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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tvN '태풍상사'가 열어젖힌 1997년의 타임캡슐엔 웃음, 눈물, 추억, 온기가 다 있었다. 무엇보다 부끄럽고 치욕스러웠던 그 시대를 신파가 아닌 하루하루 버텨냈던 평범한 사람들의 생존기로 접근한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시청자들도 호평을 보낸 주요한 이유가 됐다.
1997년을 완벽히 복원한 미장센은 시청자들을 자연스레 그 시대로 데려다 놓았다. 마치 힘든 날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듯한 황규영의 노래 '나는 문제없어'로 시작된 오프닝, 지금은 볼 수 없는 삐삐, CTR 모니터, 플로피 디스크, 씨티폰에 그 시절 연애 프로그램까지. 현실감 넘치는 시대 묘사는 마치 타임캡슐을 열어본 듯, 90년대를 지나왔던 시청자들의 향수를 한껏 자극했다.
'태풍상사'가 전한 97년의 정서와 '태풍정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난 온기에서 비롯됐다. 작지만 진심 어린 그 마음이 세대를 넘어 공감을 이끌어냈다. 지하철에서 다 읽은 신문을 건네주는 아저씨, 피곤한 몸으로도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태풍, 사장님의 죽음 후 그가 좋아했던 홍시를 정성껏 고르는 차선택(김재화), 온몸을 던져 부의함을 지켜낸 태풍상사 직원들과 친구 왕남모(김민석), 그리고 매달 아들에게 온마음을 전하기 위해 네 자씩 '통장 편지'를 쓴 진영까지. 그 작은 장면들이 모여 '힘들었지만 사람으로 버텼던 시절'의 온정을 완성했다. 이처럼 자칫 힘들었던 그 시절의 슬픔과 고통으로 인해 눈물만 쏙 빼는 서사로 빠질 수도 있었지만, '태풍상사'는 "슬픔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닌 살아남는 게 먼저"였던 보통 사람들에게 주목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시절만의 촉촉한 감성을 불러 일으키며 "그때 그 공기와 온기를 다시 느꼈다"는 반응을 이끌어낸 이유였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