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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가을 아침/ 내게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 가을 아침 / 내게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가수 아이유가 전주 없이 '가을 아침'을 부르자, 이전까지 소리 지르거나 떼창하던 관객들도 숨 죽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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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역대급 피날레가 예고된 만큼, 예매부터 열띤 분위기였다. 선예매 당일과 다음 날까지 글로벌 포털사이트인 구글에서는 일별 인기 급상승 검색어 '아이유'의 검색량이 평소보다 100% 증가하고, '아이유 콘서트'라는 단어는 검색량이 400%까지 폭증하며 상위권에 진입했다. 일반 예매 역시 저녁 7시 32분부터 검색 관심도 그래프가 급상승했으며 7시 57분에는 최고치 100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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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날 공연에서 처음 선보인 무대는 팬들의 환호를 더 샀다. 이전 서울 공연에서는 보여준 적 없었던 '라일락', 긴 월드투어를 돌면서 만든 미발매곡 '바이 서머', 14년 전 발표한 '라스트 판타지' 등 무대는 마치 '상암 입성'이라는 이날의 기록을 더 찬란하게 하기 위한 '킥'처럼 준비한 듯했다.
팬들의 요청으로 세트리스트에 추가했다는 '라일락' 무대는 팬들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아이유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바이 서머'는 여름의 끝자락을 이별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겠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특히 아이유는 '바이 서머'를 부르면서 직접 일렉기타를 연주해 색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통기타로 어쿠스틱 음악을 들려주던 소녀가 찌릿찌릿한 사운드의 일렉기타를 연주한다는 것은 아이유의 16년 성장세를 반증하는 이색적인 풍광이었다.
그러면서 아이유는 올해 유난히도 길었던 여름과의 이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제 가을이 시작되는 것 같다"는 아이유는 "제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여름을 보내며 '바이 서머'라는 곡을 들려드렸다"고 말해, 공감을 얻었다.
이어진 '너랑 나'는 아이유의 데뷔 16주년을 눈부시게 경축하는 무대로, 팬들의 함성을 키웠다. '너랑 나'는 아이유가 10대 마지막에 부른 곡으로, 지금의 아이유가 여성 솔로 톱으로 위치하는데 큰 영향을 준 곡이다. 더욱이 최근 데뷔 16주년을 맞았기에 아이유 역시 남다른 감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유는 "16살에 데뷔했는데, 이제 가수 아이유로 산 시간이 인생의 반을 차지한다. 사람 이지은과 가수 아이유가 딱 절반씩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곗바늘아 더 달려봐"라는 노랫말처럼 '너랑 나'로 아이유와 관객들은 그 시절 추억을 반추, 그 시절을 돌이키는 시간을 가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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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곳곳을 활용한 점도 눈여겨 볼 점이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에는 하루 5만명이라는 대규모 관중이 들어서기에 모든 관객의 시야를 만족시킬 수 없다. 더군다나 당초 티켓 예매 당시 좌석표가 공개됐을 때, 큰 공연장임에도 불구하고 무빙 스테이지가 없어서 아쉬움을 샀던 바다. 그러나 아이유는 리프트를 타고 날라 횡단하면서, 곳곳에 있는 팬들과 눈맞춤을 했다. 2~3층에 있거나 무대와 멀리 있는 관객들도 서운해 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무엇보다 '관객이 될게' 무대 중 "그저 넌 너답게 웃어줘 날아줘"라는 구간을 부르고 날아가는 연출은 진풍경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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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야외 공연장이라는 점도 '가을 밤' 분위기를 더 무르익게 했다. 물론 야외 공연장이라 사운드에 아쉬움이 남을 법도 하지만, 아이유는 더더욱 스피커와 음향 등 기술에 힘을 쓴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면서도 큰 스피커들이 관객들의 시야 방해가 안 되도록 준비한 모양새였다. 아울러 야외 공연에서만 할 수 있는 효과들도 으뜸이었다. 잠실 주경기장에 이어 이번에도 드론쇼를 준비, 각종 문구와 그림으로 아름답게 물들인 상암 밤하늘이 올해 첫 가을 밤을 축하하는 듯했다. 또 주경기장 공연 때와 비슷하면서 다르게 의도한 드론쇼에서 아이유의 영리한 공연 기획력도 엿볼 수 있었다.
아이유의 섬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연 전부터 공연장 인근 주민들에게 쓰레기봉투를 선물하는 등 깊은 배려심을 자랑했던 아이유는 이날 관객들을 위해서도 망원경, 방석 등을 모두 선물했다. 넓은 경기장 탓에 탁 트인 시야가 어렵기에, 망원경을 관객 한명 한명에게 선물한 듯하다. 또 오랜 시간 좌석에 꼼짝 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관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방석을 준비한 것에도 아이유의 꼼꼼함을 헤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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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고의 게스트는 관객이라는 것에 끄덕이게 했다. 아이유 콘서트는 당대 최고의 가수들만 게스트로 초대, 게스트 맛집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번 상암 공연에는 게스트 없이 아이유만 무대에 올랐다. 이를 다시 돌려 말하면, 게스트 없이 아이유로만 채워 완성된 공연이라는 것이다. 또 최고의 게스트는 다름 아닌 관객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게스트가 나오는 구간에서 아이유는 공연 준비 과정과 현장 관객들의 모습이 담긴 VCR을 보여줬다. 여기서 관객과 함께 만든 공연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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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오곡이 무르익는 계절이다. 아이유의 이번 공연 또한 아이유가 데뷔 16주년 농사의 수확물과 다름없다. 데뷔 16주년을 자축하는 공연이자,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 처음 입성하는 상암 공연이자, 100번째 단독 공연이었다.
더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날씨 이슈가 신기루처럼 사라진 첫날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올해 가을은 푸르디푸르고 높은 하늘이 아닌, 그렇다고 귀뚜라미나 풀벌레 소리도 아닌, 또 곱게 물든 단풍도 아니었다. 여름과 이별한 '바이 서머'부터 가을이 물씬 느껴지는 '가을 아침'까지, 이번 가을은 분명 아이유의 목소리로 시작됐다. 앞으로도 100번째, 200번째, 300번째, 또 그 뒤에도, 아이유가 몇 번의 계절을 더 뚜렷하게 만들 것인지 기대가 모인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