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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배우 권해효(60)가 초심을 찾는 프로젝트에 순수한 마음을 모아 진심을 이야기, 극장가 큰 파동을 일으켰다.
특히 '얼굴'에서 근현대화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시각장애 전각 장인 임영규로 변신한 권해효의 명품 연기가 화제다. 그는 자신과 똑 닮은 아들 임동환(박정민)과 전각 공방을 운영하는 중년의 임영규를 연기, 젊은 임영규를 연기한 박정민과 2인 1역에 도전하며 크레딧에 무게감을 더했다. 앞서 권해효는 연상호 감독의 초기작인 애니메이션 '사이비'(13)부터 '반도' '방법, 재차의'(21, 김용완 감독, 연상호 각본)와 2024년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연상호·류용재 극본, 연상호 연출)에 이어 '얼굴'까지 함께 하며 연상호 감독의 '페르소나'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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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효는 연상호 감독의 무한 신뢰를 받는 대표 배우이기도 하지만 이에 앞서 홍상수 감독과의 '페르소나'로 꼽히며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온 바 있다. 이에 "홍상수 감독과는 11편을 작업 했더라. 많이 하긴 했다. 그냥 연락이 와서 '시간 돼?'라고 물어봤을 때 가능하면 작품에 참여한다"며 홍상수 감독과 연상호 감독은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그래서 재미있다. 두 사람의 작품 덕분에 롱테이크 촬영이 익숙한 것도 있다. 홍상수 감독은 촬영 당일 대본을 쓰지 않나? 내겐 일상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행인 것은 내가 대본 외우는 것은 자신한다. 예전부터 대학로에서 대본을 가장 빨리 외우는 배우 3명 중 하나다. 물론 나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은 누군인지 모른지만 말이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홍상수 감독과 연상호 감독 둘 다 독립영화를 만들었던 시절에 만난 사람들이다. 그 작업이 흥미로웠던 것 같다. 굳이 공통점을 꼽자면 연상호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이나 작업에서 유독 힐링, 치유를 받는 기분이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촬영할 때는 아침마다 어떤 부담 없이 간다. 그 누구도 오늘 무슨 장면을 찍으러 갈지 모르니까 더 그런 것 같다. 더 자유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연상호 감독 작업은 그의 머릿속에 어떤 그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자유롭고 현장도 즐겁다.배우들은 평생 후회하고 이불킥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다. 촬영 때 '내가 왜 용기를 못 냈지?'라며 온갖 생각을 한다. 그런데 연상호 감독과 홍상수 감독의 작업은 특별히 그런 경험은 없는 것 같다. 그날그날 닥쳐온 일들을 해결해야 하지만 대신 몰입감이 높고 현장에서 즐거움을 뛰어 넘는 무언가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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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전각 장인을 연기한 과정도 설명했다. 권해효는 "나는 머릿속에 계산하고 연기하지 않는다. 다만 임영규를 연기할 때 나의 첫 번째 고민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시각 예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살아있는 기적 외에는 이 행위에 대해 어떤 설명도 없다. 그래서 관객이 이 캐릭터를 받아들였을 때 땅에 발을 붙이는 기분을 주고 싶었고 그걸 후반부 독백 대사로 설명하고 싶었다"고 언급했다.
배우는 물론 스태프까지 몰랐던 권해효의 애드리브로 완성된 후반부 독백신은 '얼굴'의 하이라이트, 백미 중의 백미다. 그는 "임영규의 독백 신을 연기하기 전 애드리브를 연상호 감독에게 이야기를 하는 순간 서로가 고민이 시작된다. 이 대사를 어떻게 정리할지, 또 시나리오에 어떻게 넣을지 고민할 것인데 우리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실제로 연사호 감독은 원래 빨리 찍는 감독인데 이번 작품에서 예정된 시간을 넘긴 걸 처음 봤다. 독백 신을 촬영한 그날도 시간이 없어서 그냥 내가 감독이 선택할 수 있게 연기 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고 애드리브로 연기했다. 다만 사전에 연상호 감독에게 한번에, 롱테이크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연상호 감독도 그걸 받아들여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그 순간 임영규에 대해 떠올랐던 영감도 있었고 무리 없이 첫 번째 테이크만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장면이 박정민과 대화를 주고 받는 장면이었다면 내 의도대로, 내 방식으로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온전히 혼자 떠드는 장면이다 보니 그리 복잡한 일은 아니었다"고 겸손을 보였다.
박정민과 2인 1역을 소화한 것도 꽤나 덤덤한 권해효였다. 권해효는 "사실 출연을 결정하고 촬영을 앞둔 상황에서 의상 체크를 할 때 박정민이 임영규의 젊은 시절과 아들 임동환을 1인 2역 한다고 듣게 됐다. 박정민이 한다고 하길래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다만 박정민과 나는 전형적인 북방계 아시아인이라는 걸 제외하고 비슷하지 않아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었다. 잠깐 그런 생각을 했을 뿐 이후에는 박정민이 앞 부분 촬영한 소스를 모니터 했다. 특별히 박정민의 연기를 흉내 내려고 하는 것은 없었다. 알고보니 박정민 아버지도 시각장애가 있고 돌아가신 내 장인어른도 시각장애가 있어서 두 사람 모두 캐릭터가 가진 특수성을 알게 모르게 몸에 익혀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를 토론토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그때 '정민이가 날 닮은 것 같다' 하다가도 '내가 정민이를 닮은 것 같기도 하네?'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 영화를 보니 서로의 목소리도 약간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며 "임영규의 행동을 전부 신경 썼다기 보다는 사람은 변하지 않나? 40년의 세월인데 임영규도 엄청 변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습관적 몸짓도 있을 것이다. 계산해서 해보겠다는 생각은 못했지만 박정민이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들과 호흡들을 보면서 '박정민은 저렇게 했구나' 인지할 정도였고 그 외에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가 동네 극장에서 딸과 영화를 봤다고 하더라. 딸이 말하기를 아내가 영화가 시작하는 동시에 울었다고 하더라. 아버지 생각이 나서 울었다며 눈이 팅팅 부었더라. 나는 미쳐 그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시각장애를 앓다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생각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먹먹한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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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 등이 출연했고 '부산행' '반도'의 연상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