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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성일이 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돼 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6일,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이다./2018.11.4/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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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많은 영화인들이 '한국영화의 영원한 별' 고 신성일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한국영화의 표상, 고인은 그렇게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향년 81세.
6일 오전 10시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이 진행됐다. 영결식은 고인을 기리는 묵념, 고인에 대한 약력 보고, 추모 영상 상영, 조사, 추도사, 분향 및 헌화, 유가족 대표 인사 순으로 엄숙하게 진행됐다. 고인의 아내인 배우 엄앵란을 비롯해 고 신성일의 장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은 배우 안성기, 한국영화인 총연합회 지상학 회장을 비롯해 많은 영화인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사회를 맡은 독고영재는 "고 신성일 님은 살아있는 전설이었지만, 이제는 전설로 남았다. 이 분이 아니었으면 60년대와 70년대 한국 영화계 중흥의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우리 후배들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땅에 배우로 환생 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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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성일이 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돼 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6일,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이다./2018.11.4/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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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를 맡은 장례위원장을 맡은 한국영화인 총 연합회 지상학 회장은 "때로 시련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겠지만 축복과 은총을 누리고 살아간 인생이 얼마나 있었겠나. 지난 시절 당신이 있어 행복했고, 같은 시대에 살았다는 것이 행운이었다"고 고인을 떠올렸다. 이어 맥아더 장군의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을 인용, "큰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육신의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며 고인을 기렸다.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은 추도사를 통해 고인을 떠올렸다. 오 위원장은 "불과 한 달 전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위를 당당하게 걸어오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영화인들에게는 무한한 든든함이었다"며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많은 추억을 두고 우리 곁을 떠나셨다. 500편이 넘는 수많은 영화 속에 사람들 가슴 속에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되셨다"고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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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성일이 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돼 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6일,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이다./2018.11.4/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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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선생님은 1960년대를 관통하는 한국사회의 표상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내년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선생님을 재조명하고 또 다른 100년을 함께 하고자 했다. 영화계에 산적한 많은 고민들에 대해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자 했다"며 "선생님의 모든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냐만은 영화를 위해 살아가셨던 진정성을 잊지 않겠다. 저희들 또한 선생님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한국영화가 세계의 목표가 돌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부디 하늘에서 평안하시고 행복하시길 간절히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고인의 아내 엄앵란은 유족을 대표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침 일찍인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입을 연 엄앵란은 "가만히 앉아서 (고인의) 사진을 보니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네' 이런 생각이 든다. (고인이) 세상 떠나는 것을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가 저를 보고'왜 울지 않냐'고 하는데, 울면 그 남자가 마음이 아파서 걸음을 못 걷는다고 하더라. 집에 가서 밤 12시에 불 끄고 이불을 덮고 실컷 울려고 한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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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성일이 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돼 있다. 부인 엄앵란이 빈소를 지키고 있다.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6일, 장지는 경북 영천의 선영이다./2018.11.4/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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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면서 엄앵란은 "(고인과) 그동안 엉망진창으로 살았다"며 고인과 함께 함께한 세월을 떠올렸다. 이어 "다시 태어나 신성일 씨와 산다면 선녀처럼 공경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미 때는 늦었다. 여러분 댁에 계신 부인들께 잘 하시라. 길게 하면 지루하니 그만하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고인은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후 계속해서 항암치료를 받다 지난 4일 오전 2시 30분께 생을 마감했다. 사망 한 달 전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건강해진 모습으로 영화인·팬들을 만나 화제를 모았고 새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직접 대본 수정에 나서는 등 다시금 활발한 활동을 예고했지만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나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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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4일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개막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13일까지 부산 내 영화의 전당 등 다양한 극장에서 79개국 323편의 작품을 상영한다.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배우 신성일. 부산=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8.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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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태어난 고인은 1957년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 배우모집에 참가해 합격하며 배우의 길을 걸었다. 신상옥 감독은 신성일에게 '뉴스타 넘버원'이라는 뜻의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 '로맨스빠빠'(1960)로 데뷔, 이후 신상옥 감독과 함께 '백사부인', '이 생명 다하도록', '상록수', '연산군' 등 작품에 함께하며 영화인으로서 관객을 만났다.
고인의 1960년대와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는 화려했다. 당대 제작되는 청춘멜로영화의 주인공으로는 '무조건 신성일'을 외칠 정도로 최고의 청춘스타로 활약했다. '눈물 젖은 두만강', '망부석', '맨발의 청춘', 그리고 '동백아가씨', '춘향', '별들의 고향', '비오는 날 수채화' 등을 포함한 524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영화감독으로 영역을 확장, '연애교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등을 연출하는 등 총 4편 영화의 감독을 맡았다. 일평생을 영화인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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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인은 정계에 진출한 이후에도 영화계 발전을 위해 힘썼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며 강신성일로 개명한 고인은 1981년 11대 총선 서울 용산 마포구에 한국구민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지만 2위로 낙선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대구 동구 갑에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 동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smlee032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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