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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 저출산 대책보단 인간중심 사회구조 개혁에 초점 맞춰야
인구 감소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정부는 그간 다양한 저출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백약이 무효'했다. 출산율은 지속해서 줄었다. 약 30년간 신생아 수는 3분의 1로 감소했다. 1995년 71만5천명 수준에서 2024년 23만8천명으로 급감했다. 합계출산율은 2024년 0.75명으로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정부는 지난 20년간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아동에 대한 현금지원, 돌봄서비스 확대, 보육시설 지원 등으로 수백조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신생아 수는 크게 줄었다. 왜일까.
서울대 경제학부 이철희 교수는 신간 '인구에서 인간으로'(위즈덤하우스)에서 정부의 저출산 대응 정책이 실질적으로 "'소득 중상위계층'에 속한 '결혼한 가구'를 주된 대상으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저출산 해소 문제에서 '사각지대'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가령, 결혼하지 않는 청년층에 대한 정책, 소득 하위계층에 대한 대책은 미미했다는 지적이다.
즉, "결혼의 문턱조차 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아이 낳은 후의 지원이 너무 멀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소득 하위계층은 출산의 경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살짝 등을 떠미는 정도의 대책으로는 그 경계에 다가가 선을 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저자는 "출생아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에는 젊은이들이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자녀를 키우는 기쁨을 느끼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 집값, 자녀 교육비 생각하면 결혼 엄두 안 나
혼인 건수는 1996년 43만4천900건에서 2022년 19만1천700건까지 쪼그라들었다. 2024년에는 22만2천400건으로 소폭 증가했으나 여전히 30년 전과 견줘보면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혼인이 줄어든 건 결혼에 이르기까지 청년들이 넘어야 할 장벽이 많기 때문이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양육비 상승세는 거침없다. 서울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4억원을 돌파했고, 초등학교 국어·영어·수학 학원비만 해도 대형학원을 기준으로 월 100만원을 웃돈다. 써야 할 돈은 산더미인데, 수중에 들어오는 자금은 많지 않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 평균 임금 격차는 2017년 약 128만원에서 2024년 약 175만원으로 벌어진 가운데 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들은 많지 않다.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청년층(25∼34세)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3년 후 정규직 근로자로 일하는 경우는 3명 중 1명꼴이다. 이 비율은 2005년 약 50%였으나, 2010년 이후 꾸준히 하락했다.
가정을 꾸리고 애를 낳는다는 건, 이미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발표한 '청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상시 근로자일수록,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주택이 있을수록 아이를 많이 낳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유가 있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예전부터 그랬던 현상이다.
영국 경제학자 토마스 맬서스(1766~1834)가 주저 '인구론'에서 16~17세기 잉글랜드와 웨일스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곡물 가격이 높아져 실질임금이 낮아졌을 때 시차를 두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발견했다. 1930년대 대공황 때도 비슷하다. 1929~1933년 대공황 때 미국 혼인율은 20% 감소했으며 경기후퇴가 심했던 지역은 그 감소 폭이 더 컸다. 근대 미국 사례를 분석한 한 연구의 결론은 실업률이 1% 상승할 때, 혼인율이 1.5% 감소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먹고사는 것과 결혼은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얘기다.
영국의 유언장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한 연구 결과도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에는 돈이 많으면 아이를 더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16세기 말~17세기 초 영국 망자(亡者)가 남긴 재산액이 커질수록 자녀 수뿐만 아니라 손자녀 수도 늘어났다. 예컨대 재산액이 1천파운드 이상인 사망자는 재산액이 10파운드 미만인 사망자보다 생존 자녀 수가 두배가량 많았다. 현대 한국 사회도 비슷하다. 이철희 교수의 책에 인용된 통계에 따르면 소득 중상위층의 출산율은 저소득층 출산율의 두배에 달한다. 저자는 "자녀의 질을 높이는 데는 '돈'이 필요하지만, 여러 자녀를 키우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저출산 현상의 심층에는 노동시장 불평등 심화와 일자리 질 악화, 교육 경쟁 격화와 사교육비 부담, 지역 불균형 확대와 주거비 상승, 세대 간 격차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인구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태어난 사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인구문제 대응의 중요한 일부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아동을 학대·방임·사고 등으로부터 보호하는 일,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돌보고 이들에게 살 만한 환경을 제공하는 일, 일터의 안전을 강화하고 일자리 질을 개선하는 일, 청년이 충분한 기회를 얻고 노력과 능력에 합당한 처우를 받도록 하는 일 등은 그 자체로서도 꼭 필요한 정책이지만, 인구정책으로서도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받을 필요가 있다."
416쪽.
buff27@yna.co.kr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