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이 국내 게임업계 처음으로 유료 확률형 아이템이 나오는 확률 정보를 전면 공개하기로 했다.
지난 5일 이정헌 넥슨 대표는 사내 시스템에 올린 직원들에게 쓴 편지를 통해 최근 '메이플스토리' 등을 통해 불거진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대해 사과하면서, 향후 확률을 전면적으로 공개해 유저들이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넥슨의 전면적인 정책 변화에 따라 게임업계에 상당한 변화가 불어닥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또 이를 촉발시킨 확률형 아이템 공개의 의무화 법안이 유일한 대안일지, 아니면 전면적인 자율 공개가 궁극적으로 더 나을지에 대한 찬반 논쟁도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확률형 아이템을 대신할 비즈니스 모델의 도입 필요성도 더욱 가속화될 것은 보다 분명해졌다.
넥슨은 기존에 공개한 캡슐형 아이템의 확률은 물론 유료 강화(인챈트) 및 합성류 정보까지 전면적으로 공개하고, 확률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서비스하고 있는 주요 온라인 및 모바일게임이 대상이 되며, 최근 큰 이슈가 됐던 '메이플스토리'의 '큐브' 아이템 확률을 우선적으로 공개하고, 이를 활용한 등급 업그레이드 확률의 세부 수치도 모두 포함할 예정이다. 이는 향후 신작 게임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이정헌 대표는 "게임을 대하는 사회의 눈높이가 달라졌는데 변화를 인식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렀다"며 "이를 통해 콘텐츠의 신뢰를 높이고, 유저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새로운 표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무작위', '랜덤' 등 혼용돼 사용하면서 유저들에게도 혼란을 줬던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확실한 확률표를 추가로 제공하는 한편 유저가 검증하는 '확률 실시간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 각종 확률 요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시스템도 연내 구축하겠다고 전했다.
▶업계 변화 이끌까
넥슨의 이번 결정은 업계에선 상당한 파격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권리보장을 외치는 '메이플스토리' 유저들의 전례없는 거센 항의와 정치권의 강한 목소리에 신속한 반응을 보인 것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그동안 '영업비밀'로 통하는 확률을 전면 공개하겠다는 것은 향후 업계에 엄청난 변화를 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넥슨이 전세계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부분 유료화'(Free to play) 게임을 선보였고, 이를 유지케 하는 확률형 아이템 도입에도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게임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일단 유료 아이템 확률을 공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향후 무료와 유료 아이템을 결합해 생성하는 혼합형 아이템의 등장 확률까지 공개할 가능성도 높다는 측면에서 다른 게임사들도 이 추세를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아니지만 향후 확률형 아이템만으로 전개하는 사업에 여러 제약 조건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번을 계기로 비즈니스 모델을 더 빨리 구축해야 하는 과제도 안게 됐다. 그동안 국내 게임사들은 유무형의 규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양한 변신과 도전을 통해 이를 극복하며 게임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성장시켰다. 이번에도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변화와 혁신이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소비자의 선택에 맡겨야
'확률형 아이템'은 말 그대로 뽑기형 상품이다. 적은 돈을 투입하고 다소의 요행이 더해지면 기대 이상의 수혜를 입을 수 있는 것은 현실이 아닌 디지털 세상에 구축된 게임의 본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강력한 아이템을 획득했을 경우, 경제적 제약이 별로 없어 고가의 아이템을 무차별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유저들과의 게임 내 대결에서 대등하게 상대할 수 있기에 '역진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자신이 구매한 액수만큼의 아이템을 얻는 '정액제 아이템'이 대체제라 할 수 있지만, 행운적 요소가 다소 떨어져 게임을 즐기는 재미를 해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유저들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상당히 낮고, 업계가 자율적으로 공개하는 확률이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의 여부라 할 수 있다. 수천만원 이상을 쓰고도 원하는 아이템을 얻지 못했다는 불만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유다. 게임 전문가들은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라도 희귀 아이템의 적절한 유지는 필요하다"면서도 "국내에선 MMORPG가 여전히 대세인데 무차별적으로 아이템이 남발될 경우 게임 내 밸런스가 흔들리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생태계가 흔들리면 운영을 하기 힘들어진다. 피해는 게임사와 유저 모두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어 "사행성 논란을 감소시키기 위해 등장 확률이 희박한 아이템 출시를 최소화 하는 것과 더불어 유저들이 납득할 수준의 확률 신뢰성을 확보하고 정보 접근성을 개선시켜야 한다. 그래야 유저들이 이를 믿고 적절한 선택을 하게 된다. 결국 시장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제화 논의, 어떻게 전개될까
국내 게임산업이 주로 정액제 요금을 받은 온라인게임에서 아이템 판매에 주력하는 모바일게임으로 대세 트렌드가 바뀌면서 확률 공개 필요성은 계속 제기돼 왔다.
업계에선 세계적 추세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를 공개하고 있지만, 범위가 한정적인데다 해외 게임의 경우 이를 어겨도 딱히 제재할 방법이 없어 국내 게임에 대한 '역차별'도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게임과 e스포츠의 법적 위상 제고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산업진흥법 전부개정안'에 확률 공개에 대한 강제성이 명기됐고, 업계는 이에 대해 '영업비밀' 침해로 게임사의 개발과 사업 자율성 및 의지를 저해하는 일이라며 반발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국민청원이 등장하고, '메이플스토리'의 아이템 등장 확률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정헌 넥슨 대표의 말대로 게임사에 대한 눈높이와 기대치가 달라졌다. 코로나19 시대를 관통하면서 수혜주로 부각한 게임산업이 부러움과 질시를 함께 받게 됐다는 점도 분명 감안해야 한다.
다만 이로 인해 게임과 게임사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아닌 일방적인 매도는 분명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게임 유저들만이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 문화 콘텐츠로 부상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필요하다. 정치권에서 전부개정안의 내용을 뛰어넘는 일부 상품(일명 컴플리트 가챠)의 판매 금지나 과도한 과징금 부과 등을 담은 법안까지 나오는 등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상헌 의원은 "전부개정안이 공론화 되고 많은 관심을 가져준데 대해선 여야 의원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면서도 "게임과 e스포츠는 마이너한 분야이기에,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 다만 국내 게임사와 게임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몰아붙여서도 안된다"고 밝혔다. 이어 "법 개정을 통한 시스템 개선에 방점을 둬야지, 과도한 시장규제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래야 올바른 방향으로 게임산업이 진흥될 수 있다. 국회가 이용자들에게 '점령군'이 아닌 '조력자'로 기억돼야 한다"며 "업계의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통해 꼼꼼하게 내용을 보완하고,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중심을 잡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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