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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이지현 기자] "기록의 여왕"
하춘화는 "나이 차이가 많아도 설레는데, (김수미의) 대기실에 찾아와 연인처럼 대한다는 소식에 부러웠다"고 이야기했고, 김수미는 "집문서는 줄 수 있지만, 조인성은 안된다. 인성 씨가 결혼해도 마음이 변하지 안된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춘화는 조인성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조인성 씨는 잘생겼는데 남자답기까지 하다"며 이상형임을 밝혔다. 이에 김수미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대본리딩에서 주님이 오신 줄 알았다. 많은 배우들 속에 광체가 달랐다"고 첫 만남을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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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춘화는 분단 40년 만에 최초로 평양공연을 했다. 하지만 "추석연휴 3박 4일 일정이었다. 그 때만 해도 살벌했다"라며 "개인 자유행동이 허락되지 않았다. 방 안에서도 녹음기를 틀고 말할 정도로 카메라 도청의 불안 속 긴장과 초초한 마음으로 견뎠다"고 이야기했다.
또 하춘화는 18세에 전쟁 중인 베트남에 갈 수밖에 없던 사연을 털어놓았다. 하춘화는 당시 병사들의 보고 싶은 연예인 앙케트 1위에 뽑혔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전시 상황에 미성년자인 딸을 보낼 수 없었다고.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들의 거듭되는 설득에 아버지는 보호자인 언니와 동행해 베트남 공연을 갔다. 하춘화는 "한 달을 있었다. 공연 중에도 포탄 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자다가도 포탄 소리가 들려서 깼다"고 털어놔 모두를 놀라게 했다.
특히 하춘화는 코미디언 故 이주일과 월남전 위문 공연에서부터 시작된 인연을 밝혔다. "월남전에서 군인과 똑같이 생활하는 군예대 위문단에 이주일 씨가 있었다. '못생긴 사람이 참 친절하다' 생각했는데, 전시상황에 걱정하는 부모님에게 대신 집에 전화를 해줬다. 그때 부터 인연이 시작됐다"고 운을 뗐다.
이어 "5년 후 리사이틀을 하는데 전속 사회자를 모집했는데, 이주일이 찾아왔다. 저는 반가웠는데, 공연 단장님이 불합격을 줬다. 하지만 베트남의 인연으로 함께 했고, 이주일의 열정을 인정받아 전속 계약을 하고 10년 간 함께 했다"고 덧붙였다.
이주일과의 인연은 후일 하춘화의 목숨까지 살렸다고. "이리(익산) 공연을 하게 됐다. 이리역과 공연장이 500m거리였다. 화약을 실은 열차가 이리 역에서 폭발했다. 그 위력은 이리시 전체를 덮었다"라고 회상했다. "유리가 다 깨져서 눈처럼 쌓였을 정도였다. 숨조차 쉴 수도 없는 공포였다. 폭발사고로 이리시 전체가 암전됐다. 공연장 지붕이 무너져 내렸고 그 안에 매몰 됐었다"라며 "사람이 이렇게 해서 죽는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주일 씨 목소리가 들렸다. 이주일 씨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담 위로 나를 올렸다. 담 벼락서 이주일의 머리를 딛고 내려왔는데, 당시 이주일의 머리가 두개골 함몰 상태였다. 둘다 몰랐다. 생명의 은인이다"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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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중매로 만난 남편과 결혼 25년 차인 하춘화는 러브스토리도 털어 놓았다. "남편은 K본부 방송사 기획조정실 회사원이다. 20년 차 술친구 국장 언니가 저희 언니와 동창으로 소개해줬다"면서 "'진국이다'라는 말에 만났는데,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1년 후 크리스마스 디너쇼에 국장언니가 다시 남편을 데리고 왔다. 긴장한 남편이 어렵게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망년회 시즌으로 지각도 했다"라며 귀여운 모습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첫 아이를 유산했다"는 하춘화는 "노력을 많이 했지만, 자식은 안주시나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입양까지도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위 만류로 더욱 기부를 많이 하게됐다"고 덧붙였다. 하춘화는 45년간의 기부활동으로 기부금만 몇 백억 정도다.
마지막으로 하춘화는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나는 트로트 1세대다. 아버지께서 60년 정도 모은 트로트 자료를 모아 전남 영암군에 기부하셨다"라며, 이 자료를 토대로 대한민국 최초로 한국 트로트 가요센터가 세웠다.
olzllove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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