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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아드보카트 러시아 감독(65)의 가장 대표적인 별명은 '작은 장군'이다. 아드보카트의 스승이었던 리누스 미헬스의 별명 '제너럴(General, 장군)'을 이어받았다. 여기에 키도 비교적 단신인 1m66이다. '작은'이라는 단어에는 키가 작은데다 스승을 아직 뛰어넘지 못했다라는 2가지 의미가 함께 들어있다.
초기부터 히딩크는 앞서나갔다. 1988년 히딩크가 PSV에인트호벤에서 에레디비지에(네덜란드 국내리그)-KNVB컵(FA컵)-유러피언컵(현 유럽챔피언스리그)으로 이어지는 트레블(3관왕)을 달성하며 이름을 알렸다. 아드보카트도 기회는 있었다. 1992년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자리를 이어받아 네덜란드의 수장이 됐다. 하지만 최고의 스타 선수였던 루드 굴리트와의 반목, 네덜란드 축구협회와의 갈등 등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8강전에서 브라질에게 지며 짐을 쌌다.
한 발 뒤쳐진 행보는 계속됐다. 히딩크는 한국을 맡아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에 올려놓았다. 아드보카트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 견인에 실패했다. 2004년 아드보카트는 네덜란드를 유로 2004 4강에 올렸다. 그러나 포르투갈과의 4강전에서 보여준 소극적인 경기 운영으로 자국 언론에 비난에 직면했다. 결국 아드보카트는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로부터 1년 후 히딩크는 PSV에인트호벤을 유럽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려놓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저렴한 히딩크, 러시아에서 반전을 노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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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보카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볼멘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결국은 실력으로 보여주어야 했다. 러시아는 기회의 땅이었다. 제니트를 UEFA컵에서 우승시키면서 본인도 도약대를 만들었다. 2010년 러시아를 맡았다. 유로 2012 본선에 진출하며 주가를 올렸다. 히딩크가 남긴 유산들을 적극 활용했다. 베스트 11가운데 유로 2008 4강 멤버가 7~8명이었다. 새로운 얼굴도 발굴했다. 알란 자고예프(22·CSKA 모스크바)였다. 유로 2012가 시작되기전 아드보카트는 '이별'을 선언했다. 유로 2012의 성적 여부에 관계없이 떠나겠다고 했다. 다음 행선지도 PSV 에인트호벤으로 정해졌다. 우승을 통해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었다.
초반부터 신바람을 냈다. A조 첫 경기였던 체코전에서 4대1로 승리했다. 세계의 언론이 주목했다. 도박사들도 러시아의 우승 확률을 높였다. 개최국 폴란드와는 1대1로 비겼다. 여전히 조1위였다. 조별리그 마지막 상대는 최하위 그리스. 8강 진출은 따논 당상이었다. 오히려 8강에서 만날 상대를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17일 폴란드 바르샤바 국립경기장에서 러시아는 그리스에 1대0으로 졌다. 전반 추가시간 터진 요르고스 카라구니스의 결승골을 넘지 못했다. 1승1무1패를 기록한 러시아는 승점 4로 그리스와 동률을 이루었지만 승자승 원칙에게 밀리며 조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결국 '저렴한 히딩크' 아드보카트는 이번에도 히딩크를 넘지 못했다. 도리어 '싼게 비지떡'이라는 사실만 널리 알린 셈이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