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헤딩골' 뒷이야기 "땡큐, 엘리베이터"

최종수정 2015-06-19 07:44

이재성. 전주=하성룡 기자

16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미얀마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1차전(2대0 승)에서 헤딩 결승골을 기록한 이재성(전북)의 위상이 바뀌었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 바뀐 것 같다."

올해 초만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적었지만 지금은 길거리를 걸어다니면 사인 요청이 줄을 잇는다.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그만큼 강렬했다. 이재성은 18일 전주의 한 초등학교 '축구 클리닉' 행사에도 참가했다. 초등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사인을 하고 있던 그는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다"며 웃음을 보였다. 스포츠조선이 슈틸리케호의 '뉴에이스' 이재성을 이날 전주에서 만났다.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미얀마전 헤딩골 '땡큐, 엘리베이터'

이재성은 미얀마전에서 0-0으로 맞선 전반 34분 헤딩 결승골을 넣었다. 답답했던 경기 흐름을 바꾼 청량제같은 헤딩골이었다. 그러나 A매치 득점 얘기가 나오자 이재성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휴~골 넣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한 숨 뒤에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그는 "득점하기 전까지 실수가 너무 많았다. 내심 불안했는데 골을 넣어서 다행이었다"면서 "뉴질랜드전에서 골 넣을 때도 내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미얀마전도 정말 못했다. 희안하게 경기력이 좋지 않으면 골을 넣는다"고 설명했다. 헤딩골이 탄생하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롭다. 경기 전 느낌이 좋았단다. "대표팀의 호텔에 엘리베이터 6대가 있는데 잡는데 오래 걸린다. 6대 중에서 어떤 엘리베이터가 올지 모른다. 며칠동안 기다리느라 고생했는데 경기 당일에는 내가 서있던 바로 앞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오늘 위치 선정이 좋은데?'라는 생각을 갖고 미얀마전에 나섰다." 뛰어난 위치 선정은 경기장에서도 발휘됐다. 그는 "세트피스 연습할 때 원래 헤딩에 가담하지 않기로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헤딩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위치를 잡았고 헤딩골로 연결됐다. 경기전부터 위치선정이 좋았는데 골까지 넣었다"며 웃었다.


이재성의 '오다리' 전주=하성룡 기자
박지성+이청용? '나는 이재성이다'

넓은 활동 반경과 많은 움직임은 박지성(은퇴)을 닮았다. 공을 다루는 기술과 드리블은 이청용(크리스탈 팰리스)과 흡사하다. 슈틸리케호의 '뉴 에이스' 이재성의 플레이를 지켜본 이들의 평가다. 지난 3월 A매치 2연전에서 화려하게 등장하며 '제2의 이청용'이란 별명을 얻은 그는 동남아 2연전에서 처음으로 이청용을 만났다. "(이)청용이 형을 처음 만나 신기하고 좋았다. 드리블, 볼터치가 정말 세밀했다. 일상 생활도 정말 모범적이다. 많은 걸 배우고 싶은 형이다." 하지만 그는 '제2의 이청용'이 아닌 새로운 별명을 갈망했다. 그는 "'박지성+이청용'이라는 평가는 부담이 된다. 동기부여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많이 부족하다"면서 "다른 플레이도 할 수 있다는 걸 더 보여주고 싶다. 동료들을 이용하는 플레이, 볼을 빼앗는 기술, 빼앗기지 않는 기술을 유심히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재성은 볼을 빼앗는 기술에 대해 "상대의 볼 진행 방향을 예측하고 개구리가 혀로 먹이를 잡아먹는 것처럼 순간 다리를 뻗는다. 확률은 50대50이다"라면서 "다리가 '오다리'다. 다리가 휘어서 갈고리처럼 볼을 따내기에 좋다"고 설명했다.

일기장에 적어 둔 날짜의 의미는?

중학생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축구 일기'에는 이재성의 축구 인생이 담겨 있다. 목표를 적으면 마법처럼 이뤄진다. 고려대 출신인 이재성은 '고연 정기전 득점'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금메달', '대표팀 발탁', '월드컵 예선 출전'까지 적어둔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 다시 시작이다. 16일 미얀마전이 끝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이재성은 일기장 스케줄표에 8월 2일, 5일, 9일, 9월 3일, 8일, 10월 8일, 11월 12일, 11월 17일을 표시해 놓았다. 동아시안컵과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경기가 있는 날이다. 새로운 목표였다. "대표팀 선배들에게 도전하는 입장이다. 경쟁력 있는 선수로 거듭나고 싶다. 대표팀 일정을 일기장에 다 적었다. 경기에 뛰고 싶다는 바람이다. 동아시안컵에 출전하면 꼭 우승하고 싶다. 월드컵 예선에 뛰는 게 목표였는데 이제 남은 예선에 모두 뛰는 게 새 목표가 됐다." 이어 그는 "몇년 뒤에는 일기장에 '유럽 진출'을 꼭 적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전주=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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