높이 맞춘 버버리 160년의 전통

지난해 160주년을 맞이한 버버리는 아카데미의 주역들과 함께 환상적인 패션 필름을 공개했다. 바로 버버리의 창립 히스토리를 담은 페스티브 캠페인 '토마스 버버리의 이야기(The Tale of Thomas Burberry)'다. 해당 영상은 3분 35초라는 짧은 시간에 압축된 시네마틱 트레일러 형식으로 2020년 주요 소비자층 밀레니얼 세대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한 것. 배우 도널 글리슨(Domhnall Gleeson)과 시에나 밀러(Sienna Miller) 그리고 영화 '에이미'(2015)로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아시프 카파디아(Asif Kapadia) 감독이 뭉쳐 패션과 예술 그리고 영화라는 장르의 벽을 허물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브랜드 역사를 만들어내기 충분했다.


오는 6월 발간될 브루클린 베컴의 사진집 '왓 아이 씨(WHAT I SEE)' 관련 이미지

모델 아이리스 로의 버버리 에센셜 광고 캠페인
▶버버리의 뉴페이스는 새롭지만 친근하다.

버버리는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과 팝스타 출신 패션 디자이너 빅토리아 베컴(Victoria Beckham)의 장남 브루클린 베컴(Brooklyn Beckham)을 브릿 향수 캠페인 포토그래퍼로 발탁하는가 하면, 영화배우 주드 로(David Jude Law)의 딸 아이리스 로(Iris Law)를 에센셜 광고 캠페인 모델로 데뷔시켰다. 유명세를 이용해 경험도 없는 이들을 기용한 것은 업계에 대한 모욕이다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하지만 프로의 정확함보다 어딘가 비뚤어진 것을 선호하고, 일부러 변형시키며 새로움을 찾는 유스들의 쿨한 감성에는 그들의 아마추어적인 신선함이 통할 것으로 본다.

출생과 동시에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그들은 이미 막강한 팔로우수를 자랑하는 글로벌 인플루언서로 영향력을 가한다. 또 톱스타를 사랑하는 기존의 기성 세대들과 스타 2세로 공략할 수 있는 버버리 미래의 고객들. 두 세대의 소비자를 동시에 공략해 가족에 함께 즐길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는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실제 데이비드 베컴의 둘째 아들 로미오 베컴은 2013년 당시 열살의 나이로 버버리 최연소 광고 모델이 됐으며, 그가 등장한 광고 영상들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가 평균 1000만회가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끈 바 있다.

dondante14@sportschosun.com 사진=버버리, 에스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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