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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배우 이병헌(55)의 화려한 원맨쇼로 꽉 채운 '어쩔수가없다'가 마침내 관객을 찾는다.
특히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를 시작으로 박찬욱 감독과 인연을 맺은 이병헌은 2004년 개봉한 '쓰리 몬스터' 이후 '어쩔수가없다'까지 세 번째 호흡, 21년 만의 재회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박찬욱 감독이 펼친 세계에서 제대로 날개를 편 '연기의 신(神)' 이병헌은 '어쩔수가없다'에서 가족과 집을 지키려는 구직자로 변신, 벼랑 끝에 몰린 인물 만수의 절박함과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어설픈 행동, 짠내 나는 연민까지 세밀하게 표현하며 극의 리얼리티를 끌어올렸다. 필모그래피에서 또 하나의 '인생작'을 추가하며 '이름값'을 증명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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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영화제 비하인드도 솔직하게 답했다. 호평이 이어지면서 기대를 모았던 '어쩔수가없다'는 충격적인 반전으로 수상이 불발돼 아쉬움을 남긴 것. 박찬욱 감독은 베니스영화제에 대해 "내 수상 보다는 이병헌의 남우주연상을 기대했는데 아쉽게 됐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병헌은 "수상에 대한 이야기가 현지에서도 계속 나왔다. 사실 나는 수상을 꿈도 안 꿨는데, 박찬욱 감독 당신이 상을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인지 내 핑계를 대면서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나는 상을 생각지도 않았다. 나중에 계속 이야기를 하니까 '진심인가?' 싶기도 했다"며 "다만, 이 작품에 대한 언론과 평론가들의 평이 계속 1위를 했고 그래서 이 영화가 뭔 일 낼 것 같다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도 분위기가 좋았다. 영화제 후반 쯤 지인이 인공지능 서비스 챗GPT(ChatGPT)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 누가 받을 것 같냐며 물어봤다고 하더라. 내가 인공지능이 선정한 유력 후보 세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혔다. 그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결과가 아쉽지 않았고, 나는 그릇이 큰 사람이라 나중에 베니스영화제에 또 초청된다면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농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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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박찬욱 감독은 내 개그에 매번 재미있어 하면서도 말로는 '매번 웃어주기 힘들다'라고 반응하다. 나도 받아쳐 '나와 유머 결이 다르다'고 놀리는 사이다. 박찬욱 감독이 생각했을 때 나는 실없는 농담도 많이 하는 배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부분이 만수 캐릭터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생각한다. 실없이 농담하고 웃기려고 하는 부분이 실제로 많이 있고 만수처럼 겁 많고 어떤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도 많이 닮아 있다"며 "웃긴 일화가 있는데, 영화 속 장면에 내가 범모(이성민)를 몰래 지켜보면서 '아, 안돼!'라고 탄식하는 장면이 있다. 그 대사를 보자마자 내 유명한 밈인 드라마 '아이리스'의 '아 안돼' 장면이 생각났다. 리허설을 하는데 '아, 안돼' 대사를 치니까 실제로 모든 스태프가 웃었고 박찬욱 감독만 안 웃더라. 다들 '아이리스' 장면이 떠올라 이야기를 했는데 박찬욱 감독만 '나는 못 봤다'라며 모르는 눈치였다. 우려를 표했는데 박찬욱 감독은 '그 장면이 안되는데 상황인데 뭐라고 말을 하냐'고 말하더라. 나는 바꿀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박찬욱 감독 말처럼 상황적으로 만수가 '안돼' 반응이 제일 먼저 튀어나올 것 같았고 대신 애드리브를 더하려고 했다. 그리고 보통 나를 비롯해 다들 박찬욱 감독에게 '아이리스' 밈을 그 정도로 이야기 했으면 했으면 한 번쯤 찾아 볼만 한데 끝까지 안 찾아보더라. 결국 촬영 때 내내 안 보다가 베니스영화제 가장 마지막날 보게 됐다. 그날 박찬욱 감독 부부랑 우리 부부, 제작사인 백지선 대표와 커피숍에 갔다가 '아, 안돼' 이야기가 나왔고 백 대표가 영상을 틀어 보여줬다. 그 밈을 처음 본 박찬욱 감독이 빵 터졌다. 20년 넘게 안 박찬욱 감독이 내 밈을 보고 그렇게 좋아하는 걸 처음 봤다. 10분간 웃더라"고 밝혀 장내를 웃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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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인생작, 그리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올드보이'(03)의 장도리 신에 버금가는 '어쩔수가없다' 속 난투 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병헌은 "이성민, 염혜란과 몸싸움을 벌이는 액션신이다. 당시 염혜란이 발가락 골절이 있었는데 괜찮다며 씩씩하게 연기하더라. 남성도 소화 하기 힘든 개싸움을 염혜란이 멋있게 소화하더라. 서로 뒤엉키고 마치 레슬링처럼 싸우는 장면인데 정말 지치지도 않고 체력 좋게 마지막까지 소화했다. 이런 액션은 합이 있는 액션보다 더 어렵다. 상황에 따라서는 달라지고 의도했던 위치에 없어 촬영도 힘들다. 보통 배우들이 작품을 촬영할 때 숙제 한 두 덩어리씩 가지고 있는데 그 장면이 네겐 큰 덩어리 중 하나였다. 다른 장면을 찍을 때도 머릿속에서 걱정을 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다행히 만족스러운 장면이 나온 것 같고 혹자는 '올드보이'의 장도리 신 같은 시그니처 장면이 됐다고 하더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어쩔수가없다'는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등이 출연했고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늘(24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