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심점을 잃으면서 한국 축구도 방황했다. 살얼음판이었다. '기성용(26·스완지시티) SNS 논란' 등 끊이지 않는 악재로 소모적인 논쟁을 벌였다. 축구가 아닌 외적인 일로 팽팽하게 대립했다. 승자는 없었다. 모두가 상처를 입었다. 그 여진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까지 이어졌다. 결국 1무2패로 쓸쓸하게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었다. 세대교체의 첫 단추는 브라질월드컵이었다. 그들이 독기를 품었다. 구차한 변명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기성용 이청용(27·크리스탈 팰리스) 손흥민(23·레버쿠젠) 구자철(26·마인츠) 등 태극전사들이 벼르고 벼른 대회가 호주아시안컵이었다. 모두가 약속했고, 현실이 됐다. 이청용과 구자철이 부상으로 도중하차했지만 아시안컵은 명예회복의 무대였다. 55년 만의 정상탈환에 실패했지만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투혼으로 민심을 돌려 놓았다. 대표팀 내부적으로 가장 큰 수확도 있었다. 세대교체의 완성이었다. 어차피 이들이 2018년 러시아월드컵까지 대표팀을 이끌어가야 할 세대다. 호주아시안컵이 탈출구였다.
뜨겁게 출발한 K리그 클래식이 잠깐 휴식기에 들어갔다. 그들이 돌아왔다. '슈틸리케호의 타임'이다. 태극전사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슈틸리케호는 27일 오후 8시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우즈베키스탄, 3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뉴질랜드와 A매치 2연전을 갖는다. 24일 소집된 태극전사들은 25일 대전으로 이동, 우즈베키스탄전을 준비하고 있다.
호주아시안컵 이전과 이후, 그들은 또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박지성이라는 존재를 잊어도 될 만큼 그들만의 단단한 틀이 구축돼 있었다. 슈틸리케호의 내부 공기는 맑고, 밝았다. 사실 시즌 종착역이 목전인 유럽파는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 막 시즌을 시작한 국내파와는 또 다르다. 친선경기를 위해 왕복 20여시간을 비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슈틸리케 감독이 배려도 해줄만 했다. 소속팀들도 차출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태극마크는 늘 엄숙하고, 반가운 존재였다.
기분좋은 호흡이 귓가를 즐겁게 하고 있다. 기성용은 제2의 박지성으로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캡틴'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한때 악성 댓글의 '표적'이었다. 마음고생도 심했다. 묵묵히 흘린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안티'가 사라졌고, 어느덧 정신적으로도 리더가 됐다. 그의 말에는 주장으로서 더 큰 무게감이 느껴진다. 처음으로 대표팀에 승선한 K리거들의 경우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성용이 묵직한 분위기를 깼다. "오랜 만에 들어온 선수들뿐이 아니다. K리그에서 온 선수들도 다 충분한 능력을 갖춘 선수들이다. 대표팀은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곳에 들어왔다는 자체로 그만한 능력을 갖췄다는 뜻이다.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부담을 떨치고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선수들도 긴장해야 한다. 우리 모두 새로운 선수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모두를 품에 안았다.
한국 축구의 얼굴로 성장한 손흥민의 마음 씀씀이도 놀랍다. "대표팀 차출을 구단에서 반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차)두리 형 은퇴식이라 반드시 가야한다고 구단을 설득했다. 계속된 일정 때문에 피곤하지만 구단도 이해해줬다." 해맑은 미소에서 끈끈한 힘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차두리(35·서울)는 뉴질랜드전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난다. 마지막을 함께하고픈 손흥민의 노력이 슈틸리케호의 오늘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슈틸리케호에 '나'는 없다. '우리'만 있을 뿐이다.
태극전사들이 새롭게 나아가야 할 길을 찾은 것 같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 첫 관문이지만 2018년 러시아월드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다시 한번 한국 축구의 르네상스를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아픔을 맛 본 그들이 '황금세대'가 되기를 바란다. 스포츠 2팀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